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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Sep 02. 2024

그림자의 흔적-1

쉐도우스의 흔적, 남동환의 비밀스러운 거래

병원의 복도는 매일같이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이곳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항상 작은 모험을 찾아다녀야 했다. 오늘은 남영욱을 데리고 가볼까. 귀찮아하는 건지 당최 움직이려고를 하지 않는 영욱이를 데리고 7층 휴게실로 향했다. 병원에서의 하루하루가 다소 지루할 때면 이런 작은 탈출이 큰 도움이 되겠지.


휴게실에 도착하자, 남영욱은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탁. 캔 뚜껑을 딸 때의 청량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마음속에서 빠져나와 작게 흩어지는 것 같았다. 창가에 앉아 햇살을 즐기며 음료를 마시는 우리의 앞에는 병원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환자들, 환자들. 조용히 대화하는 환자들, 컴퓨터를 사용하는 환자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고개가 돌아가는 방향을 따라 휴게실의 테이블들을 둘러보는 나의 시선에 무언가가 잡혔다. 동환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동환은 한쪽 테이블에서 환자복을 입은 다른 환자들 몇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세 명의 환자들이 모여 있었고, 남동환의 얼굴에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나는 옆에 앉은 영욱이를 내버려 두고서, 온 신경을 집중해 동환이의 테이블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엿들어 보았다.


그때, 남동환이 다른 환자 중 한 명으로부터 무언가를 주고받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환자는 꼬깃꼬깃 접힌 작은 종이를 동환에게 조심스럽게 건네주었고, 동환은 그 종이를 받고, 손에 쥐고 있던 쪽지를 대신 건네주었다. 나는 그 장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계속 살펴보니 다른 세 명들 사이에도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이 상황을 관찰하면서, 남영욱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기준이 형, 저기 동환이 형이네요.” 영욱은 나처럼 동환이 테이블을 신경 쓰며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후 대답했다. “동환이 저거 좀 수상한데. 다른 환자들과 뭔가 거래하는 것 같지 않아? 쪽지를 주고받고 있어.” “조금 알아볼까?”

영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어떻게 조사를 시작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 봤다. 동환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병실을 함께 쓰는 사이에 많이 친해지진 않았지만 대단히 위험한 뭔가를 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일단 동환이가 자주 오는 시간과 장소를 체크하자. 저 다른 환자들이 누군지도 확인해 보고. 그리고 동환이가 또 저런 쪽지 같은 걸 쓰려고 하는지 잘 살펴보자고.”



그날 저녁, 나는 영욱과 함께 남동환이 주로 오는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동환은 매일 같은 시간에 휴게실에 나타났고, 그가 다른 환자들과 이야기하며 쪽지를 주고받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한편, 휴게실에 더 빈번하게 가다 보니 휴게실의 다른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정혁은 자신이 좋아하는 비트코인 투자와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환자들과 나누고 있었다. 나한테도 투자인가 뭔가 하라고 하더니, 저 사람들한테도 저러네. 정혁은 손에 들린 핸드폰의 화면을 통해 주식 시장 같아 보이는 화면과 화려한 다른 화면을 열심히 넘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진지한 것 같으면서도 가벼웠고, 그의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질색한 표정도 놀라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정혁의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병실을 나와 돌아다니는 동안 동환을 보게 되면 그 정보를 정리했다. 그리고 영욱은 내가 모은 정보들과 영욱이 모은 정보들을 한데 모아 자료로 만들고 있었다.

영욱의 모습은 침착하고 차분했다. 예상외였다. 영욱이 컴퓨터에 능할 줄이야. 병상에 놓여 있는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숫자를 넣는 모습을 보며, 이 파일을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더니, 영욱은 화면에 시선을 둔 채로 "암호 걸어놨어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며칠이 지나면서, 우리는 동환이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정 시간에 휴게실에 나타나서 쪽지를 쓰는 행동을 반복했다. 매번 쪽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이 비밀스러운 거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더욱 세심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영욱이 물었다. “기준이 형,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욱이 정리한 화면에는 동환이 매이 점심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상대는 거의 매번 달라졌다. 이제 동환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해졌다. 문제는 그게 위험한 일인지 아닌지의 정도이리라. 나는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그 쪽지의 내용이 뭔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영욱은 벌써 약간 겁에 질린 같아 보였다. 언젠가 들른 영욱의 여사친의 허리만큼이나 굵은 영욱의 허벅지에 어울리지 않는 나약함 같아서, 왠지 우스워졌다. 내가 웃음소리를 내면서 웃었는지, 영욱은 내 얼굴을 흘깃 보더니,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위험할 수 있지. 하지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 있겠어. 정 위험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면 그만이지.”


그날 밤, 우리는 동환이 다른 환자들과 접촉하는 점심시간 뒤에 휴게실에 미리 가 있었다. 구석지고 시선이 잘 가지 않는 자리에 앉아 우리는 동환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 날 동환은 오지 않았다. 대신 동환과 쪽지를 교환하는 것 같았던 환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나타났다. 그리고 역시나 서로 뭔가를 주고받았다. 분명 뭔가 있긴 있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분명히 하려면 일단 동환으로부터 그 쪽지 같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이 병원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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