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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복식호흡? 사실 필요하지 않아요. 다만 대화는 필요합니다.

by 과니 Mar 16. 2025

"소리는 굉장히 시선이랑 많이 상호작용을 해요. 내가 이렇게 승엽 씨를 보고 (말을)전달할 때랑 내가 저 객석 뒤를 보고 같은 데시벨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얘기하는거랑 파장의 소리가 다르게 전달되거든요."


4년 전, 음악 유튜브 채널 [또모]에서 안종도 피아니스트가 출연진에게 피아노 레슨을 할 때 꺼낸 말이다. 두세 평 되는 작은 공간의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과, 1700석이 되는 큰 홀에서 파이노를 치는 건 다를 수밖에 없고, 연주자는 독백이 아닌 천명이 넘는 청중들에게 그 프레이즈를 전달해야 한다고, 안종도 피아니스트는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레슨을 받던 가르보승엽의 연주는 훨씬 좋아졌다.


나는 항상 누군가가 목소리를 잘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할 때, 복식호흡보다는 이 '느낌적인 느낌'을 떠올릴 때가 잦다. 목소리를 잘 내기에 있어 복식호흡부터 떠올린다는건 뭐랄까, 남고 나오고 공대 나온 친구가 여자랑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냐고 묻자 본인들도 경험 없으면서 상대방의 기호를 기억하라느니 말 꼬리를 어떻게 이어붙이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당장에 방법론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왜 내는지가 중요한거니까.


목소리를 왜 내는가. 적어도 CS는 노래를 하려는게 아니다. 두성과 흉성과 비음을 어떻게 섞으라느니 같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식호흡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오페라를 할 이유도 없고, 악보도 없다. 골자는 하나다. 대화하려고 하는거다. 쿵짝, 티키타카. 다만 관계가 다소 일방적인.


IB와 OB를 막론하고 상담사의 역할은 단 하나다.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어디 웹툰같은 제목이지만 이것만한 말이 없다. 고객이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연락을 했던, 우리가 무언가를 알려주고 영업하기 위해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던, 철저한 판매자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신뢰감 있는 목소리를 파는 사람들이다.


맨 처음 피아니스트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목소리를 상대방에게 전한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친구와 밥 먹으면서 근황을 묻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당신은 지금 들어주셔야 합니다'다. 그러니 독백같은 목소리는 안된다. 그건 두세평의 연습실에서 치는 피아노와 비슷해서 말의 파장도 짧아지고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고객이 어렵거나 긴장되거나, 아니면 CS 업무 같은게 완전히 처음인 사람들은 보통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지 그 발성이 명확하지가 않고 써놓은 걸 읽는 수준으로 끝날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고객들 중에서는 반드시 '뭐라고요?'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나온다. 차라리 얼굴이라도 보고 말한다면 표정과 제스쳐라도 보고 이해를 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목소리뿐이다.


그러니 목소리는 길게 뽑아라. 단어 하나하나를 길게 말하라는 게 아니라, 학급이라고 치면 두 자리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 바로 앞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앞의 앞이라면 결국 목소리로 먼저 불러야 한다. 그렇다고 먼 거리는 아니니 크게 부를 필요는 없다. 적당히, 내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들려서 고개를 뒤돌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만. CS에서 그렇게만 말한다면 적어도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지적을 받는 일은 사라진다. 수화기에 귀를 붙이고 있는 고객에게, 약간은 크지만 그렇다고 시끄러운 목소리도 아닌 정도의 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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