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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르네

나치가 만들어 놓은 사상 최대의 지옥

by 구시안



2. 전쟁 속의 르네






나치가 만들어낸 사상 최악의 지옥으로 떨어져 버린 르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르네가 살던 마을을 지나가던 나치에 의해 그녀를 놓치게 된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들은 르네를 놓아주지 않았지요. 저는 그것을 지켜보며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르네를 숨기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제가 해서는 안될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에 일부러 손을 대야 할지 갈등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난폭했습니다. 숨어 있다 잡힌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총머리로 박살내고 있었지요. 그것은 기하학적이면서도 묘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만이 가진 폭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나오라고!"

" 앞으로 가. 저기로 줄을 서라고! 이동해. 어서! "



르네가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과 붙잡혀 들어간 곳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였지요. 얼마나 이동을 했는지 르네는 낮과 밤을 잊은 채, 마을 사람들의 웅크린 틈에서 깊은 잠에 들 정도였습니다. 르네 다운 것이었지요. 그녀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질 않았습니다.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줄을 세우는 나치들의 입에서는 듣기 좋은 욕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느껴지나? 너희는 이 고통에 익숙해져야 해. 이곳은 노동 수용소다. 여기서 우리는 너희를 제대로 된 독일인으로 만들 것이다. 너희는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너희는 명예도, 권리도 없는 무력한 존재니까. 알겠어? 명령에 거역하는 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야. "



저는 그만 웃음이 났지 뭡니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보면 볼수록 참 웃긴 동물이더군요. 오랜 시간 전쟁을 바라보며 산 저이지만, 이상한 사상에 물든 세뇌된 인간의 뇌에 남은 것은, 말도 안 되는 같은 종족을 말살하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웃겼습니다. 인간말살. 그 이름도 찬란한 것이었지요. 독재를 품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란 대학살, 인종차별, 인간의 야만성을 전 인류에게 상기시키는 노릇들을 지난 세월동안 해왔다는 것입니다. 참 재밌는 동물인 거 같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인간이라는 것을 보면 불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있었지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동물은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입니다.



르네는 달랐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의 심박수는 정확하게 반복적으로 뛰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르네를 어떻게 이곳에서 꺼낼지를 생각해 봤지만, 저의 조건상 그녀를 이곳에서 탈출시킬 방법을 전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죄라는 이름이 되는 짓이었으니까요. 저 역시 벌은 받긴 싫었습니다. 사람들이 상상도 못 할 벌을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요. 저는 하염없이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그녀가 이곳에서 잘 버티다 탈출하게 되길 바랐을 뿐이었죠. 밤이면 그녀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눠줄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치들 틈에 작게 빛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강제수용에는 유대인만 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독일인이 나치를 지지하는 상황도 아니었죠. 전단지를 만들어 전쟁을 막으려고 하는 반란을 일으키는 독일인들도 잡혀 들어왔습니다. 나치에 대항하는 비밀조직이 있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는 있었지요. 어떻게든 르네가 그들과 연결되어 무사히 수용소를 빠져나오게 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오래될 것이란 걸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르네는 분명 저의 품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요.



르네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의 머리카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금발의 르네의 머리카락이 차가운 쇠자국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잡혀온 유대인들의 알몸은 차가운 물에 의해 씻겨져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발거 벗겨져 하얀 안개가 낀 수용소의 한편을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르네의 알몸을 보게 된 건 그때였습니다. 유리처럼 빛나는 하얀 육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수용소 광장에 떨리는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이곳은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수용소였습니다. 유럽과 소련 전역에서 온 유대인과 정신질환자, 심지어 장애인까지 그리고 정치범과 반활동가들이 수용소를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는 이유로 알몸의 늙은 노인은 머리에 총을 맞아 쓰러졌습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아들은 어느 산짐승의 포효 같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죽인 나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순간 주변에 있던 긴 막대의 철봉을 든 나치들이 그의 목과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발가벗겨진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수용소의 사람들은 아무런 소리를 낼 수가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이라는 것은 하얀 막 안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당당하게 알몸을 하고 서있는 르네의 눈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절망만 가득한 수용소의 광장에 부는 바람은 유난히도 차가운 칼날 같은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몸들이 춤을 추며 긴 바다에 이는 파도의 포말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름이 뭐야?"

"말 시키지 마. 저들이 들으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같은 마을에서 잡혀온 르네를 본 적도 없는 중년의 한스는 눈치도 없이 여기저기 이름을 묻고 있었습니다.



"넌 이름이 뭐니?"

"르네예요. 르네."



멍청하고 뚱뚱한 비개덩어리 같은 중년의 한스라는 인간이 감히 르네의 이름을 묻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르네는 달랐습니다. 그녀의 대답에는 한스를 향한 분노가 약간은 섞여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마치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신호처럼 느껴지는 억양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르네가 대견했습니다. 오랜 시간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가장 두렵고 공포스러워야 할 순간, 오히려 침착하고 고요했으며 그 파란 두 눈의 홍채는 더욱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르네는 수용소에 도착하자 선별되었던, 병들었던 사람들과 늙은 노인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왔는데, 거기 사람들 모두가 죽었어. 가스실에서. 그리고 화장터에서 태워졌지.

시체는 넘쳐났고 그 냄새는 지독했어. 우리는 다 죽을 거야. "



다른 수용소에서 옮겨 왔다는 키가 이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기린 같이 생긴 젊은 남자는 아우슈비츠라는 수용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르네 주변을 감싸고 있던 나치들의 행방이 묘현 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사람들을 두르고 있던 나치들의 대부분이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다. 르네는 주변을 둘러보았지요. 그녀의 푸른 눈에 들어오던 것은 어느새 멀리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였습니다. 그것은 회색으로 물든 수용소의 끝을 알 수 없는 허공에 물들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르네는 젊은 남자가 이야기한 그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신이 끌려온 이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본 것을 고개를 숙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자들과 남자의 무리로 나뉘어갔습니다. 르네가 여자들과 들어선 방안에는 나무로 칸칸이 짜인 곳이 벽에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양아버지의 마구간에 놓인 연장을 올려두었던 낡은 나무로 만든 벽장과 비슷했습니다.



" 몇 명이야?"

" 팔십 오명입니다."

" 이방은 세 명씩 칸하나로 정하면 되겠군."

" 어서 움직여."



작은 칸 안에 세 명씩 밀어 넣는 나치들 사이로 르네가 들어갑니다. 르네는 다행히도 몸집이 작은 여인들과 한 칸에 몸을 눕힙니다. 그렇게 정리가 된 방안에는 불조차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무게들로 나무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마치 영혼들이 노래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소리는 검은 방안에 움직이길 원하는 좁은 칸에 갇혀 있는 여인들의 육체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르네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치들이 사라지고 난 후, 어둠으로 물든 방한 가운데, 두 번째 칸에 누워 있는 르네의 머리맡에 자리했습니다. 그녀의 머리맡에 살포시 자리하여 잘려나간 머리카락의 거칠함을 느껴봅니다. 그녀의 밤은 깊고 어두울 것이며, 그녀의 푸른 눈은 이 사람들의 호흡으로 거친 검은 방안을 비출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다가가 속삭였습니다.



" 잘 자렴. 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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