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뇌의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고 우울하며 화를 내는 등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심하면 옆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공황장애나 불안증, 분노조절장애 등의 질병은 편도체가 오작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병이란 얘기도 했다. 물론 의료적인 정확한 진단은 아니고 일반화시킬 수도 없다. 다만 뇌과학을 연구한 많은 자료들이 편도체의 활성화와 이런 질병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수시로 활성화되는 편도체를 안정화시켜 주면 불안감을 없애 우울한 마음이나 화나는 감정 등을 가라앉힐 수 있다.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는 방법도 있고 운동하는 방법도 있다. 명상하는 방법도 있다. 모두 편도체를 안정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명상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치유지 병을 고치는 치료가 아니다.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을 찾아 전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전 글에서 호흡명상법을 소개했다. 평상시 생활 속에서도 할 수 있고 부작용도 없는 방법이다. 꼭 우울하고 공황장애와 같은 병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소에 잠깐씩 시간 내 경험해 보면 편안하고 안정적이며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소개했다.
호흡명상을 하면 편도체는 안정되고 다른 뇌는 활성화시킨다. 활성화되는 뇌에 대해서도 많은 뇌과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연구했다.
우리 뇌에는 전전두엽이란 곳이 있다. 머리 앞쪽 이마 아래 눈두덩이 뒤쪽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곳은 ‘인간다운 인간’ ‘성숙한 인간’ ‘현명하고 똑똑한 인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전전두엽이 활성화할수록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충동을 절제하고 억제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끈기 있게 일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것도 전전두엽의 역할이다. 감정을 조절 통제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주며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지도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앞 일을 예측하고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하는 것도 전전두엽이 하는 역할이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을 전전두엽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부위들과 네트워킹을 하는데 전전두엽이 주도적이며 어느 상황에도 빠지지 않는 허브 역할을 한다.
전전두엽은 태어날 때부터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며 차츰 발달해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완성된다. 이 기능의 활성화가 미약한 아이들은 산만해 주의력 결핍, 정서 불안 장애를 겪는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대표적이다. 청소년기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나쁜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전전두엽이 미성숙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며 전전두엽도 성장해 온전히 완성되면 올바른 성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회 부적응자가 되거나 부도덕한 인간이 된다. 범법행위를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전전두엽을 다치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람으로 바뀐다.
전전두엽 활성화에 문제가 생기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 어떤 일을 하든 끈기가 없고 문제 해결력이 없어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사람, 즐겁게 꾸준히 재미있게 하는 일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 사소한 일에도 흥분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그런 성향이 있는데 바로 전전두엽이 100% 완벽하게 활성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전두엽이 잘 발달했다면 학업이나 업무 성취도가 높고 운동선수라면 성적도 잘 낼 것이다. 인성 좋고 능력 있고 똑똑하며 지혜롭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한마디로 똑똑하고 현명하며 인간성 좋은 사람이 된다.
현대인들의 뇌는 편도체가 수시로 과도하게 활성화돼 문제고, 전전두엽은 활성화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천방지축 날뛰는 편도체는 안정화시켜줘야 하고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전전두엽은 활성화시켜 줘야 행복하고 슬기롭고 현명한 인간, 인간다운 인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전전두엽을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긍정의 마음 갖기다. 긍정 마음이라 하면 막연하다. 좀 더 구체화해 말하면 나를 긍정하고 타인을 긍정하는 마음이다. 그것도 애매하다.
그래서 정리한 것이 용서하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나를 용서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모든 잘못들을 수용해 나에게 연민을 갖는 것, 남들에게도 진심으로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인데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연민을 가지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다 치더라도, 내가 다른 이를 용서할 수는 없다. 모든 죄를 씻어주고 누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길 수도 없다. 이걸 잘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다. 기독교 사상의 핵심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 대한 미워하고 복수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용서다. 그를 찾아가 “내가 너를 이제부터 용서한다”라고 말한다면 상대는 “네가 뭔데!”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운전하다 새치기하는 차가 있다면 그 운전자에게 “너의 잘 못을 내가 용서해 주마!” 말한다면 그 운전자는 “웃기고 있네!”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상대가 어떻든 나에게 있던 미움의 감정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없애는 것이다. 그게 용서다.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찾아가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마음으로라도 잘 되길 빌어주는 것, 바로 연민의 마음이다.
나를 용소하고 남을 용서하고,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고, 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다른 이에게도 연민을 느끼는 긍정의 마음을 가질 때, 전전두엽은 활성화된다.
하느님께 나를 위해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 할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칠성신에게 빌던 마음이바로 긍정의 마음이다. 이렇게 나와 남이 잘 되길 비는 진심의 마음을 가질 때 현명하고 슬기롭고 똑똑한 인간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마음으로 하는 명상훈련이 있는데 ‘자애명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이들의 행복도 진심으로 빌어주는 마음가짐을 갖는 명상법이다.
가만히 앉아 나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또 내가 아는 누군가 대상을 정해 그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보라. 내가 증오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부터 시작해 보라. 좋은 일은 나에게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