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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Dec 29. 2023

만능엔터테이너 우리 교구 사모님

슈퍼히어로의 출현

남편이 젊어 교육부서만 맡은 전도사였을 때와는 다르게 목사안수받고 부목사가 되어 장년사역을 맡게 되자 뭔가.. 사모인 내 삶도 조금 달라졌다.

성도님들께서 대하시는 태도나 온도, 대화의 이슈들이 달라졌는데 이를테면 이런 거다.



부목사모인 우리들을 앞에 번히 두고

"우리 교구 사모님이 제일 예뻐."

"아니야, 우리 교구 사모님이 키도 훤칠하고 미인이지." 하는 -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게 되는 아무 의미 없는 순위 다툼을 자기들끼리 뜬금없이 하신다거나


"사모님, 옆 교구 사모님이 이번 주일에 입고 온 옷 봤어요? 사모님도 그렇게 좀 하고 다녀요."

같은 선 넘는 발언을 하시기도 한다.



초대형 메가처치라서 자기 사역 바운더리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만 챙기기에도 웬만한 작은 교회 담임목회 하는 수준이 되지 않고서야, 한 교회 안에서 부교역자들끼리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협동도 안되고 즐거운 목회생활을 하기 어렵다.

어쩌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듯한 분위기의 목회사무실도 겪어봤는데, 북한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전쟁통에도 사랑은 싹튼다고, 한분 한분씩 사역지를 옮기시고 새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숨 막히는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갔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끼리  지내고 있다가도, 그렇게 비교하고 우위를 가리는 말들을 자꾸 들으면 '그래 저 사모님이 확실히 더 예쁘시고 전공도 더 멋지고 잘났긴 하지~?' 하는 생각이 스며들게 되어 나도 모르게 비교의식을 갖게 됐다. 


우리 교구 성도들에게 자랑스러운 트로피 같은 사모가 되어드리고 싶기도 했으나, 어째 늘 역량부족이었다. 임신 중이었고, 또 임신 중이었고, 무슨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며 일을 감당하기엔 아기가 어렸고, 성격이 수줍음을 많이 탔고, 그땐 몰랐던 내 병 때문에 체력이 말도 못 하게 달렸기 때문이다.



전교인 체육대회 같은 날은 아주 히트다.


어떤 사모님이 달리기를 잘 하나,

누가 누가 분위기를 가장 잘 띄우나,

다들 지켜보고 계시다.

인원수 모집이 부족한 종목에서, 관절이 아프신 권사님들 대신에 젊은 <우리 교구 사모님>이 혜성처럼 나타나 승리로 이끌어주기를 다들 바라신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부목사 사모들은 대개 아이 어립니다.

원하시는 역할들을 흡족히 수행할 만 해지면

담임목회를 나가게 되지요.

필드에 나가서 경기하는 동안 제 아이는 누가 보나요.

대신 맡길 돗자리 지원군 구역식구들도 없고요, 갑자기 아무 품에나 맡기면 아기가 우는걸요. 사모님들은 다 흩어져 자기 교구 응원석을 지키고 계시고요.

남편은 오늘이야말로 가장 바쁜 날이라서

남편역할을 할 수가 없는걸요.

아이들은 낳아만 놓으면 다 은혜로 자란다고요?



그런데 권사님, 오늘 따님은 손주들도 모두 보이질 않네요?

체육대회라서 먼지 나고 힘드니 집에 일찍 가셨군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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