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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융한삶 Jun 27. 2024

2015 자전거 국토종주_사흘



3일 째. 


새벽 다섯 시쯤 기상했다.

찜질방이 저렴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춥고, 덥고, 코 고는 소리와 환한 조명,

불편한 바닥과 더 불편한 목침. 


잠을 거의 못 잤다.


어제 자기 전에,

한 시간 정도 무릎과 아킬레스건을 마사지 했지만,

통증은 아직 여전했다.

걷기가 힘들었다.






양 무릎과 허벅지, 오른쪽 아킬레스건에 파스를 붙였고,

특히 아픈 오른쪽 무릎에 붕대를 감았다.

긴 바지는 불편해서 반바지를 입었다.


뼈해장국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기 전 다리 스트레칭을 충분히 했다.


첫날과 이튿날은 

스트레칭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어려석은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자신감 과잉과 거리에 대한 집착으로 무리도 많이 했고,

장비와 코스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었다.


이틀만에 부상 덩어리가 된 이유를

너무 늦게 알았다. 


몸에게 미안했다.


신발끈도 다시 묶었다.

너무 늦은 반성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날씨가 좋았다.





충북 괴산


수안보에서 나오자마자,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오늘은 무릎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업힐을 자전거로 오르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조금의 경사에도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3-40분을 끌고 올라갔지만

덥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르막 후에는

충분한 다운힐로 보상을 받았다.


잠시 행복했다.


하지만 소조령은 맛보기였다.





이화령 입구에서

여러 명의 라이더가 끌바하는 나를 추월했다.


약간 오기가 생겨 기어를 최대한 낮추고 업힐을 시도해봤지만,

즉각적인 무릎의 통증이 느껴졌다.


라이더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늦긴 해도,

나에게는 나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을 터였다.


한 시간 어쩌면 두 시간.

땀이 많이 났다.


반바지를 입었지만 더웠다.


꽤 많이 지쳤을 쯤,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이화령의 정상에 올랐다.

거의 끌고 올라갔지만, 벅찼다.


눈과 얼음이 가득했다.


이제 내려갈 차례였다.

장갑을 끼고 외투의 지퍼를 올렸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내리막을 탔다.

끝내주는 롤러코스터같았다.


역시나 내리막은 금방이었다.

이화령은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문경새재에 진입했다.





그늘 밖과 그늘 안


달리다가 그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더위가 싹 가시고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 서늘했다.

새롭고 신비한 경험에 기분이 환기됐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았다.





이화령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고,

내리막길이 많아서 잊고 있었는데,


평지로 돌아오자 

안장통이 도졌다.


안장을 없애 버리고 싶은 고통.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사타구니와 엉덩이가 마찰되며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지난 이틀 동안 간과했던 게 또 있었다.

충분한 휴식과 수분 공급.


조급한 마음과 객기로

휴식 없이 달리고 또 달렸었다.


자주 초점이 흐려지고,

통증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추위 탓에 별로 목이 마르지 않아,

물을 하루에 250ml도 먹지 않았었다.


느끼진 못했지만 

많은 땀을 흘렸을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금이라도 하기로 했다.

한 시간 라이딩 후 십 분정도는 휴식했다.


휴식하는 동안

다리를 자전거 위에 올리고 누워,

아래쪽에 몰린 피를 돌게 했다.


물도 충분히 섭취했고,

다리 마사지도 열심히 해줬다.





낙동강 

칠백 리 비석.


낙동강 종주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문제가 생겼다.


아끼고 아꼈지만, 

이번에는 반대쪽 무릎이 이상했다.


붕대를 감은 오른쪽 무릎을 거의 쓰지 않고,

왼쪽 무릎으로만 달렸는데,


왼쪽 무릎의 바깥 쪽이 시렸다.


오른쪽 무릎은 그나마 안 쪽이 아파서,

통증을 참고 페달을 밟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바깥 쪽 무릎의 시린 통증은

참을 방법이 없었다.


마취하지 않고 충치를 빼내는 것처럼,

얼음같은 바람이 잔뜩 들어와 뼛속을 헤집는 느낌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욱하는 아픔이지만

하소연 할 데는 없었다.






자전거를 끌며 걸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종주의 반.

많은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 더 알아보고 올걸.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걸.


포기해야 하나. 

돌아가려면 어디서 버스를 타야하나.

정류장까지 갈 수는 있을까.

택시를 불러야할까.


군시절 100km 행군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었는데. 


중도포기라는 말을 떠올리니 

새삼 실감이 났다.


너무나 슬퍼졌고 창피했다.


변화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변화는 커녕 퇴화할 것 같았다.






추락하는 기분.


이대로 돌아가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나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웠다. 

일단 쉬자. 

낮잠을 자자.


불안함에 잠은 오지 않았지만,

다리를 자전거에 걸치고 30분 정도를 누워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왼쪽 무릎의 통증이 사라졌다.


조심하는 것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


기어를 한 단계 내리고 페달을 밟았다.


절뚝이며 걷는 것보다

천천히 라이딩을 하는 게 훨씬 빨랐다.


오늘은 칠곡보까지는 갈 생각이었다.


너무 무리하면 안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최대한 많이 가야 했다.


내일은 

하루종일 비가 올 예정이었다.





상주보에 도착했다.

아직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가 남았다.


낙단보까지 17km.

낙단보에서 구미보까지 21km.

구미보에서 칠곡보까지 35km.


왼쪽 무릎에게 제사라도 지내듯

뿌리는 파스 반통을 다 쓰며 기도했다.


부디 아프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통증은 다시 점점 번져왔다.





낙단보에 도착했다.


조금씩 번지던 통증은 끝내 무릎을 장악했고,

페달은 커녕 땅을 밟기조차 괴로웠다.


일단 근처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짜장면을 먹고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가 고장이라

좌변기를 이용했다.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구부러진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무릎에 모든 중력이 쏠려 있는 기분.

영영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짜 119를 불러야 하나?

억지로 가위눌림을 떨쳐내는 것처럼 안간힘을 썼다.


양쪽 벽을 잡고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이대로 무릎이 끊어져버릴 것 같았다.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었다.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결국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겨우 저녁 일곱 시인데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식당 바로 뒤에 있는 무인텔이 보였다.


100m도 안되는 거리였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목발 삼아 부축하며 걸었다.





내부는 깔끔하고 깨끗했지만,

내 기분은 눅눅하고 무거웠다.


옷을 다 빨래하고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얼음 대신 수건을 찬물에 적셔

무릎의 열을 빼줬다.


사흘만에 처음 하는 찜질이었다.

나의 멍청함에 후회가 밀려왔다.





불을 끄고 누워

아까 문경새재를 지날 때


아빠가 보낸 문자를 읽었다.


아버지는 나와 같이 가고 있었다.

내가 포기하면 아버지도 포기하는 거였다.


걸어서라도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그만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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