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해도 소용없어 (산후우울증3)
혹시라도 젖이 부족한 어떤 분은 어쩌면 젖이 넘치도록 많았다는 내 이야기가 부러우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약이 올랐다.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아프기는 오지게 아프고
돈도 왕창 깨졌다!
젖이 부족한 사람이 누군지 특정인도 없는데,
마냥 샘이 났다.
나도 그냥 편하게 분유 사서 먹이고, 자고 싶었다.
모유수유는 남편과 교대도 할 수 없었다.
함부로 유축을 해서도 안 되었다.
비우면 비워낸 만큼 더더 차올랐다....
나 홀로 외로운 싸움이었다_
몸고생 마음고생 돈고생까지
정말 풍년이었다.
제일 싫은 거는 아무 때나 젖이 줄줄 샌다는 점이었다.
수유를 시작하면 반대쪽 가슴에서도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정말 초원의 젖소가 된 것 같았다.
남편과의 시간을 보낼 때도 난 수유브라를 벗을 수가 없었다.
그 특유의 속옷 색깔도 너무 싫었다.
차라리 초등학생용 속옷이 이것보다 여성미 있었다.
가슴이 이 말썽이니 남편과의 시간도 자신감을 잃어가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재미도 없어졌다. 꼬순내가 폴폴 나는, 그야말로 신상(인간사람 새 거)을 대하다가 남편을 대하면 구릉내가 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무 데서나 앞섶을 풀어헤칠 수 있는 옷을 입어야 했고, 아이가 트림하면서 올리면 옷에 누렇게 얼룩이 지니 꺼멍옷만 입었다. 옷 색깔 따라 나도 꺼메지는 것 같았다.
충격적인 것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는 안 텄는데 가슴이 사방데로 벼락 친 모습으로 터 있었다.
럭비공이 박혀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응급실 갔던 날 한쪽에서만 700ml 넘게 씩 고인젖이 나왔으니, 그 부피만 해도 얼마 큼인 건지_
피부가 감당하지 못할 범위였긴 했다.
경주찰보리빵 부저를 아이가 딱 물면 가슴 사방으로 헬스아저씨들 팔뚝처럼 푸른 힘줄이 퐉 솟았다.
찰보리빵의 건포도는 엄청 길어져서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얼마나 커졌던지, 속옷을 입으면 그 안에서 눌려서 접혔다.!
하.....
그래, 내 모성애가 이 정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아기가 뽀얗고 포동포동한 것만 칭찬했다.
나라는 사람은 없어지고
나는 그저 아이가 뚫고 나간 뒤 남겨진
빈 껍데기가 된 것 같았다.
“이러니, 옛날 어른들이 여자는 가르치질 않은 거여.
애 낳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여. 가성비가 떨어져.
그래서 여자는 갈치질 않은 거여.
지혜로우셨던게지...”
그 무렵의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나는 24시간 홀로 싸우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들은 다 우리 남편이 나를 엄청 도와주고 있고 나는 행복한 첫 아이 출산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걸로 생각했다.
나는 매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혼자 집에 처박혀 엄마라는 기능만 하고 있었다. 남편은 바빠서 나랑 밥 한 끼 먹지 못했다.
힘든 와중에 만든 반찬들은 다 상해서 음식물쓰레기 통에 버려졌다.
나도 함께 버림받는 것 같았다.
밤에 아기가 울면 남편이 잠결에 한숨을 쉬었다. (아침에 물어보면 기억을 못 했다.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거 맞아? 한사코 그렇다고 하니 믿어주는 수밖에_) '빨리 일어나 젖 줘라'하는 재촉 같아서 눈치가 보이고 짜증이 났다.
자의 반 타의 반,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너무 억울했다.
같이 낳은 아기를 왜 나만 전담하는 건지 화가 났다. 내가 “뭔가 이건 아니야” 라고 하면 남편은 “그럼 너도 나가서 일해” 라고 했다. 이미 경력이 단절됐는데? 내가 사장이어도 나 안 뽑겠어. 뭐 하러 애 딸린 여자를 뽑아? 시장에 인력이 넘쳐나는데. 내가 정말 나가면,
선녀옷 뺏겼는데 어디 날아갈 테면 날아가보든지 하는 소릴 듣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기 시작했다.
몹시 외로웠지만, 남편이랑 말을 하기가 싫어졌다.
꿈만 꾸면 남편이 내가 아기 낳으러 간 사이에 예쁜 여자랑 바람나는 꿈을 꾸었다.
혼자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하게 됐다.
재미있는 것을 봐도 기쁘지가 않았다.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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