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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Oct 03. 2024

[소설] 02화 카페 흐노니

설핏 잠이 들었다 깬 사이, 새벽빛이 밝아왔다. 여주는 허둥대며 쓰레기 더미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지만 편지는 사라진 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사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잘게 찢은 영수증, 누군가 휘갈겨 쓴 메모지 등 자잘한 종이들 사이, 그녀가 버린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여주의 걸음은 우편함 쪽을 향했다. 


있다. 우편함에 삐죽이 튀어나온 편지가 보인다. 여주는 입술이 바짝 마른 상태로 편지를 꺼내 펼쳤다.     


당신의 편지를 찾으러 오세요. 오지 않는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 카페 흐노니     


이건 협박 편지다. 누군가 그녀를 회화에 있는 카페로 오길 원한다.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카페를 검색해 봤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동네의 평범한 카페일 뿐이었다. 후기도 많지 않았고, 그 몇 있는 후기도 커피나 디저트에 대한 감상이 전부였다.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 문장의 의미는 뭘까. 무시할 수도 있지만 회화에 있는 카페란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는 편지를 버리는 대신 가방에 챙겨 넣었다.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움텄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할 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로 출근길로 나섰다.


“여주 씨, 이제 와?”


“웬일로 늦었네요.”


사무실에 들어가자 김 대리를 비롯해 먼저 출근한 직원들이 웬일이냐며 의외라는 눈을 했다. 매일 일등으로 출근해 한기가 가득한 사무실을 데우고 온종일 쌓인 쓰레기를 치워 쾌적하게 만들던 그녀이기에 불만 어린 눈빛들이 보였다.


고작 편지 한 통 때문에 하루 시작부터 흐트러졌구나. 그래서일까. 아침 공기가 평소보다 무거웠다.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글 봤어요?”


“봤어요. 그거 누굴까요?”


여주에게 향한 관심은 딱 그 정도였다. 다른 화제에 그녀의 늦은 출근은 잠깐의 타박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각자 커피와 차를 마시며 사내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대해 떠들었다. 여주도 일할 준비를 하며 무심코 사내 익명게시판에 들어갔다. 유난히 조회 수가 높은 글이 바로 눈에 띄었다.     



[고발] 회사에서 이런 사람을 뽑아도 되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유명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 남자 뺏은 거로 안면 텄죠. 손버릇도 나쁘고 나타나는 곳마다 트러블메이커였어요.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했는데 집안은 더 가관이에요. 아빠는 살인범이고 엄마는 불륜으로 유명했어요. 걔 엄마가 바람피워서 아빠가 사람 죽인 거라는 말도 있어요.

그 와중에 그 애는 엄마 닮아서 학교 선생 꼬시다 잘릴 뻔했어요. 결국 강제 전학 갔지만요. 이런 애가 지금은 조용하게 회사 다니는 척하더라고요. 회사에서 마주치고 나 모르는척하는데 어찌나 소름 돋던지. 회사에서 인성 테스트 좀 하고 사람 뽑았으면 좋겠네요.


⤷그게 대체 누굽니까?

⤷주작 금물이요.

⤷무섭네요. 이런 사람이랑 같이 일하다니.    



마우스를 잡은 여주의 손이 떨렸다.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필, 이 순간에 그 편지가 떠올랐다. 그 협박의 의미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친구 남자를 뺏은 여자. 살인범. 강제 전학. 모두 그녀의 이야기였다. 


지난 십여 년간 그녀를 쫓던 꼬리표가 뱀 머리처럼 스르륵 고개를 내밀었다. 숨 쉴 틈이 생기면 바로 목을 죄어오던 소문들. 진실과 상관없이 그녀를 죄인으로 만들던 말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시간이 무색하게도 소문은 다시 고개를 까닥이며 엄습했다.


“이거 진짜일까요?”


“좀 불쌍하다. 부모가 죄 지른 거지, 자식이 그런 건 아니잖아요.”


“쓰레기 부모 밑에서 제대로 컸겠어? 이거 봐봐. 친구 남자도 뺏고 선생도 꼬시고 말이야.”


소문은 점점 몸체를 키운다. 진실과 상관없이. 아니, 사람들은 진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하다. 그녀를 줄곧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다시 생겨날 것이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당신의 편지를 찾으러 오세요. 오지 않는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 카페 흐노니.’


항상 반복되던 불행 중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예고장 같은 편지였다.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편지. 여주는 이제야 편지의 온전한 의미를 깨달았다.


카페 흐노니,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다. 편지의 발신인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 전에 그곳에 가야만 한다.  

  





봄이 참 예쁜 곳, 회화.


회화는 여주가 고3을 앞두고 전학 가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거리에는 꽃나무들이 가득했고 그녀가 다닌 회화고는 교정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만 흔들릴 뿐, 봄의 정취는 그녀의 기억 속에만 잠들어 있었다.


지금 회화는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과 가장 불행한 기억이 뒤섞인 곳이었다. 12년 전, 도망치듯 떠났고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그 결심이 무색하게도 협박 편지에 나약하게 끌려오고야 말았다.


12년 만에 온 회화는 낯설었다. 한적하고 주택가들이 많았던 자리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다행히 그녀의 기억을 떠올릴만한 곳은 없었다. 정확히는 떠올리지 않으려 낯선 것에 시선을 주고 익숙한 풍경은 외면했다.


카페 흐노니는 여주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핸드폰으로 위치를 확인하며 가는데도 골목길에 들어서자 길이 헷갈렸다. 그사이 어둠이 내린 길목은 으슥했다.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켰다. 미리 영업시간을 확인했지만 여주는 걸음을 서둘렀다.


몇 번 헤매다 건물에 비해 작은 간판을 가진 카페 흐노니를 찾았다. 야외 테이블이 몇 개 있는 정원이 있는 카페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건물이 크고 마당이 넓어서 놀라고 그에 비해 간판은 작아서 의아했다.


“온 적이 있었나.”


낯익은 풍경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낯선 건물이 익숙하게 다가왔다. 기억을 더듬던 그녀의 눈에 카페 문에 걸린 ‘임시휴업’ 팻말이 들어왔다.


똑. 똑. 똑.


여주는 설마 하며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는 조금 더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안에 누구 없어요?”


여주는 점점 문을 두드리는 손에 힘을 줬다. 어떤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십여 년을 외면했던 곳에 온 것도 억울한데 닫혀 있는 카페를 보니 마치 놀아난 기분이었다.


쾅, 쾅.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손이 아플 만큼 세게 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이 문 좀 열어봐요!”


억울한 심정이 담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여기 오라며! 나보고 후회할지도 모른다며!”


편지 한 통에 지레 겁을 먹은 걸까. 편지와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연관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이성이 날아가 버려서 무작정 와버렸다. 바보 같이.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문에 몸을 기댄 채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겨울의 찬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여주는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두 손으로 편지를 찢으려다 멈췄다.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편지를 꽉 쥐었다. 언젠가는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기다렸다. 지금은 이 카페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갈 곳도, 방향도 잃어버렸다. 더는 움직일 힘도 없었다. 올려다본 밤하늘엔 밝은 달이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차갑고 피부는 얼어붙었다. 여주는 무릎을 모아 끌어안은 채 몸을 잔뜩 움츠렸다. 시간이 갈수록 서러워지는 마음은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도 몰랐다.


깜박, 깜박, 팟.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텅 빈 건물 3층에서 불빛이 깜박거리다 환한 빛이 들어왔다. 여주는 무심코 고개를 들다 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을 발견했다.


‘불이 켜졌어?’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내내 문 앞을 지키고 있었으니 드나든 사람도 없었다.


“안에 누구 있어요? 문 좀 열어……!”


절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이 손잡이도 잡기 전에 스르륵 열렸다.


간절히 열리길 바랐던 문이지만 수상쩍은 상황에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문틈으로 보이는 카페는 어두웠고 인기척도 없었다. 여주는 위를 올려다보며 고민하다 결심한 듯 발을 들이밀었다.


“누구 없어요?”


적막 속에 여주의 목소리만 울렸다. 발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주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 카페를 살폈다. 긴 바가 있는 실내는 카페보다 칵테일바처럼 보였다. 테이블은 서너 개가 고작이었고 칠판에 쓴 메뉴판, 은은하게 남은 원두 향은 별다른 게 없는 평범한 카페였다. 특이한 건 건물 구조였다. 건물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는데 천장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3층 불빛이 아래에서도 보였다.


여주는 계단을 찾은 후 위를 올려다봤다. 불빛이 마치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듯했다. 홀리듯 빛에 끌려 계단을 올랐다. 2층 복도를 지나 3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이 나왔다. 여주는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향해 걸었다. 그곳은 작은 다락방이었다. 몸을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 그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뭐지?”


다락방에는 인위적인 불빛이 없었다. 은은한 달빛이 천장에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올 뿐이었다. 


그녀를 이끌었던 빛은 보이지 않았다. 헛것을 봤나 싶어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지만 다락방을 밝히는 빛은 달빛만이 유일했다.


“이상하네.”


천장에 난 창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달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크고 밝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이 그녀를 덮치기라도 할 듯.


그 순간, 환한 빛이 창을 통해 여주에게 쏟아졌다. 무수히 많은 빛줄기가 비처럼 쏟아지자 여주가 휘청거렸다.


우웅. 우우우웅. 우웅.


빛이 번쩍거리고 알 수 없는 소리가 강렬하게 귀를 때렸다.


“뭐, 뭐야, 이건.”


이상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떠오른 건 글자였다.


나를 구해줘. 나를 구해줘. 나를 구해줘. 나를 구해줘. 나를……!


벽에서 글자가 튀어나왔다. 그녀의 몸이 무수히 떠오르는 글자들에 둘러싸여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글자들이 아우성치며 그녀를 에워쌌다. 글자들이 비명을 지르듯 사납게 요동쳤다.


흔들린 몸이 바닥으로 푹 꺼지려 했다. 하지만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환한 빛뿐, 어느새 글자는 사라지고 몸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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