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의 가치와 목표 (2)

세계시민 양성과 외국어 교육

by 김현희

"세계 시민 정신을 위한 교육 가운데 경시되고 있는 한 요소는 바로 외국어 교육이다. 모든 학생은 적어도 한 가지 외국어는 제대로 익혀야 한다. 다른 문화 집단의 지성인들이 어떻게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분할하는지, 모든 번역이라는 것이 어째서 불완전한 해석인지 이해하는 일은 어린아이들에게 문화적 겸허함에 관한 근원적 가르침을 줄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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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세계 시민 양성론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영어교육이다. 하지만 시민교육과 영어교육의 연결고리는 피상적이고 편협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의 문화를 알고,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외국인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경제교류를 통해 국익을 수호하고 한국의 위상을 널리 떨쳐 국제화 시대의 주역의 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 관점에서 학생은 국가의 인적‘자원’이고 영어는 링 위에 오른 선수가 장착해야 할 ‘무기’이다.

그러나 어휘나 문법과 같은 외적인 구조를 습득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시민성이 길러진다고 보는 것은 오해다.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외국어 교육은 시민성 함양에 방해가 되고 오히려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인간관을 주입할 수 있다. 언어를 대하는 방식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 언어가 품은 세계관을 향한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외국어를 소유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려 드는 것은 영어를 맹목적으로 물신화하고, 추종하고, 신격화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복욕과 굴종적인 자세는 동전의 양면과 같고,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시민성의 대척점에 있다. 시민교육의 일환으로서 외국어 교육의 의의는 학습자가 이질적인 세계관에 이입해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말대로, 우리는 외국어를 통해 ‘타인들이 그들 고유의 조건에서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6학년 수업시간에 famous (유명한)이라는 단어를 다루게 됐다. 학생들에게 이 단어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을 물으니 BTS, 문재인, 손흥민 등이 나왔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아동 성폭행범 '조○○'을 언급했다. 다른 아이들도 깔깔 웃으며 그 이름을 호명했고 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그 사람이 떠오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그 이름을 언급하며 웃는 상황이 피해자들 입장에서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비록 이 자리에 그들이 없다고 해도 말이죠.” 내 말에 아이들은 웃음기를 거두고 동의한다는 표시를 보내주었고 수업은 계속됐다. 날 것 그대로의 아이들의 모습은 그렇다. 순수하고 회복력이 뛰어나며 강인하고 유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경험과 사고력의 부족으로 인해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거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에 서툴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인을 쉽게 도구화, 대상화하기도 한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 중 하나는 타인이 처한 상황의 맥락에 흠뻑 젖어 완벽하게 이입해 보는 경험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단순한 동정심을 품는 행위 이상의 활동이다. 누군가가 되어 보는 경험, 존재의 개별성과 내면적 깊이를 가늠해 보는 경험,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헤아리는 경험을 통해서만 우리는 윤리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를 제각각의 언어로 표현했는데 예를 들어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인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은 자신을 '타자와 가상적으로 동일화하는 과정'이라 표현했다. 프랑스 철학자 라캉도 타자와의 동일화와 성장의 관련성을 '거울 이론'을 통해 강조했고, 누스바움은 이와 같은 이입 능력을 '문학적 상상력'이라 명명했다. (동화와 이입 이를 통한 성장에 대한 탁월한 묘사는 영화 '조조 래빗'을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sickalien/348)


한편 동화, 이입, 공감, 이와 관련한 시민성에 대해 논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사안이 있다. 편중된 공감 능력은 시민역량에 해가 되며 내집단을 향한 과한 이입은 민족주의, 국수주의, 집단 이기주의의 형태를 띤다. 이상화한 외집단을 향한 지나친 동화와 이입은 사대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외국어 교육은 가장 강력한 동화와 이입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영어를 '무기'화했던 종래의 교육관은 물론이고 지금도 시중의 수많은 영어 학습 프로그램에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요즘 많은 영어 능력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영어 학습 노하우를 전하고, 영화나 미드 혹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들어 양질의 영어 학습 프로그램 방송을 제공한다. 그런데 관찰 결과 이들이 굉장히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는 '원어민처럼 말하는 방법', '미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혹은 '영어 말발로 CNN 기자를 제압한 한국인 ○○'와 같은 표현이다. 물론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학습자들의 입장에서 현지의 영어를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목적을 '영어 원어민처럼 되기' 혹은 '외국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듯한 암묵적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고 이는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 시민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간 (세계)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지 않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봉준호는 이렇게 답했다. "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 (오스카는 로컬이다). 나는 그가 오스카의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기자를 공격하기 위해 이와 같은 말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문맥을 봐도 그렇다). 문화 생태계를 질식시키는 표준화, 일극화 현상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당당한 예술인의 태도는 이미 그에게 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외국어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시민성도 이와 같다. 세계 시민은 하나의 기준과 표준에 포섭되지 않는다. 문화적, 정치적 지향점은 물론이고 언어적으로도 원어민의 표준 영어를 이상향으로 삼거나 그들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다양한 주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익숙하지 않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이로부터 관용과 포용 그리고 참여의 정신을 배우는 것 등이 우리가 외국어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시민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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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 예전에 썼던 글 https://brunch.co.kr/@sickalien/44

참고도서

1,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151쪽, 마사 누스바움, 궁리출판

2. 세계로 오다-언어로 오다 (Zur Welt kommen-Zur Sprache komme, Frankfurt: Suhrkamp),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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