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지 않는 부모님의 현명함.
학기 초, 교실문만 열어도 대충 알 수 있다. "이 녀석이군!"하고 말이다. 상담선생님이 우리 반 명렬표를 보고는 몇몇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을 미리 일러주셨다. 녀석들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우라로 파악할 수 있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은 이한이였다. 이한이는 학습 의욕이 없고 사회성이 부족해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끊임없는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아이들은 매번 싸움을 일으키는 이한이를 싫어했고 이한이는 자신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친구들을 미워했다.
이한이는 조금이라도 하기 싫은 내용이 나오면 단 한 글자도 적지 않고 딴짓만 했다. 단지, 하기 싫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하는 학생을 그냥 두면 우리 반에 존재하는 규칙도, 선생님이 내뱉는 말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저 두고만 볼 수는 없었던 나는 온갖 수단을 이용해 한 글자라도 더 쓰게 만들었다. 매번 남는 건 손목과 팔에 긁힌 자국이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이한이 아버님께 전화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저도 이젠 별 수 없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어떠세요?” 감사하게도 이한이 아버지는 다음날 곧장 이한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진단명은 ‘경계선 지능장애‘였다. 낮은 지능으로 인해 학습의욕이 떨어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이 특징이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기 시작했고 얼마 뒤 이한이는 딴 사람이 되었다. 차분히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한이는 매번 아무것도 쓰지 않아 0점을 받던 받아쓰기에서 60점, 70점을 받더니, 1학기 마지막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 매번 안 좋은 일로만 통화했던 이한이 아버님께 처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한이 받아쓰기 100점 맞았어요!"
학급에 이한이 같은 문제학생이 있어도 가정에서 협조만 잘 이루어진다면 몇 명이라도 두렵지 않다. 꾸준히 가정과 학교에서 일관되게 지도하고 격려하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잘못된 행동을 알려드렸음에도 회피하거나 오히려 "왜 내 자식을 왜 깎아내리냐."며 화를 내는 부모님들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아이가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도 김이 새고 의욕이 사라진다. 가정의 도움 없이 교사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좋아지기란 결코 쉽지 않으니까.
나와 같은 초등교사를 하고 있는 아내도 비슷한 푸념을 한다. 분명히 지적 장애가 있는 것 같아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려도 회피, 반복되는 문제행동으로 연락을 해도 모르쇠와 분노로 답하니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의 문제행동을 가정에 알리면 오히려 악성민원이나 아동학대로 신고를 받고 고초를 겪는 일도 왕왕 있는 교육현장이다. 결국 선생님도 모른척하며 넘어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들의 회피하려는 마음이 전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키우는 나도 숨고 싶거나 애써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바지에 응가를 쌌다거나, 미디어를 보며 배운 표현들을 따라한다거나, 우리 아이가 너무 활발해 주변에 피해를 준다거나…
불교에 ‘영리제착‘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집착을 떨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집착을 명확히 응시하고 이용하면 성장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아이는 없고 처음부터 착한 아이는 없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반성하며 점점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 교실은 아이들이 수십 번 넘어지고 갈등하며 성장하는 곳이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회피하는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은 길어야 1~2년이지만 부모님은 평생을 보셔야 한다고. 적기에 손을 쓰지 않고 대충 덮어버리면 언젠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협박하는 건 아닙니다.)
무고한 악성민원 한 건에 모든 인류애가 녹아내리는 요즘 시대에 선생님이 애써 아이의 문제행동을 말한다는 건, 부모님께 “왜 이렇게 키우셨어요.”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번 일을 통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싶어요.”라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 함께 아이를 위해 힘을 모아가면 좋겠다.
교실은 머리를 맞대는 공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