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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어도 들으셔야 해요. 당신의 목소리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by 과니 Mar 09. 2025

어릴적 엄마와 아빠에게 성우를 하고싶다고 울고불고 떼를 쓴 적이 있다. 어리다고 해 봐야 덩치 큰 고등학생이었지만. 애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성우를 하고 싶다고 하니 당황스럽지만 산적같이 생긴 놈이 빼앵 거리면서 성우 해보겠다고 훌쩍거리니 엄마와 아빠는 한번 해보라는 듯이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연극, 영화 등의 대사를 따 와서는 녹음을 시작했고, 내 목소리를 들어봤다. 성우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ㄹ' 발음에 있어서 생각보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말 잘하고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거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성우의 꿈은 미련없이 접었지만 CS 센터에 들어가서도 나는 내 목소리를 가끔 듣는다. 고객들과 통화할 때 내가 어떻게 말했는지 다시 한번 복기를 하기 위해서. '내가 이 필수 안내사항을 고객에게 말 했었나?'하는 마음으로 들을 때도 있고, '내가 아까 어디서 말이 꼬인 것 같은데'라면서 들을 때도 있다. 가장 고되고 지난했었던 건 예전 직장에서 부팀장을 할 때 팀원이 만들어온 금감원 민원고객을 두고 대응할 때였다. 총 2시간에 가까운 통화내역을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되짚어가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었는지 듣고, 쓰고, 정리해서 고객사로 전송까지 했다.


매번 반드시 자기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CS에서 상담원들의 업무는 단순히 고객이랑 통화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상담으로 단순 종결 처리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이후에 몇시즈음 재연락을 할 건지, 무엇을 처리해줘야 하는지 정리해놓고, 모든 통화는 통화가 끝날 때마다 최대한 무슨 통화를 한 건지에 대해 요약해 기록(후처리)을 남겨놓는다. 또한 만족도 조사도 보낸다. 만족도 상태도 좋고 고객들의 불만도 딱히 없다면 어차피 통화에 대한 품질관리는 CS QA업무 담당자가 훑어보게 되어있으니 업무만 하면 된다.


다만 본인이 콜을 할 때마다 안내할 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화가 길어진다던지, 고객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다던지, 만족도가 향상되기 않고 있다고 한다면 되는대로 고객과의 통화 녹취를 틀고, 본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정말 우습게도, 사람은 본인이 말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1. 자기 말을 자기 귀로 들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세요.


성우, 배우, 유튜버 등 본인의 목소리가 녹화되거나 녹취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의 발음과 발성에 정확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게는 자기 목소리를 듣고 나서 '이게 내 목소리라고?'라는 반문을 한다. 그 '낯설음'과 '이상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세분화시켜야 한다. 아마 톤도, 빠르기도, 발음도 생각한 것과 다를 것이다. 티비에서 들려오던 나레이션 성우들이 얼마나 전문적인지를 그쯤 되면 뼈가 사무치게 깨닫는다.


하지만 CS직원인 이상 스스로의 목소리에는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중학교때는 힙합과 랩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지금도 생각없이 말하면 말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딕션이 그나마 정확해서 다행이지만 나의 'ㄹ' 발성법은 다른 사람들과 혀 위치가 달라서 정석적인 발음과는 차이가 있다. 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살짝 높은 편이며, 말 자체의 음역 높낮이가 화음내는 것처럼 큰 편이다. 성량은 태생적으로 큰 쪽이긴 한데 통화할 때는 작게 곧잘 한다. 평소에 말할 때 복식호흡을 잘 쓰는 편인데, 천식이 있어서 그런지 중간에 숨을 다 쓸 때가 있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특이점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유튜브를 도전해본 적이 있다면, 아니면 학교에서 방송반이라도 활동해봤다면, 혹은 영상을 찍는걸 좋아한다던지, 자기가 부른 노래를 직접 들어본다던지 해봤다면 스스로의 목소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 것이다. 말의 빠르기, 높낮이, 발음적 특징, 호흡 등. 알기만 해라. 그냥 알기만 해도 좋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는거고, 지금 당장 고치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자기 목소리를 자각하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해야 보다 편하게 들릴 수 있는지'를, 우리는 무의식중에라도 생각하기 시작한다. 


자기 말을 자기 귀로 들을 때의 느낌을 기억할 생각이 없다는 건 자기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도 고려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2. 무슨 말을 했는진 기억하세요?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라는 문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가족과 친구, 연인과 지인들에게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놓고 나서는 나중에 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자 '내가 언제?'라고 시치미를 떼는 사람과, '그땐 내가 그냥 좀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그런거고'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멱살 잡아버리고 싶으니까.


대화는 쌍방이고,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행위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딱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카톡과 텔레그램처럼 전송을 누르기 전 답장 내용을 썼다 고쳤다 하다가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SNS처럼 그냥 대충 본인 생각이나 드립을 독백하고선 사라지는 장도 아니기에, 사실상 대화는 어려운 행위다. 그저 밥먹듯이 하는 일상 생활이자 사회 활동에 '대화'가 포함되어있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렇다보니 CS센터에서 고객에게 발송하는 만족도 조사도 결국은 형식상의 발송 성격이 크고, 배달의 민족 리뷰와 비슷하다. 배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어지간히 맛이 없는 게 아닌 이상은 고객들은 대충 별점 다섯개 만점을 보내고 말아버린다. 귀찮으면 별점조차 달지 않는다.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다음엔 안 시키면 되니까. 그렇다보니 배달의 민족 별점 평균이 4.5를 넘나든다고 해서 미친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돈이 아까울 맛이 아니라는건 증명이 될지 모르지.


이와 거의 똑같은 과정으로, CS의 만족도 조사 또한 어지간하면 그냥 만족도 설문을 무시해버리던지, 본인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5점 만점을 남겨놓는게 흔한 일이다. 3점 이하로 설정하면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한 사유까지 물어볼 뿐더러 고객들은 그런 귀찮음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만족도 평균이 90~100 사이라면 나는 그 사람이 타고난 CS직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고객 응대에 있어서는 딱히 문제가 없는 직원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스스로 고객과의 응대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도 조사 점수 평균이 90점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본인이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고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뜯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나 더 얹어서 말하자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대다수다. 알려줘야 할건 알려주지 않고, 안 알려줘도 되는 것들은 알려줘버려가지고서는 나중에야 깨닫고 골머리를 싸맨다. 뭐 이거야 업무에 대한 숙지 능력과도 관련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가장 무서운 건 '쪼'에 있다.



3. '쪼'가 가지는 함정


쪼는 본래 성우계나 연극·영화계에서 주로 쓰인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습관을 뜻하는 단어인데, CS의 경우에는 '목소리'만으로 일을 하다보니, 말투를 가리키게 된다. 말투야 아까전부터 계속 말하고 있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업무적인 멘트로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하는지 이미 이전 글들에서 충분히 말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약간 다르다. 업무적인 스킬이 늘고, 스크립트를 짜면서 고객을 응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멘트가 숙달된다. 하지만 쪼는 말하는 멘트에서 드러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추임새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그게요 고객님', '어.. 잠깐만요.', '아니아니 그게 아니구요.' 처럼 평소에 대화하는 듯한 말투가 나오는 경우가 가장 많고, '사실, ~사실, ~사실', '규정상, ~규정상, ~규정상' 하면서 계속 같은 단어를 앞이나 뒤에 붙여 괜히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또 있다. 그리고 발성에서 딱히 좋을 게 없는 호흡법이나 습관적인 비음, 잦은 목 가다듬기 등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혹은 본인이 CS를 하기 전 일했던 직장의 영향으로 실수가 나오는 경우 또한 있다. 대표적으로 나다. 음식점에서 5년을 넘게 일하다가 CS를 처음 시작했을 때, '고객님'을 '사장님'이라고 불렀다가 스스로 화들짝 놀래가지고 고객은 괜찮다 하는데 사과를 한 적이 있다. 또 한번은 이커머스 쪽으로 이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녕하십니까 OOO뱅ㅋ...'까지 발음해놓고서는 가까스로 수습한 적도 있다.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물론 쪼는 없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말투, 억양, 뉘앙스, 호흡, 추임새, 사용하는 단어 등의 습관들이 모두 모여서 그 사람을 가리키다보니 이런게 완전히 없으려면 음의 고저도 없는 기계음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다면, 기왕에 가지고 있는 쪼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정말로 CS를 잘 하는 사람들은 평소의 말이나 발성도 안정적이고 속도나 발음까지 좋다. 사용하는 단어의 폭이 넓어서 대화가 지루해지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폭을 넓혀서 대화가 간결하고 정확하게, 반복되는 말 없이 끝맺을 수 있게 하려면 독서가 좋은 편이라고 보고, 말투나 억양, 호흡 등은 나레이션 성우를 따라해보거나, 글을 소리내어 읽는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 기본적으로 CS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에 대해서는 모두 말해본 것 같다. CS가 왜 전문직인지,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CS에 서툴고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신경써야 하는지 등을 총 5화에 걸쳐서 말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스킬로 들어가겠다. 응대 스킬을 늘리려면? 사실상 고객들과 질릴 정도로 많이 통화해보고 대화해보면 된다. 다만 사람마다 숙달되는데 필요한 고객의 수가 다르고, 업무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건 타고난 능력의 차이일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건데 업무 숙달을 위한 방향성을 잘 잡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스킬들을 알려주면서 이제 나는 당신이 전문적인 CS 상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도와줘볼 수 있도록 하겠다. 매주 일요일마다 올리는 이 글을 당신이 여기까지 봤다면 적어도 5주,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고객과 통화해봤을 것 아닌가? 이틀, 사흘만에도 나가는 CS 업계에서 5주를 버틴 당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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