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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헨발트의 마녀를 만나다

지옥 옆의 성(城)에 사는 그녀

by 구시안


3. 부헨발트의 마녀를 만난 르네






언제나 인간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죠. 그것은 제가 굳이 설명 안 해도 당신이 배우고 보아왔던 모든 것에 존재하는 증거겠지요. 단지,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르네의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언제나 잔혹한 일들을 버리는 대표적인 인간들은 시대별 역사라는 이름에 새겨져 있지요.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간이 버릴 수 없는 것이었지요. 인종청소. 그 잔혹함이라는 것은 늘 인간의 전유물이었죠.



르네가 독일 바이마르의 부헨발트까지 오게 된 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죠. 적멸의 수용소가 아닌 노동의 수용소였지만, 딱히 희망이라는 건 보이지 않았답니다. 어느 수용소든 피할 수 없는 것은 잔혹한 살인과 비명 속에 배를 갈려 죽게 되는 생체실험의 대상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죠. 매일밤 수용소의 긴 굴뚝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기는 멈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르네 역시 시간이 문제였죠. 저는 여전히 르네를 바라만 보고 있었답니다.



르네의 아침은 빠르게 시작됐습니다. 영하 이십도 까지 올라가는 혹한 속에 수용소에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았죠. 하루에 눈을 뜨면 침상에서 움직이지 않는 여성들은 계속되어 갔지요. 그 추위란 서로의 체온으로도 살아남기 힘든 것이었답니다. 남자들의 수용서에서는 비명이 끊이지 않았지요. 매일밤 소각장에서는 절규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죠.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답니다.



아름답던 금발의 머리카락은 모두 깎였고, 얇은 줄무늬 옷 한 벌이 르네의 전부였습니다. 하루에 한 끼, 썩은 순무국과 빵 반쪽이 전부였죠. 어디선가 수용소로 사람이 밀려들 때면, 그것조차도 먹을 수 없는 날도 많았습니다. 르네의 몸은 빠르게 메말라 갔죠. 그것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은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런 감정을 르네는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죠. 그런 르네를 저는 잃고 싶지 않았답니다.



르네가 아우슈비츠로 갔다면 그녀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얀 연기로 피어 올라 사라졌을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끝나는 게 다행이었을까요? 어차피, 그 죽음의 시간이 조금은 뒤로 물러나 있을 뿐이란 걸, 르네는 모르지 않았습니다. 매일이 다른 수용소의 환경을 소리 없이 모든 것을 관찰하는 그녀의 푸른 눈은 한 마리의 매와 같아 보였죠.



수용소의 겨울은 혹독한 시간이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르네는 수용소 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게 소리 없이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아이였죠. 나치들의 인종청소는 독일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수용소 광장에는 어제는 숨을 쉬었을 그들의 목이 벽에 설치된 날카로운 고리에 걸려 있었죠. 그것을 보고 짖어대는 군견들은 더 보기 싫은 것이었답니다. 오히려 수용소 안에 있던 군견들의 사육사가 르네가 머무는 방보다 좋아 보였죠.



오랜 시간을 사람들 세상에 살다 보니, 저에게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그런 광경쯤은 잔인한 것도 아니었죠. 당신이 알고 있는 잔인함보다 더 오래된 빙하 속에 묻어있는 잔인함은 늘 인간의 태초부터 자리했던 것이랍니다. 가끔씩 르네가 청소를 하러 들어가는 의무실 한편에는 부검용 도구의 칼과 날들이 놓인 투명한 유리벽장 안에서 시퍼렇게 빛을 내고 있었지요. 사람들의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는 의무실을 청소하는 일도 르네의 몫이 되기도 했답니다.



사람의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해 드리지요. 르네가 들어갔던 의무실을 따라가며 보았던 광경이었어요. 그것을 만든 자는 어쩌면 제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보낸 수하쯤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죠. 그것은 천재적이고 기발한 것이었죠. 정치범들이 수용된 건물에 자리한 생체실험이 난무하던 그 의무실에는 수감자들의 신장을 제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죠. 문이 없는 하얀 의무실 벽에 그어져 있는 수감자들의 키를 제는 눈 끔들 사이로, 그 눈끔들이 새겨진 길이 만큼의 구멍이 뚫려있었죠. 수감자들은 자신의 목덜미에 구멍이 날거란 걸 상상조차 못 했을 겁니다. 키를 제는 그 눈끔 사이로 총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었죠. 그곳에 뒤돌아 서서 키를 제길 기다리던 사람의 목덜미에는 어김없이 구멍이 났습니다.



인간의 머리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지요. 저처럼 사악한 존재도 인정하는 잔인함이었으니까요. 의무실에서 자행되는 생체실험은 매일 새어 나오는 비명 속에 이루어졌죠. 그것을 보고 느끼는 르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가 본 르네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각오들이 숨을 쉬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느낄 수 있었죠. 그녀의 푸른 눈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본능이었죠. 그녀의 본능은 날 것과 같아서 반듯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거라는 의지의 불꽃을 매일 말라가는 육체 속에서도 그 불을 꺼트리지 않았습니다.



르네의 하루는 당신이 감히 상상할 만큼의 그것이 아니었죠. 르네가 이곳에 도착하고 아침을 맞았을 때 광장으로 집결하는 그녀의 눈에 들어온 수용소의 그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드넓게 펼쳐진 메마른 들판을 둘러싼 것은 길고 긴 전기철조망이었죠. 매서운 눈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망루의 위엄은 르네를 압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광장에 목이 매달려 흔들리던 사람들이었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던 한 여성은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고 말았지요. 그 옆에 서 있던 르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음에도 그녀의 푸른 눈에는 흔들림조차 없었습니다. 이동하는 사이로 보이는 시체들을 운반하는 수레는 이미 그들의 피로 빨갛게 물들어 갔지요. 그 수레는 마치 뱃머리에 솟아나 있는 긴 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생각하는 저 지하의 세계에 그 존재하는 닮아 있기도 했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레에 수북이 쌓여 가는 시체들은 르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답니다.



" 마녀 알아? 그 이야기 들었어요? 안나! 내 이야기 듣는 거예요?"

" 무슨 이야기요. 조금 조용히 말해요."

" 이 수용소에 마녀가 있대요. 대단한 독일년이."

" 들었어요. 사람의 피부를 벗긴다는 그 마녀. 아우 무서워."

" 그래요. 그 마녀요. 문신한 사람에 피부를 벗겨 장신구를 만든다죠."

" 아우.... 소름 끼쳐. 마주치지 않았으면...."

" 쉿! 개새끼들이 오고 있어요."



르네는 소리 없이 일을 하며 조용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르네의 머릿속에 흡수된 단어는 '마녀'였습니다. 수용소안의 수감자들 입에서는 남녀노소 할 거 없이 그 마녀의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었죠. 하나 이야기 해드릴까요? 르네가 있는 이곳의 수용소에는 당신이 나중에 알게 될지도 모르는 역사상 최고의 미친년이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일제 코흐. 저 역시 소름이 돋을 만한 엄청난 년이었죠. 아마도 제가 본 인간들 중, 여성으로는 최고였을 겁니다. 그 인간의 잔인함의 끝이 어디인지를 저는 그녀에게서도 보았거든요.



그녀의 남편이 부헨발트 수용소장으로 부임하자 모든 것은 바뀌어 갔답니다. 물론 르네가 있던 당시였죠. 사령관의 부인이었던 마녀는 어떠한 지위도 뛰어넘는 역사상 길이 남을 만한 사이코패스였답니다. 저 역시 인정하는 봐이죠. 그녀 역시 다를 것이 없는 사이코패스정도라고만 본다면 제가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녀의 행각은 엽기적인 기하학적이고 다채로운 것이었죠. 그 다양성이 제 이목을 끌었답니다.

마치 어릴 적의 르네처럼 말이죠.



마녀가 실질적인 권력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건, 르네가 수용소 생활을 시작한 지 삼 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였지요. 르네는 빠르게 지옥 같은 환경에 적응해 갔죠. 수용소가 지옥으로 변하던 시절. 그녀는 수용소와 삼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호화로운 별장에 살았지요. 일명 사람들은 그곳을 '지옥 옆의 성(城)'이라고 불렀지요.



수감자들이 애써 만든 가구와 뜨개옷, 술, 심지어 조각품까지 모두 그녀의 것이었죠.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수감자들의 피부를 이용해서 만든 그녀의 거실에 들여놓은 램프 갓이었어요. 말 다했죠? 더 웃겼던 건 어느 수감자의 피부로 만든, 장갑을 만들 때 쓰는 제본 커버였죠. 그 수감자의 손이 그녀의 손수치와 같았거든요. 그녀는 말을 좋아했죠. 타는 말 아시죠? 말을 타고 수용소를 순찰하며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수감자들을 채찍질했죠. 그녀의 입가에는 늘 웃음이 피어있었어요. 잠시 저는 생각했었죠. 저 여인도 혹시 우리 쪽이 아닐까? 그것은 그녀의 즐거움이 되어갔죠. 때로는 수용소 아이들을 불러 모아 수감자 처형 장면을 구경하게 했죠. 제가 그 순간 웃었던 건 이거였습니다.



"너희들도 복종이라는 것을 배워야? 이것이 복종이라는 것이란다. 보고 배워! "



그녀의 입가에는 사악한 마녀라고 불릴 만한 알 수 없는 기학적인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죠. 저는 이미 그녀의 미래가 어떨지 예견이 되었지만요. 사실 그녀를 데려가는 역할이 내게 주어진다면 더 재밌는 것들을 그녀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으니까요.



그녀가 즐겨 찾던 것은, 수감자들 중 문신이 있는 사람들을 추려내는 일이었죠. 선택된 자들의 피부를 잘라내 가공하여 거실 장식품들을 만드는 것이었지요. 그건 제가 봐도 엽기적인 것이었어요. '우엑' 하고 저도 모르게 혀를 내미는 순간들도 많았죠. 인간만이 가진 변태적 취향과 폭력행위는 그녀에게는 이미 탑재되어 있는 기본이었죠. 저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르네가 만나게 될 줄은 말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는 참 재밌는 캐릭터였죠. 잊지 못할 년이 될 겁니다. 하긴, 이미 잊힌 사람이긴 하죠. 그 마녀는 오랜 시간이 지나 감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서 죽었으니까요.



르네의 손은 시커멓게 물들어가고 있었지요. 무기공장의 노동이라는 것은 하루 열네 시간 이상 지속되는 고통의 시간이었죠. 환기구나 안전장비 조차가 없어 입을 틀어막은 헌 옷가지들로는 그 휘날리는 쇠 분진들을 막을 길도 없이 질식과 중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매일 널따란 손수레에 실려 나왔답니다. 그 후로 몇 달 정도를 르네는 무기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수용소와 조금 더 떨어져 있는 비행기 부품과 라디오 부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가게 되었죠. 그곳은 남성보다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나사 조립이나 전선 피복을 벗기는 일 같은, 여자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에 투입되었죠. 그때였죠. 그녀와 마녀가 만난 그날을 저는 기억합니다.



르네가 마녀를 만나게 된 것은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난 후,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르네가 입은 얇은 줄무늬옷에 스며들 때쯤이었죠.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마녀는 그렇게 르네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만이 갖고 있는 운명이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르네가 마녀의 손에 들어가게 될지 저도 몰랐으니까요.



" 우리 집에 메이드로 쓸 여자들이 필요해요."

" 하일 히틀러."

" 제가 직접 고르죠. 줄을 세워야겠어요."

" 하일 히틀러."



한 군데 모여 줄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란, 바람에 휘날리는 짙은 갈색의 갈대밭 같은 것이었죠. 모두가 반복되는 긴 노동 끝에 아무런 힘없이 부는 바람에도 고개가 꺾이고 있었죠. 저 역시 그 갈대밭 어디에 스며있는 르네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그녀의 피부의 냄새를 찾아다니고 있었죠. 이상하게도 그녀는 마치 그들과 한 몸이라 된 듯 존재를 마저 감춘 듯 보였습니다. 저 역시 이상하게도 르네의 향기가 잘 느껴지지 않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요.



" 너. 그리고 너. 그리고 거기 너. 그리고 너! 고개 들어봐."



르네였죠. 마지막으로 불린 사람의 얼굴은 분명 르네였습니다. 아차 싶었죠. 하필이면 저 마녀에게 르네가 흘러들어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답니다. 르네의 시선은 마녀를 향해 있었죠. 그 마녀는 말했습니다.



" 그래 너. 너 말이야. 제는 빼고 너로 하겠어. 근데 너 이름이 뭐지?"

" 르네.... 르네예요."

" 르네. 웃기지도 않네. 그래. 쓰레기라고는 부르지 않겠어. 르네? 어딜 봐! 나를 봐야지!"



마녀가 르네를 선택한 것은 그녀의 푸른 아름다운 눈동자 때문이었죠. 그 마녀의 눈 역시 회색빛이 도는 옅은 파란색의 눈동자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르네의 눈과 그 마녀의 눈은 거짓말처럼 닮아 있었다는 게 기억나는군요. 회청색에 가까운 그녀의 눈에는 아직 르네가 보지 못한 변태적이며 기학적인 그녀의 만행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마녀 역시 자신과 비슷하게 보이는 르네의 눈동자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라 뺏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늘 독보적이야 했거든요. 르네와 마녀는 그렇게 만났지요. 돌이켜보면 르네는 마녀를 만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녀와 르네는 이상하게도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기묘한 기운이 흐르는 그 두 눈동자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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