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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마 Mar 20. 2022

단짠짠 단짠짠 직장생활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단짠단짠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내 직장생활은 좀 더 짜다. 단짠짠 단짠짠 정도다. 단짠짠은 세깃단음표처럼 붙어있다. 은밀하고 은근한 그 리듬.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왈츠다. 단 짠짠 단 짠짠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그 영화의 bgm 맞다. 아주 우리 회사에 딱 맞는다. 단 (새우야 이런 부분은 잘했는데~) 짠 (요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짠 (네가 알아서 더 고민해봐) 단 짠짠 단 짠짠. 은근하게 사람을 회유하는 선배들의 스킬을 보며 나는 속으로 그 리듬을 탄다. 은근~하게 단짠짠 단짠짠~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대신 "넵. 알겠습니다^^"


언론사는 멋진 댄스플로어다. 옆에 보이는 선배들은 봄의 왈츠를 35년째 추고 정년 퇴임을 한다. 충분히 멋있고 대단하다. 차라리 리듬을 무한 반복하는 데 만족하고 싶다. 단짠짠 단짠짠 단짠짠~ 계속되는 리듬에 맞춰 왈츠를 추면 되는 일인데, 그게 잘 안된다. 나는 단짠짠 단짠짠 잘 나가다가, 약간 엇박으로 시작한다 싶으면, 그 박을 쪼개서 내 삶에 대해 고뇌한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빙글빙글 활짝 웃으며 돌아가는 선배들을 쳐다본다.


댄스 플로어에서 내려온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느긋하고 여유 있게 삶을 지켜보고 싶다. 조급함에 내린 결정은 늘 아쉬움을 남기기에. 그렇지만 박자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로 다음 아이템으로, 다음 촬영으로, 다음 편집으로,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하기에 바로 댄스 플로어로 다시 올라와서 빙글 뱅글 돈다. 그러면서도 고민을 이어간다. "단"에 속지 말아야 하고, "짠"에 너무 매몰되지 않아야지. 결심한다. 그러면서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 그 느낌에 몰래 음악 소리를 뒤로하고 댄스 플로어를 나선다. 다 갖춰진 드레스를 입을 채로, 댄스화를 신은 채로 걸터앉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더라?”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실은 나는  댄스 플로어를 가장 사랑했다. 저널리즘이라는 멋진 댄스 플로어. 밝은 낮부터 매일 대차게 마시는 , 바다를 보며 바다를 마시는 느낌으로 콸콸 쏟아붓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9시에 오든 10시에 오든 크게 상관없는 자유로운 조직이 좋다. 작가님들과, 피디 선배들과, 사는 얘기, 선배들 뒷담화를 하며, 윤석열 욕을 하며 깔깔 대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들끼리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여자는 결혼을 후회하고, 어떤 여자는 아이를 아 기르고, 어떤 여자는 결혼을 하고, 어떤 여자는 결혼을 20번째 포기하고 헤어진다.


나는 저널리즘을 가장 사랑했다. 기억이 나는 때부터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그러다 영상을 만났다. 나는 영상의 호흡을 사랑한다. 편집이 내 일인 것이 어쩌면 내가 출근하는 마지막 이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언어로 붙이는 게 더 재밌고 멋있어 보였다. 좀 더 유망(?)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덜 해쳐도 될 것 같다고, 매일이 마감인 삶보다는 매주 마감이 있는 레귤러 프로그램 피디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시사 피디가 되었다. 내가 선망하는 바로 그 댄스 플로어에서 나도 서툴지만 춤을 춘다.


그런데 자주 죽고 싶다. 이 일엔 사명이 필요한데, 나에겐 사명이 없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이렇게까지 미뤘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첫사랑은 개새끼라는 것을. 각자의 첫사랑을 떠올려보자. 멋지고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다시 돌아가도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 1위다. 그런데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헤어지면 큰일 날 줄 알았다. 그런데 헤어진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또 헤어졌다.) 아무튼지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이별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컷 다음에 저 컷을 붙이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휴머니즘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울리는 일을 좋아한다. 연대하고, 희망을 보여주고, 끈기 있게 뚫고 나가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이 사회의 악들을 몰아내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울리고, 위로하고 싶은 것 같다. 게임으로 치면 가장 지난한 “힐러”가 되고 싶은 것 같다. 요즘은 영화라는 허망한 꿈을 꾼다. 영화를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은밀한 욕심. 시나리오를 일단 써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오늘도 허망한 꿈을 안고 댄스 플로어에 오른다. 열심히 왈츠를 춘다. 그러면서도 다음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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