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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02. 2019

수 백 년 된 오스트리아 고성에서 보내는 겨울

잘츠부르크 근교 쉴로스 푸쉴(Schloss Fuschl) 호텔

크리스마스 연말, 잘츠부르크 온 동네의 괜찮은 호텔들은 일찌감치 예약을 마감했다. 우리도 나름 일찌감치 연말 일정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우리가 알아봤을 때는 몇 군데 선택권이 남지 않았었다. 유럽은 크리스마스 연휴가 2주 정도로 길고, 또 그 휴가 시기를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연말 계획을 다들 미리 세우는 듯하다. 잘츠부르크 시내 안에 남아 있는 호텔들 중에는 우리 마음에 쏙 드는 호텔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시내가 아닌 잘츠부르크에서 좀 떨어진 근교 쪽으로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Sound of Music의 배경이기도 했던 푸쉴 호수 근처에 정말 마음에 쏙 드는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쉴로스 푸실(Schloss Fuschl) 호텔.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조금 외진 곳에 있었는데, 왠지 이 정도면 시내로 나오기에도 어렵지 않고, 또 북적북적한 연말 분위기에서 좀 벗어나 평화로운 알프스 겨울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쉴 호수로 가는 길, 이 날 우리 여행 처음으로 눈이 오는 걸 봤다
사냥꾼 산장 같은 분위기의 로비. 체크인을 할 때 뜨끈한 스프를 컵에 담아 준다.
대부분의 손님이 이 지역 사람들인지 다들 작은 강아지 혹은 사냥개 같은 큰 손님견들도 많이 보였다.
이 호텔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해줬던 벽 그림들, 작은 리스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Do not disturb


푸쉴 호수에 있는 이 호텔은 1450년부터 성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레노베이션해서 만든 리조트다. 고성이라고 해서 어두침침하고 높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호숫가에 있는 사냥꾼의 산장 같은 분위기의 오스트리아 전통 스타일이었다. 건물들은 낮은 층의 ㄷ자 구조로 이어져있는데, 그 가운데 마당에는 할슈타트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전통 목조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건물은 지금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엘리자베스 씨씨 왕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실제로 씨씨 왕후의 물건이 있는 건 아니고, 예전에 이 호텔에서 '씨씨'란 영화를 찍었을 때 활용된 소품, 가구들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눈이 내리던 날


이 호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큰 창을 통해 멋진 겨울 풍경을 바라보면서 즐길 수 있는 스파 사우나, 그리고 이 호수에서 직접 잡아 올린 생선으로 요리한 오스트리아 전통 지방 음식을 만드는 식당 '쉴로스'다. 특히 우리가 있는 동안 하루 종일 눈이 내렸었는데, 호수 위로 눈발이 내리치리는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건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이 곳에는 스파 마사지도 있었는데 예약이 가능할지 직원에게 물어봤을 땐 이미 그 자리에서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백 번 정도 한 듯한 표정으로 내년 초까지 단 한 시간의 자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어쩐지 호텔 가격에 비해 마사지 가격이 좀 많이 합리적이다 느꼈는데, 이 생각을 우리만 한 건 아니었나보다.

 

겨울에 특히 아름다운 사우나
쉴로스 호텔은 아침이면 투숙객들을 위한 조식 장소로 변신한다.


이 호텔에서 재밌는 것 중의 하나는 등급에 따라 방 분위기가 정말 달라진다는 건데, 예를 들어 일반 방들은 약간 다락방 느낌의 소박한 분위기라면, 씨씨 스위트라는 애칭이 붙은 캐슬 스위트룸은 마치 예전에 왕후가 사용했을 것 같이 멋지고 화려한 궁전 안방 같은 분위기다. 또 인기 있는 스위트 중 하나는 Lake Cottage라고 해서 호수 근처에 있는 진짜 오두막 방인데 이 호텔의 진수를 느껴보려고 그곳에서 투숙해봐야겠다 싶었다. 우리가 체크인 하기 하루 전, 호텔에서 이메일 하나를 받았는데,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씨씨 스위트나 오두막 방으로 받으면 좋겠다!'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스위트는 스위트지만 그냥 일반 다락방에 작은 응접실 하나 더 붙어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투베드룸 다락방이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천고가 낮아서 그런가, 다락방 느낌의 깔끔하고 편안한 방
두꺼운 이불을 덮고 저 벤치에 누워 별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창문을 열면 저렇게 아름다운 푸쉴 호수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이 작은 산골 동네에서 나름 2박 3일을 하면 시간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린 마지막 날 4시까지 레이트 체크아웃을 신청하면서도 아쉬울 정도로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다음 날 예약해놓은 비행기만 없었다면 며칠 더 묵고 싶었다. 어딘가를 바쁘게 보고, 듣고, 사고, 먹고 그럴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아이와 눈사람도 만들고, 노천탕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별자리를 찾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눈 내리는 호수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며칠 보내고 나니 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연말이 되면 일주일 정도씩 이 곳에 묵으면서 한 해를 마감하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왠지 날이 좋은 어느 해 봄날, 이 알프스 산골 마을의 평화를 찾아 다시 이 곳으로 여행 오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번에 봄이 오면 다시 와봐야지!





아이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 잘츠부르크 여행 이야기


1. Dear Santa, 우린 비엔나로 왔어요!

2. 비엔나로 날아온 산타

3. 비엔나 아이들의 겨울처럼

4. 비엔나에서 단 하루를 보낸다면

5. 비엔나에서 데이트를

6. 알프스 산골 아이들, 학교 끝나면 뭐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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