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참 많은 병을 앓는다. 감기처럼 가벼운 병부터 암, 치매 등 고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그렇게 많은 병들 중, 참으로 황당한 게 공황장애다. 내가 지켜본 경험으론 그렇다.
A는 공황장애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남편 K까지 서서히 지쳐 정신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A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심장에서 난리가 나고 있으니 당연히 심장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 아무리 검사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의사는 안심해도 된다 하지만 증세는 수시로 나타났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어느 장소에 가면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렸다. 금방 죽을 것 같은 공포 때문에 기절 직전까지 가거나, 자리에서 뛰쳐나와야 했다. 공황장애, 광장공포증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검사하고 약 먹고, 약 먹으면 졸리고 잠자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한데 입원하지 않은 이상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원할 병도 아니다. 약 먹을 때는 좋아진 듯해도 해결이 안 됐다.
환자를 겉으로 보면 멀쩡하다. 아무 문제가 없다. 말도 조곤조곤하고 행동도 조신하다. 누구에게나 잘 대해주고 표정도 우아하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되고 어느 공간을 맞닥뜨리면 불안해하고 못 견딘다. 스스로 참기 힘들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옆에 있는 사람을 공격한다. 만만한 사람이 남편이다.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섭섭한 말과 행동을 꼬투리 잡는다. 당장 손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고집을 피운다.
당하는 사람은 황당하다. 힘들어한다. 좀 전까지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죽겠다 하고 화내고 성질부리니 이해할 수 없다. 같이 화를 낸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이유가 뭔데…” “고집 좀 피지 말아…”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는데…”며 소리를 지른다.
K는 아내가 공황장애란 것을 알고부터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못 참을 때도 있다. 같이 화를 내다 이성을 되찾고 “내가 또 잘못하고 있구나”하며 후회한다. 때는 이미 늦었다. 전쟁의 시작이다. 끝나지 않는다.
심할 때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간다. 핸드폰에 불이 난다.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온다. 전에 들었던 내용의 반복이다. 화가 풀릴 때까지 그런다. 그럴 때마다 K는 아내가 참 힘들게 사는 사람이란 연민으로 이해하려 한다. 스스로의 잘 못을 찾아 자책한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우울감에 빠진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생활에는 활력도 떨어진다. 삶에 의지까지 없어진다.
공황장애를 앓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K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형편이다. 병원을 찾아가면 우울증 스트레스 검사받고 처방받아 약 먹고 마음이 좀 편해지면 졸음이 오고 자고 다시 깨어나 또 병원 찾고…
K는 그런 사실들, 화나서 미치겠고 불안해서 미치겠고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얘기를 아무나 잡고 할 수 없다. 허물없이 친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털어놓고 하소연한다. 난 위로한답시고 “마음 잘 다스리고 살아!”란 상투적인 식상한 말이나 한다. 나도 민망하다. 말하기는 쉬워도 듣는 상대에게는 막연한 얘기다.
K도 나에게 뾰족한 답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다.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그런다는 것을 안다.
도대체 마음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 어떤 물건이란 걸 알면, 친구에게 손바닥에 꺼내놓고 닦아도 보고 씻어도 보고 잘 다스리라 할 텐데 그 정체를 찾기 어렵다. 내 것도 찾기 어려운데 친구 것을 어떻게 찾아 준단 말인가?
원효대사가 해골물 먹은 얘기를 어떤 책에서 읽었다. 많이 알려진 얘기다. 까마득히 어렸을 때 읽었는데, 그게 왜 내 평생 화두가 됐는지 모르겠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다 마음의 조화다.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가는 도중 날이 어두워져 아늑한 동굴을 찾아 잠을 잤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 캄캄한 동굴 바닥에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 들이켰다. 시원하고 달았다.
다시 잠들어 단잠을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원효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자신이 지난밤 아늑하게 잤던 동굴은 무덤이었다. 거기에 있던 해골바가지 물을 달고 시원하다며 마셨다.
그것을 알고 난 원효는 공포에 휩싸였고 속은 뒤집혔다. 모르고 마실 때는 시원한 단물이었는데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이란 사실을 알고 나니 심한 구토가 났다. 거기서 원효는 ‘다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의 마음을 찾은 것이다.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고승이 됐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원효처럼 마음을 찾아 실천하기는 어렵다. 마음이란 게 어디에 있는지,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자유자재로 마음 쓰기 어렵다. 하루에도 수백 번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고 불끈한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운전을 하다, TV를 보다, 샤워를 하다가도 그런다.
해골바가지 물로 깨친 원효의 마음을 흉내라도 내 보려, 화나고 불안해질 때나 잡생각으로 어지러울 때마다 “또 마음이 조화를 부리네” 하며 눌러보지만, 수시로 일어나는 생각을 잠재울 수 없다. 잠깐의 위로가 될 뿐이다.
힘들어하는 K에게 마음 다스리기 어려우면, 잊고 살 방법이 있다고 일러준다. 나름대로 좀 더 연구하고 임상체험한 구체화된 처방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을 접어버리면 화날 일이 없다. 그것도 마음의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아예 잊는 것이다.
"그렇게 해봐!"
내 말을 듣고 K는 "미친놈! 친구랍시고 도움이 안 되는 말만 하고 자빠졌네!"라 욕지거리를 한다. 욕을 들을만하다. 생각을 없애는 것이 어찌 그리 쉽나?
잊어버리면, 나를 남을 자책하고 화내고 연민할 것도 없다. 잘했다 못했다, 옳다 그르다, 이 마음이다 저 마음이다, 이것저것 구별할 일도 없다. 생각을 없애면 화도 불안도 연민도 자책도 없어진다.
K에게 나는 "생각을 끊어내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명상이야!"라 일러준다.
내가 해보니 좋다. 괴롭고 힘든 시절을 보냈고, 또 하루하루 힘들 때가 많지만 명상의 도움을 받는다는 얘기도 해준다.
명상 전통은 오래됐다. 방법도 많다. 누구는 호흡에 집중하라 하고, 또 누구는 걷기에 집중하라 한다. 반복적인 운동을 하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화두 들고 참선하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명상이 불교 전통만이 아니다.
“생각을 끊어내면 어떻게 되는데?” K가 묻는다. “명상을 하면 뭐가 좋은데?”와 같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