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 존경은 위계가 아니다
개인 브랜드 운영시절. 옷갖 수모를 다 겪으며 패션 디자이너로 버텨온 날들. 그것을 참아내며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것을 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낮이면 사무실에 앉아 디자인을 했고, 옷을 만들었으며, 밤에는 장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잠을 못자도. 몸이 힘들어도. 신났으며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함 한 장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청와대가 그려진 명함이었다.
나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하면서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는 이루 말도 전부 설명하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대만. 일본. 바이어들이 반응을 했다. 그것은 실로 2년이 흐른 뒤에야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여기저기를 다니며 힘들었지만, 진실로 웃으며 땀을 흘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4월이 시작될 무렵. 5월의 그 행사로 인해 그렇게 될지는 몰랐던 그때가 떠올랐다.
" 여기 옷이 너무 이뻐서요. 저희가 이번에 이벤트가 있는데 단체복을 맞출 수 있을까요?"
건네받은 명함을 보니 청와대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남산에 자리한 사무실로 찾아가 다음날 계약을 했다. 이런 일을 해본다는 것은 나의 포트폴리오를 장식하기 좋은 것이라는 욕망이 불타올랐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도 오다니. 하늘을 찌를 듯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음 날부터 달라졌다. 바로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하고 다시는 나랏일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시시콜콜 간섭, 하나하나 따지고 가야만 하는 답답함. 끝없는 설명. 디자인 변경. 정치적 색이 한쪽으로 쏠린다며 계속 되는 색깔 변경. 그리고 색의 비중까지 정확하게 분배해야 했다. 그것은 실로 무거운 설악산 흔들바위 같은 것이었다. 그냥 흔들어 떨어트려버리고 싶었지만, 절대 떨어트릴 수 없는 바위같은 것이었다. 계약서에는 나의 이름 석자가 신나는 율동감으로 사인되어 있었다. 물릴수도 없는 노릇에 무겁기만 했다. 그 이후로 나는 함부러 신나게 사인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남산에 위치한 사무실을 얼마나 왔다 갔다 거렸는지. 빼앗긴 나의 소중한 시간들. 순수했던 나의 패션 세계. 모든 것은 5월의 그 행사에 입을 국회의원들의 단체복을 맞춰주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달. 그 한 달을 기억해 보는 밤. 아무리 청와대고. 나발이고. 어떠한 권위가 들어있는 명함을 들고 와도 나는 눈하나 꿈적 안 하는 놈이었다. 달라질 필요도 없고, 그 상대에게 뭘 더하거나, 덜 하거나, 할 필요도 없이 그저 평상시처럼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랏일은 말이 많이 달랐다.
그 일을 맡게 되고, 종종 비서실로 연락할 일이 있었는데. 출입부터 절차까지 엄청난 시간 소비는 이루어졌다. 수정되고, 달라지고, 샘플을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들고, 그렇게 지독한 한 달 후, 옷을 납품하고 나서야 정산을 받고, 나는 동네 포장마차에 주저앉아 소주를 부었다. 다시는 나랏일 따위는 안하리라. 나는 내 입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 프로젝트를 나의 포트폴리오에 넣지 않았다.
직함.
우리는 이것을 살아가며 마주한다. 불현듯. 혹은 당연하게 받게 되는 명함. 상대의 직종을 확인하는 것.
마치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될 이름처럼, 직함은 늘 공기보다 위에 놓인다. 소리 내어 부르기 전부터 목이 잠기고, 호칭 하나에 사람의 자세가 달라진다. 고개가 먼저 숙여지고, 말은 둥글게 깎인다. 회장님, 사장님, 이사님, 박사님. 이름보다 앞에 붙은 말들이 사람을 대신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 말 앞에서 조아린다. 직함이 곧 인격의 증명서라도 되는 것처럼. 그 아래에 적힌 삶의 균열이나, 밤에 혼자 마주하는 공허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대학, 큰 회사, 국가의 심장부를 오갔다는 이력, 명함 위에 반짝이는 금박 글자. 그것들이 사람을 높이 들어 올리고, 우리는 그 높이를 존중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종이 한 장 같고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직접 확인이 되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배웠다. 금박이 뭐든. 고개를 숙이는 대신 눈을 마주치는 법을. 위를 올려다보지 않고, 같은 높이에서 숨 쉬는 법을. 직함은 사람의 일부가 아니라, 잠시 걸치는 외투라는 것을. 벗으면 남는 것은 결국 같은 살과 뼈, 같은 두려움과 욕망이라는 것을.
내가 사회에 나와 겪은 대표님들이 그랬다. 사시사철 혀가 대일만큼의 뜨거운 차를 내주거나, 요점이 없는 내용이거나,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 거의 대부분이다. 무슨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모두 각 파트에 책임자들이 출동을 해야 하는 블랙코미디였다. 지금의 나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 짜르지도 못하게 만든 이유는 내가 없으면 안 되게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나는 그들을 향해 똑바로 쳐다보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회장님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회사보다 회장이 더 늘어나는 세상에서, 직함은 증식한다. 확인되지 않은 이름들, 스스로를 높이 쌓아 올린 말들. 그 말들 사이에서 사람은 점점 작아진다. 직함이 커질수록 목소리는 얇아지고, 질문은 사라진다. 우러러보는 시선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나는 그 사이를 헤매지 않는다. 허상의 높이에 현기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직함은 빛나지만,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 그림자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잃는지 나는 보아왔다. 불려야 할 것은 직함이 아니라 이름이고, 존중받아야 할 것은 위치가 아니라 태도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것은 종종 비어 있다. 높이 쌓인 말들 사이에는 침묵이 있고, 침묵은 질문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더 정확히 눈을 응시하며 말한다. 당신의 직함이 아니라, 당신에게. 위가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곳에서야 비로소 대화는 시작된다.
직함의 허상은 높다. 그러나 진실은 낮은 곳에 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같은 바닥에 선다. 같은 숨을 쉬고, 같은 불안을 안고.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고개를 들고 말한다. 존경은 위계가 아니라 이해에서 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