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에어캐나다 체크인하는 곳까지 우리를 에스코트해 주었다. 돌아선 남편의 모습이 작아지면서 재인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보고 싶어."
"아빠 아직 저기 있는데?"
체크인을 마치고 환전을 하고 로밍 신청을 했다. 그러는 내내 재인이는 많이 침울해 보였다.
"쫄려...."
엄마랑 단 둘이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에 재인이는 걱정이 많았다. 이럴 때는 쇼핑이 약이다 싶었다. 면세점에서 비싸지 않은 작은 화장품 하나 골라보라 하니 그제야 얼굴이 밝아졌다.
비행기 탑승을 목전에 두고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을 안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얼른 갔다 와. 나 여기 있을게."
여긴 아직 인천공항이니 아이를 잠시 혼자 두어도 괜찮다. 서점으로 들어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인 책들을 재빨리 스캔했다. 역시 한강 작가님의 소설이 가장 많이 비치되어 있지만 비행기 안에서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김애란 작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침이 고인다> 이후로 오랜만에 읽어보는 이분의 작품이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책을 안 가져오다니... 난 확실히 요새 뭐든 설렁설렁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기 좌석에 착석하고 나니 재인이의 눈은 또다시 붉어진다. 기장의 안내대로 난기류를 통과할 때마다 비행기가 흔들리기도 했다. 나 역시 조금 무서웠다.
"쫄려..."
이 말은 아이들 사이에서 흔한 말인가 보다. 그래도 재인이는 마음을 잘 다스렸다. 차분하게 아이패드를 펼치고 미리 다운로드해놓은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본다.
옆자리 창가 자리에는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 나에게 대화를 걸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정면만 바라보며 모른 척했다. 그러다 승무원이 나누어주는 식사를 받으면서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걸 들켜버렸다. 아저씨는 곧장 나에게 말을 건다.
"캐나다에는 여행 가시나요?"
"이 아이와 둘이 가시나요?"
"아이는 한 명인가요?"
아저씨는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한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있어 보였으니 아저씨라 해도 되겠지.) 일본과 중국, 태국, 라오스 등 많은 나라를 다녔다고 한다. 종교도 물어보신다. 크리스천이라 했더니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국에는 크리스천이 많다고 했더니 몹시 놀란다.
아저씨는 기침을 많이 했다. 기침 소리를 들어보니 막힌 실내에서 나도 종종 겪는 증상이다. 알레르기 약이 있어 드시겠냐 물어보았더니 선뜻 받아 든다.
"한 시간 이내 훨씬 나아지실 거예요."
"아 고마워요."
아저씨는 스리랑카에 기반을 둔 캐나다인이라고 한다. 몬트리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택시나 도심 지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셔서 대화가 유익했다. 그렇지만 슬슬 귀찮아지기도 했다.
"퀘벡에서 몬트리올로 다시 돌아오시면 제가 공항으로 마중해 드릴까요? 근처에 좋은 식당도 알고 있어요."
훅 들어온 제안을 덤덤하게 받아쳤다.
"퀘벡에서 탄 버스가 몬트리올 공항으로 가기 때문에 괜찮아요."
지금보다 젊었을 때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이렇게 갑자기 선을 훅 치고 들어오면 하루의 기분을 몽땅 망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럭저럭 대화를 잘 나눴고 옆 사람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잤다. 내 옆에 든든한 짝꿍이 있는 덕분인 듯했다. 나중에 남편과 통화할 때 이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엄마가 아저씨랑 대화를 많이 나눠서 깜짝 놀랐어. 엄마가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줄 몰랐어. 옆에서 엿들으려고 했는데 모르겠더라."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자꾸 이렇게 말 걸면 엄만 싫어할 텐데."
재인이 정말 귀엽다.
2025.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