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자 글 중에서
* 이 글은 최민자, <'특이점'의 도래와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 [동학과 현대과학의 생명사상](모시는사람들)의 서론 부분입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딥블루가 체스에서 처음 인간을 이긴 후 왓슨이 퀴즈에서, 그리고 알파고가 바둑에서 잇단 승리를 거두면서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예단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체스에서 처음 인간을 이긴 후 20년도 안 걸려 체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복잡한 패턴 이해력을 요구하는 바둑에서 이겼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깊이 들어왔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1950년대에 헝가리 태생의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점점 가속화하는 기술의 발전이 인류 역사상 특이점의 도래를 촉발할 것이며, 그 후의 인간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1라고 예단한 바 있다. 수학뿐만 아니라 양자역학 연구, 게임이론 연구, 컴퓨터 구조 연구 등으로 물리학과 경제학 그리고 컴퓨터 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는 기술의 가속적 발전과 특이점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인간의 발전이 선형적이지 않고 기하급수적이며 이러한 기하급수적 증가의 폭발성이 완전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이점’이란 용어는 천체물리학에서는 ‘빅뱅 특이점’이라고 하여 대폭발(Big Bang) 전의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가 무한대인 상태를 일컫는 것이지만, 이를 사회경제적인 의미로 원용하여 돌이킬 수 없는 인류 문명의 대변곡점을 지칭하는 것으로 광의로 사용되고 있다. 기술 발전의 가속화로 인류가 무한히 가파른 변화의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시점, 이른바 ‘양자 변환(quantum transformation)’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우주 주기에 곧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고생물학자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점증하는 복잡성과 상호연결로 표징되는 진화의 방향을 연구한 끝에 인류가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영적 탄생)’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샤르댕은 오메가 포인트로 이어지는 마지막 단계가 그리스도 의식의 탄생, 즉 ‘집단 영성의 탄생’이라고 보았는데, 그가 사망하기 직전 최초의 컴퓨터 개발을 목격하면서 이 같은 신기술이 오메가 포인트를 훨씬 더 앞당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독보적인 인공지능 개발자로서 현재 구글에서 인공두뇌 개발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4승1패로 압승한 것은 가까운 미래에 두 개의 중요한 시점이 도래할 것임을 확신하게 하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미래학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커즈와일에 따르면, “2029년에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게 되어 인류와 인공지능이 협업하는 시대가 되고, 2045년에는 인공지능과의 결합으로 인류의 육체적·지적 능력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특이점이 온다”는 것이다.2 이러한 커즈와 일의 예단은 알파고의 딥러닝(deep learning: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집합) 기술이 인공일반지능(AGI) 개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인공지능 분야 전문가들의 전망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급속한 진보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이 가속화되고 있고 또한 인공지능을 갖춘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가 ‘호모 사피엔스’와 공생하는 시대가 임박한 것으로 예측되면서 특이점의 도래에 대한 커즈와일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커즈와일은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앞으로 우리의 신체적·지적 역량을 확장하고 인류와 공생하며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기술적 낙관론(technological optimism)은 희망적인 것이긴 하지만, 아무런 대비 없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혜택과 잠재적 위험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전문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대체’나 ‘통제 불능’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인간 역할의 변화’와 ‘삶의 모습 변화’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SF 작가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인류의 발전에도 특이점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처음 제안하면서 인공지능이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에 도달하면 인간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또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이보그(cyborg)*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인공두뇌학의 세계적 권위자 케빈 워릭(Kevin Warwick)은 그의『 기계들의 행진 March of the Machines』(1997)에서 21세기 지구의 주인은 로봇이라고 단언했다.
* 사이보그는 cybernetic organism의 약자로 수족이나 내장 등 뇌 이외의 부분을 교체한 개조인간, 즉 유기체와 기계장치의 결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1950년대에 의학자들이 창안한 개념이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빅데이터(Big Data)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의 기술 혁신이 기존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살고 있다. 이 외에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클라우드 컴퓨팅, 3D프린팅,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의 신기술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오면서, 인공지능 기계들이 진화의 선봉에 설 것이라는 의견과 더불어 우리의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 하는 형식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에 지능의 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 기계가 공생하는 메타트렌드(metatrend: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경향) 시대의 키워드는 ‘창조, 융합, 연결, 확장’3이다. 이원성과 분리성의 원천인 인간중심의 협소한 사고체계로는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미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생관계는 ‘의미 있는 인간 제어’ 없이는 기계에 권리를 넘기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이 소통하는 새로운 통합모델, 다시 말해 인공지능 윤리가 준수될 수 있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모색이 시급하다. 특이점은 아무런 윤리적 제약 없이 일사불란하게 핵폭탄 제조에 매진했던 ‘맨해튼프로젝트(Manhattan Project)’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우선 특이점 논의가 왜 중요하며, 그것의 미래적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지식혁명,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을 넘어 ‘특이점’을 향하고 있는 기술의 진화와 그것의 사회적 영향 및 파급효과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끝으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인류의 선택과 과제에 대해, 특히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논의와 그 활동들에 대해 살펴보고 동학(東學)에 새로운 문명의 길을 묻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