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젖이 부족한 어떤 분은 어쩌면 젖이 넘치도록 많았다는 내 이야기가 부러우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약이 올랐다.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아프기는 오지게 아프고
돈도 왕창 깨졌다!
젖이 부족한 사람이 누군지 특정인도 없는데,
마냥 샘이 났다.
나도 그냥 편하게 분유 사서 먹이고, 자고 싶었다.
모유수유는 남편과 교대도 할 수 없었다.
함부로 유축을 해서도 안 되었다.
비우면 비워낸 만큼 더더 차올랐다....
나 홀로 외로운 싸움이었다_
몸고생 마음고생 돈고생까지
정말 풍년이었다.
제일 싫은 거는 아무 때나 젖이 줄줄 샌다는 점이었다.
수유를 시작하면 반대쪽 가슴에서도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정말 초원의 젖소가 된 것 같았다.
남편과의 시간을 보낼 때도 난 수유브라를 벗을 수가 없었다.
그 특유의 속옷 색깔도 너무 싫었다.
차라리 초등학생용 속옷이 이것보다 여성미 있었다.
가슴이 이 말썽이니 남편과의 시간도 자신감을 잃어가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재미도 없어졌다. 꼬순내가 폴폴 나는, 그야말로 신상(인간사람 새 거)을 대하다가 남편을 대하면 구릉내가 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무 데서나 앞섶을 풀어헤칠 수 있는 옷을 입어야 했고,아이가 트림하면서 올리면 옷에 누렇게 얼룩이 지니 꺼멍옷만 입었다.옷 색깔 따라 나도 꺼메지는 것 같았다.
충격적인 것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는 안 텄는데 가슴이 사방데로 벼락 친 모습으로 터 있었다.
럭비공이 박혀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응급실 갔던 날 한쪽에서만 700ml 넘게 씩 고인젖이 나왔으니, 그 부피만 해도 얼마 큼인 건지_
피부가 감당하지 못할 범위였긴 했다.
경주찰보리빵 부저를 아이가 딱 물면 가슴 사방으로 헬스아저씨들 팔뚝처럼 푸른 힘줄이 퐉 솟았다.
찰보리빵의 건포도는 엄청 길어져서 내 눈을 의심케 했다.얼마나 커졌던지, 속옷을 입으면 그 안에서 눌려서 접혔다.!
하.....
그래, 내 모성애가 이 정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유수유는 엄마의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겐 그 선택권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아기가 뽀얗고 포동포동한 것만 칭찬했다.
아무도 나의 노고에 위로를 표현해주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없어지고
나는 그저 아이가 뚫고 나간 뒤 남겨진
빈 껍데기가 된 것 같았다.
"이러니, 옛날 어른들이 여자는 가르치질 않은 거여.
애 낳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여. 가성비가 떨어져.
그래서 여자는 갈치질 않은 거여.
지혜로우셨던게지..."
그 무렵의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나는 24시간 홀로 싸우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들은 다 우리 남편이 나를 엄청 도와주고 있고 나는 행복한 첫 아이 출산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걸로 생각했다.
나는 매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혼자 집에 처박혀 엄마라는 기능만 하고 있었다. 남편은 바빠서 나랑 밥 한 끼 먹지 못했다.
힘든 와중에 만든 반찬들은 다 상해서 음식물쓰레기 통에 버려졌다.
나도 함께 버림받는 것 같았다.
밤에 아기가 울면 남편이 잠결에 한숨을 쉬었다. (아침에 물어보면 기억을 못 했다.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거 맞아? 한사코 그렇다고 하니 믿어주는 수밖에_) '빨리 일어나 젖 줘라'하는 재촉 같아서 눈치가 보이고 짜증이 났다.
자의 반 타의 반,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너무 억울했다.
같이 낳은 아기를 왜 나만 전담하는 건지 화가 났다. 내가 "뭔가 이건 아니야" 라고 하면 남편은 "그럼 너도 나가서 일해" 라고 했다. 이미 경력이 단절됐는데? 내가 사장이어도 나 안 뽑겠어. 뭐 하러 애 딸린 여자를 뽑아? 시장에 인력이 넘쳐나는데. 내가 정말 나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