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시는 책 - 020
<<근대 신청년과 신문화운동>>(성주현 지음)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왕성한 청년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올해로 창립100주년을 맞이하는 "천도교청우당(현 천도교청년회 / 천도교청년당)"의 창립 과정과 조직변천, 그들이 전개한 신문화운동과 개벽운동의 배경사상과 전개양상의 연구를 통해 한국 근대사에서 부당하게 소외되었으며, 우리 사회의 미래에 새로운 길의 가능성을 제안해 주는 자주적, 주체적, 개벽적 근대의 길을 제시하였던 천도교청우당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말하자면, "천도교청년회창립100주년 기념출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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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언제나 시대의 화두... 지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조국전선"의 중심에는 청년(학생)들의 열패감(기회균등에 대한 공정함을 요구하고, 부당함에 분개함)이 개재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실질적인 것이든, 그것을 빙자한 적폐세력과 무늬만 '언론'인 것들의 작당에 의한 신문팔이/광고팔이 때문에 침소봉대된, 우리나라 언론사상 유례없는 신기록 만들기의 장이든 간에, 청년문제가 피동적으로 개입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등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수많은 2030세대가 기성세대와 적대감을 노출하면서까지 분개하고있다는 소문(?)도 있으나, 그것을 '한 흐름'으로 묶어서 절대시할 수 있는 수준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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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서 ‘청년’은 언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가. 자의식을 가진 계층으로서, 그리고 시대적 사명감을 자임하는 집단으로서 청년은 1910년 일제의 국권 피탈에 직면하여 한민족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 역사에 등장한다. 그들은 일본 등지를 유학한 유학파 청년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세계 신사조를 익히고, 세계 정국(政局)을 파악하고, 자신의 실존적(인간적), 민족사적 위치를 자각하면서 서서히 민족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3.1운동은 이러한 흐름을 귀납하고 다시 빅뱅을 일으키며, 청년을 위시하여 ‘여성’ ‘학생’ 등의 계승이 새롭게 우리 역사에 정체성과 그 면모를 부각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천도교청년회(청년당, 청우당)’이다.
"3·1운동 이후 창립되기 시작한 청년단체는 1920년대 초반 집중적으로 조직되었는데, ... 청년단체가 1920년에 350여 개, 1921년에는 670여 개, 그리고 1922년에는 무려 760여 개에 이르렀다. 이중 종교계 청년단체는 1920년에는 98개에 불과하였으나 1922년에는 271개가 조직되었다. (13쪽) ... 천도교청년당은 조직상의 규모나 활동 역량으로 보면 일제강점기 최대의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와 견줄 만한 단체였다.(17쪽)"
그 천도교청년회(청우당)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실 "천도교청우당(청년당)"은 '하나의 청년단체'가 아니라, '전위단체' '전위정당'임을 자임하고, '청년운동'은 그 하위 부문운동으로 삼았으므로, "천도교청우당-청년당" 운동을 '청년'운동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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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청년운동'은 '청년계층'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개혁하고 변혁하고 정의롭게,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운동(민주화운동, 촛불혁명)이었다는 맥락에서 보면 천도교청우당의 전위운동으로서의 신문화운동, 통속운동(오늘날의 시민운동)은 그 맥락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천도교청년당 대회 사진>에는 천도교청년으로서 어린이날을 창시한 소파 방정환과 천재적 운동가로 알려진 현파 박래홍, 청년당(청우당)의 최고 형님 김기전 선생(?/최종확인 필요), 유학파 청년운동가 이인숙 등이 있으며, 천도교원로로서 격려차 참석한 권동진, 오세창, 권병덕, 이종훈 (이상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당시 최고의 천도교 이론가 이돈화, <천도교회월보>의 핵심 필자 이종린 선생 등도 함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단일조직으로서는 최대의 청년단체였던 천도교청우당(청년당)은 1919년 9월 2일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라는 연구 교양 단체로 출발하여, 8개월 만에 ‘천도교청년회’라는 청년조직으로 성장하고, 그리고 만 4년만인 1923년 9월 2일에는 ‘천도교청년당’이라는 ‘전위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천도교청년동맹과 일시적 분화를 몇 차례 겪었으나 천도교청우당으로 통합되면서 20년간 7대 부문운동과 통속운동, 전적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일제의 전시체제하에서 해체되었던 천도교청년당은 해방 직후 부활하여, 혼란한 해방공간에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익을 넘나들며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남과 북의 주류로부터 모두 탄압을 받고, 1949년 전후로 해체되거나 지하로 잠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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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청우당(현, 청년회)의 창립과 운동전개, 그리고 그 부침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결을 그대로 같이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적폐 청산이나, 분단 극복을 위한 민족사적 과제에 골몰하는 까닭도 모두 천도교청년회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속에서 그 원형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천도교청우당은 ‘개화’와 ‘척사’ 너머 ‘개벽적 근대’를 지향해 온, 우리 한국근대사의 숨은 숨결이다. 우리 사회의 선진화, 통일조국의 건설은 이 천도교청우당의 복권과 재활이라는 과제와 한배를 탄 운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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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청우당은 최대 4만 명의 회원(당원)을 거느렸던 적도 있으며, 평북 강계에서부터 전남 고흥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역, 나아가 멀리 일본과 만주(간도) 등지에 이르기까지 200여 개의 지부조직을 설치했다. 이 책에서는 실증 자료에 따라 조직(임원), 지역, 설립과 주요 활동 등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도표화하여 제시하였다. 그리고, 회의록이나 신문기사 등을 통해 그 활동을 세밀히 분석하고, 전체 규모와 종합적인 의미 등을 망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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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단체(청년회, 청년당, 청우당) 조직의 내부 부문에서도 포덕부, 지육부, 강연부, 음악부, 편집부 등으로 나뉜 부서활동에 실제와 그것이 조직 내적으로나 대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 상황을 실증 사료에 근거하여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천도교청년당은 단일조직으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전국(해외)적인 분포와 조직적인 활동, 다양한 부문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이 이처럼 폭넓게 확장된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확산되던 청년활동의 전 부문을 망라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므로, 천도교청년당의 활동 내역을 검토함으로써 당시 청년운동 일반의 동향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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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청년들의 개벽운동 중 "신문화운동"은 한편으로는 천도교의 종교적 포덕(布敎)운동이면서, 한편으로 한 교단사적 의미를 넘어서는 공공성을 띠고 진행되었다. 첫째는 3.1운동 이후 변화된 정세 속에서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천도교청우당이 동학농민혁명과 갑진혁신운동, 3.1운동 등 동학의 근대화, 자주화 운동의 성과 위에 조직되고 그 운동의 이념과 지향을 계승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단지 일제강점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투쟁적, 소극적 의미를 넘어, 자주독립 이후 신 국가 건설을 위한 비전과 동력을 마련하는 창조적, 적극적 의미의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이는 주로 동학의 보국안민 사상에 기반하여, 새롭게 건설되는 국가의 비전을 밝히고 있다. 셋째 천도교가 동학농민혁명과 갑진개화혁신운동, 3.1운동으로 이어오며 부단히 전개한 ‘신문명운동’, 즉 동학-천도교의 후천개벽운동을 전개한다는 측면이 있다. 즉 동학-천도교의 운동은 시대환경에 따라 일국적 관점(자주독립)하에서 진행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시선은 세계보편사적 흐름의 문명사적인 전환, 즉 ‘개벽의 지평’을 향하고 있었다. 천도교청우당은 7대 부문운동(청년, 여성, 학생, 어린이, 노동, 농민, 상인)을 통해 인간의 정신개벽과 민족개벽, 사회개벽 등의 개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이 지구상에 진정한 평화세계가 건설될 것을 희망하고, 믿고, 추구하였다.
천도교청우당(천도교청년회)의 대표적인 운동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어린이날과 어린이운동 : 오늘날 5월 5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은 ‘천도교청년’ 방정환을 비롯한 천도교청년회의 산하단체인 ’천도교소년회’의 지도위원들(천도교청년회원)이었다. 방정환 등은 어린이날 제정 외에 잡지 <어린이>지 간행과 전국 순회공연 등을 통해, 미래의 희망이자 독립국가의 동량으로 어린이를 양성하고, 그들의 인격적 해방을 추구하였다.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는 그 이듬해 방정환 등 천도교청년회(소년회)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여, 범사회적인 운동으로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개벽>>, <<신여성>>, <<별건곤>> :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가장 대표적이고 다대한 성과를 남긴 �개벽�지와 여성잡지 중에서 돌올한 <신여성>, 그리고 풍속교양 오락잡지로서 삼천리와 쌍벽을 이룬 <별건곤> 등은 모두 천도교청우당 산하 <개벽사>에서 간행한 잡지들이다. 천도교청년들은 당시의 암울한 민족현실을 타개하는 길은 민중의 계몽과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잡지 간행을 통해 사상적 토대를 굳건히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개벽>은 72호를 발행하는 동안 36호가 발매금지, 중지, 압수를 당하고 그 밖에 수많은 삭제조치 등을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김소월, 현진건 등 수많은 문학가를 배출하고, 당시 세계 사조를 소개하고, 민족문화조사사업 등을 통해 일제의 식민정책에 맞서는 발군의 성과를 거두었다.
(3) <신간회>운동 참여 : 일제강점기 최대의 민족운동 좌우 합작조직인 <신간회> 결성 당시 천도교청년당은 사회주의 계열 제 단체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계열의 최대 단체로서 핵심적인 연대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천도교의 민족운동 사상이 사회주의와도 무리 없이 연계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전국의 지부조직을 갖춘 최대규모의 단일 운동조직인 청년당의 조직력과 활동력은 단연 손꼽히는 민족운동 연대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간회>는 결국 중도에 해산하고 말았지만, 그 경험은 해방 이후,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계승되었다.
(4) 순회강연 활동 : 당시 청년운동 일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도교 청년활동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서울과 지방(순회) 강연 활동이었다. 청년 강연은 계몽적인 내용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특히 일본 유학생들의 귀국 순회강연 활동을 통해) 세계의 신사조와 신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민지와 문명의식을 개발하여, 자주독립을 위한 인적 기반을 조성하고,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국민(시민)의 위상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강연은 청년은 물론 여성, 어린이 등으로 특화되기도 하고, 순회강연을 넘어 강습회와 야학 운영이나 학교 설립으로 진전되기도 하였다. 또 한반도를 넘어 만주에까지 지부 조직을 두고, 순회 강연, 선전, 교양활동을 전개하면서, 때로는 만주 근거의 무장항쟁 조직과도 연계하기도 하였다.
(5) 천도교청우당(청년당, 청년회)의 신사상 운동 – 삼대개벽운동 : 3.1운동 이후 청년 운동은 새로운 사회(공화국 건설을 통한 새로운 국가, 신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사회)를 지향하며 약진하였다. 새로운 운동은 새로운 주의를 요구하였고, 새로운 사상용어를 요청하였다. 서구에서 유래한 많은 신문명어들이 주로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지만, 그 개개의 용어들을 살펴보면, 당대 신청년들이 특히 한국적 상황 그리고 한국전통의 사상적 기반 위에서 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근대적 사상, 철학 용어는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는 측면을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근대사를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였으나, 이 책에서는 특히 천도교 청년운동가들이 이를 천도교(동학)이라는 사상적 기반 위에서 재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구 신사조-개조주의를 참조하되 이를 동학 고유의 개벽사상으로 재해석하고 재조명하여 ‘삼대개벽운동’(정신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으로 제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천도교청우당의 통속운동, 시민운동의 뿌리가 되다!
오늘날 시민운동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1980년대의 사회변혁운동 이후 사회운동이 일상화되고 시민사회 속으로 파고들면서 시민운동이 성장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7, 80년대의 변혁운동이나 90년대 이후의 노동운동도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90년대 이후 시민사회운동도 일제강점기 ‘통속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통속운동은 일제강점기 국내에서의 신문화운동, 교육운동, 민족유일당(신간회) 등을 통한 자주독립운동과 달리 사회 일반민중의 생활상의 개선이나 풍속개량과 같은 계몽운동의 성격을 띤다. 천도교청우당(청년당) 역시 이 통속운동을 전개하여,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고, 장기적으로 민중의 의식과 생활수준을 고양하여, 개벽운동의 전위, 민족혁명(자주독립)의 근거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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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신청년과 신문화운동>(성주현 지음)의 성과
명칭과 성격을 달리하며 1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천도교 청년단체의 설립 배경과 시기별 조직 체계와 운영 양상 그리고 특히 1930년대 천도교 청년단체의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의 시대적 대응 양상, 대표적인 운동인 부문운동에 대한 분석 등을 다룬다. 이를 위하여 일제 당국의 각종 정보문서와 청년당 입당원서와 당원성적일람표, 천도교 청년단체 발간자료, 일제 강점기 신문, 잡지 등에서 방대한 사료를 발굴/발췌하고,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통계로 작성(표)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학문적, 민족사적 성과이다.
○ 천도교청우당 100년, 살아 있는 민족운동 역사
천도교청우당(현, 청년회)는 올해 9월 2일로 100주년을 맞이한다. 전국규모 조직으로서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직은 기독교청년회(YMCA) 등 손에 꼽힌다. 더욱이 천도교청우당(청년회)와 같이 한국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중심에, 핵심에, 선두에 서서 피흘리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또 민족의 독립, 민족의 통일을 위해 전심전력한 조직으로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천도교청우당(현, 천도교청년회)은 북쪽에도 ‘북조선천도교청우당’이라고 하는 ‘뿌리와 역사가 같은’ 형제 조직을 갖고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도 하다. 1980년 대 이후 침체일로를 걸어온 천도교청년회는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책의 발간과 더불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 책에 실린 역사와 천도교청년운동의 이념 들은 ‘오래된 미래’로서 ‘예언된 헌장’으로서, 개벽세상, 통일세상, 평화세상으로서의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의 새로운 차원을 기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