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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친절

by 최정식

직장 동료가 마감이 임박한 일을 끝내지 못한 채 퇴근했다. 책상 위에 남겨진 서류와 미완성된 파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자리에 앉아 그의 일을 마무리해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돕는 것이야말로 직장 내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일을 끝낸 후,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누군가 이걸 알아주면 좋겠다."라는 작은 바람이었다.


이런 감정을 깨닫자마자 조금은 부끄러웠다. 선행이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내 안에는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욕망이 숨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 작은 욕망이 친절의 무게를 바꾸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다음 날, 동료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이 이 일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도 스쳐 지나갔다. "내가 했다고 말할까?" "아무도 모른다면 이 친절은 무의미한 걸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정한 친절은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었다. 보상받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아도, 그것이 타인을 위한 일이라면 이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다면, 그 자체로 내 행동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친절이야말로 가장 무거운 친절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고, 또 다른 배려로 이어진다. 어쩌면 진정한 선행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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