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우주에 세 든 임차인. 보증금도 없을 뿐 아니라 자동 연장의 혜택을 누리고 산다.
5월이면 이 집에 이사 온 지 3년이 된다.
몇 년 전 겨울, 집을 하나 봤는데 같이 가보자는 정배 여사의 말에 따라나섰다. 내 의견 따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늘 허락을 받듯 나에게 선 뵈이신다. 내가 가서 하는 일이라곤 역시나 정배 여사의 안목과 내 안목의 차이를 실감하는 일뿐이다. 30년이나 된 오래된 주택을 마치 '발견'이라도 했다는 듯 선보이는데 내 눈엔 투자 가치는커녕 글감 한 꼭지에도 미칠락 말락 하다.
이 집도 마찬가지였다. 외관만 봐도 유물 같은 오래된 집이었다. 대문을 열자 감나무 잎사귀가 마치 집의 운명을 말해주듯 마당에 나뒹굴고 좁은 계단 위 어긋난 현관문, 넓고 컴컴한 거실, 미로 같은 구조, 5m는 돼 보이는 썰렁한 천고, 두 개의 다락방과 어중간하게 큰 방, 쓸데없이 많은 문, 세를 주려고 분리한 얇은 벽 등, 암만 봐도 마음에 드는 데라곤 없는데, 도대체 정배 여사는 이 집의 어느 구석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 집은 정배 여사 소유가 되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이 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베어 내는 일이었다. 집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뿌리가 벽에 금을 낸다며 인부들을 부르는데, 나는 또 괜스레 식물에 감정이입이 돼 지극히 실용주의자인 정배 여사를 매몰차다고 생각한다. 거의 30년이나 된 나무를 베어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꾼과 비용이 들었다. 그 작업이 마무리되자 이번엔 담장을 허물어 마당에 주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집은 상가로 세를 낼 계획이었으니까.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산 집이니 큰돈을 투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세입자를 구하기엔 너무 낡은 집이어서 대략적인 공사라도 한 후에 세를 내려던 참이었다. 그 후로 내가 그 집에 가야 할 일은 없었다. 업체를 불러 일을 맡기고 확인하는 건 정배 여사의 일이었고 나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그 집에 지금 내가 살고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는데 딱 맞는 예시가 되었다. 감나무가 있던 집, 귀신이 나올 것 같았던 컴컴한 집, 온라인 주소창에 '담 없는 집'이라고 쓰는 집에.
정배 여사의 계획대로 이 집은 겨울부터 공사에 들어가 봄에는 세입자를 구하며 차근차근 정상적인 수순을 밟고 있었다. 드문드문 몇몇이 집을 보러 와 흥정을 했고 젊은 부부가 월세로 계약했다. 살림 겸 사업장으로 쓸 거라며 흡족해했다. 그러나 잔금을 치르기로 한 날 세입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정배 여사는 젊은 사람들이 마치 자식 같다며 잔금일을 미뤄주었지만, 그들은 연거푸 약속을 어겼다. 정배 여사는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부동산에 통보하며 계약금도 돌려주겠으니 얼른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소식을 들은 계약자는 안하무인으로 돌변했다. 밤마다 전화를 해 욕을 하고 터무니없는 위협을 했다. 그러자 정배 여사는 부동산에 가 아들네가 들어오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강단 있는 정배 여사였지만, 늙은이 혼자 일 처리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 얕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후 우리에게 뜬금없는 말을 했다.
"너거 고마, 여 와서 살면 안 되겠나?"
"에이 우리가 여기 우찌 사노 엄마, 안 된다."
"그라믄 나는 CCTV 하나 달아주라"
그제야 우리는 그간에 있었던 세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정배 여사의 두려움을 이해했다. CCTV란 말을 입에 올릴 만큼 낯선 동네에서 독거노인으로 사는 게 겁이 난 모양이다. 우리는, 여기는 좁아서 살 수 없다던 말을 뒤집고 리모델링한 물만골 집은 세를 놓고 더 허름한 이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협박 전화는 끊이질 않아 우리가 이사 온 걸 보고선 이중계약을 했다며 또 욕을 하고선 끝을 냈다.
이 과정을 다 지켜본 부동산 사장님이 이사하는 날 오셨다.
"사람 일이라는 게 인력으로 안 되는기라, 아들 며느리 여기 들어오라고 일이 그렇게 꼬였던가 봐."
그러게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다. 우리가 여기 들어올 줄 알았더라면 공사할 때 들락거리며 시시콜콜 간섭이라도 하고 자재도 신경 썼을 텐데 말이다.
결혼 후 아이들이 어릴 때 잠시 아파트로 분가해 살던 때를 제외하곤 여태껏 정배 여사와 한 건물에서 살았다. 재개발로 집을 떠나며 세대를 분리하고 떨어져 산다는 게 설렘만큼 걱정도 많았었는데 운명은 또 우리를 앞뒷집에, 서류상 주인과 세입자로 묶어두었다.
공원에 나와 앉았다. 햇살은 따끈하지만, 목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이 차다. 그러나 곧 3월이니 이 숲에 푸른 움 돋을 날이 머지않았다.
'라일락에 세 들어 살던 날이 있었다.'라고 시작하는 박지웅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노랗게 숨을 죽이고 있는 잔디도, 이불 싸매고 선 벚나무도, 널찍한 침대 깔고 누운 우리도 실은 우주에 세 들어 있는 세입자에 불과하다. 보증금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마다 자동으로 갱신해 주는 너그러운 주인이다. 내가 사는 이 집과 물만골 집, 오늘도 집을 구하러 다녔을 많은 이들도 서류상 주인은 있으나 원주인은 우주로, 같은 주인을 두고 있다.
이 집에 이사 오던 날 3년만 살고 나가자고, 그렇게 해 달라고, 오는 날에 이미 나갈 날을 꿈꿨었다. 올 5월이면 딱 3년이 된다. 올봄엔 내 바람도 순풍을 타고 불어오면 좋겠다. 내가 진짜 여기에 살았었는지 라일락꽃 꿈을 꾼 것인지 헷갈려도 좋을 그런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