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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27. 2018

비엔나 아이들의 겨울처럼

비엔나 시청사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하기

춥고 스산했던 어제의 날씨와는 다르게 아침 느지막이 눈을 떠보니 하늘은 아주 맑게 개어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는 아빠와 함께 벌써 한 차례 호텔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올라오던 참이었다. 창을 열어보니 날도 믿기지 않게 따스해져 있었다. 물론 겨울은 겨울이었지만 말이다. 비엔나에서의 첫 날을 날씨 때문에 좀 힘들게 보내서 그런지 오늘은 뭘 해도 다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뭘 하고 비엔나를 탐험해볼까?' 언제나처럼 그 날 하루의 일정을 정하는 건 보통 엄마인 내 몫이다. 날씨에 따라,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오늘은 얼마 큼을 걸을지 어디로 갈지 정한다. 내일 하루는 비엔나 투어를 신청해놨으니 오늘 하루는 좀 쉬엄쉬엄 도시를 걸어보기로 했다.


숙소 앞 Stadtpark.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기 좋았다.
시무룩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맑아진 비엔나의 하늘


처음 목적지는 바로 어제 갔었던 시청사 앞 크리스마스 마켓이었다. 해도 뜨고 날씨도 평온했던 오늘은 금세 문 닫을 것 같았던 어제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였다. 비엔나의 모든 시민들이 다 나와있는 것처럼 들썩들썩 진짜 축제 분위기가 났다. 특히 이번 비엔나 여행에서 남편은 시청사 앞에서 스케이트 타는 것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미 링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작년부터 조금씩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지금 아이 실력으로는 이 많은 인파 속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건 좀 무리겠다 싶었다. 나중에 사람이 좀 빠져서 한산해지면 다시 오자고 약속하고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에 나섰다.


어제에 비해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지금 사면 바로 창고행,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들


어제는 아이가 추운 겨울날에 비에 젖을까 우산 씌우랴, 유모차 끄느냐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한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써서 보내면 정말 좋을 것 같았던 앤티크 한 엽서(예전이면 모를까 요즘에는 사놓고도 집에 와서 여행 짐 정리할 때 돼서야 엽서 사놓은 걸 기억한다), 읽지 못하는 독일어로 쓰여있는 귀여운 동화책,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결코 팔지(혹은 팔리지) 않을 것 같은 특이하고 귀여운 털모자들. 오늘 시장엔 손님이 많아서 좀 복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제처럼 상인들이 우리만 쳐다보는 일 없이 물건을 담고 팔기 바빠 이것저것 구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물론 어제 갔었던 크리스마스 마켓 안 작은 유원지에 있는 회전목마를 타러 다시 갔다. 요즘 아이는 필요한 것을 혼자 가서 얘기하고, 받아오는, 그런 작은 성취의 기쁨에 빠져있는데, 오늘도 회전목마를 타는 매표소에서 그랬다. 내가 2.50유로 동전을 챙겨서 주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아이 혼자 가서 까치발을 하고 "티켓 한 장 주세요!"라고 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리품처럼 티켓을 들고 돌아온다. 자기가 스스로 사 가지고 온 주황색 플라스틱 티켓을 손에 꼭 쥐고 있다가 회전목마나 꼬마 기차에 올라타 직원 아저씨에게 건네는데 그 모습이 정말 웃기다. 그래서 아이의 그런 모습이 또 보고 싶어 난 '딱 한 번만 타는 거야'라고 아이에게 한 약속을 엄마 스스로 어기고 2.50 유로 동전을 다시 건넸다. '설마 되겠어?' 속으로 생각하며 "딱 한 번만 더 타도 될까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별 다른 제재 없이 동전을 건네주는 엄마를 보고 아이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금방 또 티켓을 사들고 와서 꼬마 기차를 타기 시작했다.



매년 더 새롭고, 더 화려하고, 더 세련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진 한국이나 미국 문화와는 달리 여기 비엔나의 2018년 크리스마스 모습은 아마도 100년 전 크리스마스랑 별 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의 떠오르는 간식이 아니라 매년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전통적인 겨울 간식들이 등장하고, 작년에 팔던 것과 다름없는 뻐꾸기시계와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아마도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프라터 유원지에서 가져온 듯한 앤티크 한 회전목마가 돌아가는 곳. 잘 가꾸고 지켜온 오래된 것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걸 아이도, 나도 비엔나의 겨울에서 배웠다.


밤이 되면 저 하트 나무에 불이 켜진다.






아이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 잘츠부르크 여행 이야기


1. Dear Santa, 우린 비엔나로 왔어요!

2. 비엔나로 날아온 산타

3. 비엔나 아이들의 겨울처럼

4. 비엔나에서 단 하루를 보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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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알프스 산골 아이들, 학교 끝나면 뭐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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