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惡
이 시대의 구조는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기심은 효율로 포장되고, 냉소는 현실감각으로 둔갑한다. 타인에게 기울이는 관심은 '오지랖'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은 '순진함'으로 치부된다. 이런 세상에서 선함은 일종의 질병처럼 취급받는다. 전염성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격리되어야 할 무언가.
마치 연어처럼, '선함'은 언제나 역풍을 맞으며 걷는다. 선함이란 단순히 착한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관성에 맞서는 일종의 저항이다. 모든 것이 편의와 효율의 논리로 재편되는 시대에,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는 행위. 모든 것이 경쟁과 승리의 언어로 번역되는 현실에,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의 손을 잡는 행위.
하지만 고통은 필연적이다. 세상이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만큼, 그들은 기울기를 바로잡으려 더 큰 힘을 써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의 뻔뻔함을, 선량함을 무기로 삼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웃는 세상의 야비함을.
이 노력들은 자주 평가절하되거나 아예 인정받지 못한다. 선한 사람들의 고통은 암흑물질처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우주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관측되지 않는 암흑물질처럼, 선함은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지만 가시화되지 않는다.
선한 사람들의 삶은 카프카의 도끼와 같다. 세상의 무관심과 차가운 현실주의라는 얼음 위에서, 그들은 자신의 온기로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간다. 그 균열은 작고 느리지만, 결국 봄을 부른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그들의 선함은 축적되어 결국 세상의 지형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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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결국 선한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다. 강함은 주먹의 힘이나 권력의 크기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의 유혹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지켜내는 힘,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힘이다. 진정한 연결은 양적 팽창이 아니라 질적 깊이에서 비롯된다.
씨앗은 자신이 어떤 꽃을 피울지 미리 알지 못한다. 그저 땅 속 깊은 어둠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릴 뿐이다. 선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함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맺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뿌리를 내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꽃이 핀다.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그들의 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선한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다.
세상은 선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살기 편하게 되어 있다.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으로 사는 게 편하며, 온정보다는 냉소가 쉽다.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과 싸워온 사람이다.
그의 삶은 늘 보이지 않는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