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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Jul 31. 2024

얼굴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힘 빼!

"눈 감고 편하게 앉아 내 얼굴 생김을 그려보세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다. 외딴 우물을 찾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기 한 사나이가 있다. 그 사나이는 밉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바로 자신이다.


자신을 보려면 외딴 우물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게 찾아가 보아도 물빛에 비친 모습뿐이다. 실제 내 모습은 볼 수 없다.


자신의 실물 얼굴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 눈과 코, 입,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있는가? 없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나 사진으로 보기는 해도, 내 눈으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면 잘 보인다. 자주 보는 아내나 남편, 아이들, 부모님 얼굴은 이목구비까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도 그렇다. 자주는 아니라도 아주 오래된 초등학교 친구의 얼굴도 그려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모습이 아닌 그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점심 식사 하러 갔던 식당의 주인아주머니 얼굴도 떠올릴 수 있고, 출근길 사거리 건널목에서 마주쳤던 사람의 얼굴도 그려낼 수 있다. 얼굴은 물론 옆모습 뒷모습, 걸음걸이까지도 보인다.


그렇다면 내 얼굴을 한번 떠올려 보자.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내 얼굴을 떠올리면 잘 안 보인다. 어떻게 생겼는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우물에 비친 모습이나 거울에 비친 모습, 사진으로 박힌 모습은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 내 얼굴은 떠올리기 어렵다. 안 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진짜 생긴 모습은 상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다. 상상의 바탕에 의식이 있다. 나의 의식으로 내 얼굴을 한번 찾아보자.     




등을 곧게 하여 반듯하게 앉는다. 무릎을 구부리고 등을 세운 기마 자세로 도 좋다. 중요한 것은 척추와 머리를 나란히 놓아야 한다. 척추 위에 머리통을 가만히 올려놓는다 생각하고 목과 어깨의 근육에 힘을 최대한 뺀다. 손은 무릎에 올려놓든 들고 있든 편한 자세를 취하면 된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의식만으로 내 얼굴을 내 앞에 놓아 보자. 내 앞에 내가 있다. 내가, 내 앞에 앉아있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내 앞에 앉아있는 내가,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의식만으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보면 윤동주가 외딴 우물에서 보았던 것처럼 밉기도 하고 가엾기도 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생각이 들면 따라가지 말고 가만히 보내주며 의식을 오로지 내 얼굴에만 집중한다.


내 앞에 내가 잘 안 보인다. 그렇다면 내 의식으로 내 얼굴 곳곳을 훑어본다. 머리에서부터 이마 눈 코 뺨 귀 인중 입 턱 등 하나하나 찾아다니다 보면 내 이마도 눈도 코도 보인다. 찡그리고 있는 이마와 핏대를 세운 눈도 보이고 앙다문 입도 보인다. 어금니를 물고 있다 보니 턱 주변의 근육들도 뭉쳐있다. 불편함을 느낀다. 의식으로 하나씩 풀어준다. 찡그린 이마를 펴고 힘을 주고 있는 눈에 힘을 뺀다. 뭉친 턱근육은 풀어주고 앙다문 입도 편하게 놓아준다.


가만히 앉아 해보면 풀리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많은 근육이 긴장하고 뭉쳐있는지 한 번으로 다 풀리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풀고 또 풀고 하다 보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혀에도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모든 힘을 빼고 그러다 보면 얼굴이 흐물흐물 풀어져 콩죽같이 된다. 눈은 게슴츠레하고 혀에서도 힘이 빠지고 입은 벌어져 헤벌쭉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 내 앞에 있는 내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때 보이는 것이 나의 참모습, 배경자아, 신성, 참나, 진아, 한물건이라 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또 다른 나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 다 본다는 것은 아니다. 보이고 안 보이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 얼굴 표정이 아주 편안해졌다는 것만 느끼면 된다. 마음도 편안해진다.

     



얼굴을 찾아다니며 힘을 빼듯이 온몸 구석구석을 의식으로 찾아다니며 아픈 곳, 굳어 있는 곳들을 살펴본다. 아픈 곳은 다독여주고 뭉쳐있는 곳들은 풀어준다. 열심히 살다 보면 수시로 눈에도 입에도 힘이 들어가게 된다. 그럴 때 찡그리고 굳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렸을 때 의식을 얼굴에 가져가 굳고 뭉친 곳을 수시로 풀어주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잠들기 전에 가만히 앉아 찡그리고 있는 얼굴을 풀어주면 좋다. 오늘 누구 때문에 기분 나빴고 어떤 일로 신경을 썼고 무슨 사건으로 짜증이 나 얼굴이 일그러졌다면 풀고 잠을 자는 것이 좋다. 그대로 잠을 자면 다음날 아침에 기분 나쁘고 짜증 나고 찡그린 상태로 깨어난다.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잠들기 전에 다 풀어 주고 잠이 들면 리셋이 돼 수면의 질도 좋아지고, 다음 날 개운한 새로운 아침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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