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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 여사와 물만골 6화 - 돼지국밥

by 꽃보다 마흔 Mar 04. 2025

돼지국밥.

  (돼지야, 미안해)- 돼지의 은혜!


  "사장님, 이런 일 하실 분이 아닌데요?"

  돼지국밥 장사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질문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말을 그들은 흘렸다. 이건 마치, 넌 가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것과 같고 시인이 이렇게밖에 못 쓰냐는 말을 사흘들이 듣는 것과 같아서, 자격 없음 혹은 진로 선택 실패를 말하는 것 같다. 

  "작가님, 어쩌다가 돼지국밥 장사를 했던 거예요?"

  사람들은 또 묻는다. 그때는 막연하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같았다면 지금은 확실히 엉뚱해 보이는 전직에 독자들은 왜, 어쩌다가 그랬던 거냐고 마치 진흙 묻혀온 아이 추궁하듯 묻는다.  

 

  아들 넷을 낳고 '또 아들이라요!'하며 할머니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는 아빠가 느지막이 딸을 낳게 될지 누가 알았겠으며 8, 9등급만 받아오던 아들이 한 번 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줄 누가 예상했을 거며, 이와 팬티만 하얗게 내놓고 뛰어놀던 내가 글을 쓰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듯, 삼십 대의 아홉수를 넘자마자 정배 여사와 돼지국밥 장사를 하게 될 거라곤 나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내막은 이러했다. 정배 여사는 2층, 우리는 3층, 한 건물에 살고 있을 때였다. 1층에서 카페를 하던 세입자가 계약 연장 대신 나가겠다고 통보해 왔다. 동네 여기저기에 프렌차이저 카페가 상가 1층을 점령하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아지트 같은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길 때였다. 막연하게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은 욕망에 권리금 주고 내가 카페를 양도받으면 어떻겠냐고 정배 여사에게 물었다. 사촌 언니 가게에 몇 년째 다니고 있는 나를 못마땅해하던 때였다. 이제 배울 만큼 배우지 않았느냐고, 왜 능력 있는데 네 일하지 않고 계속 월급쟁이 하냐고 은근히 부담을 주던 때이기도 했다. 나는 전혀 사업을 할 생각이 없는데도 말이다. 아들 말마따나 정배 여사는 늘 우리를 과대평가했다. 그런 중에 카페를 해 보겠다 했으니 정배 여사에겐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을 테다. 그러나 카페 사장은 터무니없는 권리금을 제시했고 나는 권리금과 월세, 인건비 등 그제야 현실적인 계산을 하게 되어, 없던 일로 하자며 발을 빼고 세입자를 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고 이런저런 메뉴를 구상하는 걸 보아 온 정배 여사는 못내 아쉬워했다. 


  가게는 한참 동안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1층 가게에 이삿짐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님, 세입자 구하셨나 보네요?"

  소식을 들으러 갔더니 정배 여사, 눈빛에서부터 비장함이 새어 나오는 게 아닌가.

  "내가 돼지국밥 할 거다. 너도 고마 언니 가게 그만두고 온나!"

  "예?"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벌여 놓으셨다. 크고 작은 냉장고와 업소용 가스레인지, 소독기 등 새 물건과 중고 물건을 들이며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아니 결심을 굳히려 물건 먼저 들인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어머님 안 됩니다. 어머님이 우찌 하신다꼬 그랍니까?"

  "너는 오기 싫으면 오지 마라. 나 혼자서라도 할 테니."

  리더의 제1 원칙 실행력. 직진 정배 여사, 일흔이 넘어도 일단 화살 먼저 쏘고 달려간다. 그리하여 카페가 될 뻔한 가게가 난데없이 '가마솥 돼지국밥'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오기 싫으면 오지 말라는 말에 흔들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반대하는 남편 말 들었어야 했는데, 진짜 혼자 시작하실까 봐, 내가 아는 정배 여사는 그랬으니까 엉거주춤 손을 내밀고 말았다. 

  그랬으면 결과적으로 그건 내 선택이었는데 나는 종종 원망의 불쏘시개를 피워댔다. 원망은 살고자 스스로 찾는 핑계고 벙커다. 그 대상마저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내 선택이었다고만 하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지니까.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는 일 때문이 아니었고 잠을 못 자 점점 살이 빠지는 일도 아니었다. 볼은 점점 꺼져가는데 눈 지방은 점점 두터워지는 일도 아니었고 까탈스럽거나 무례한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출입문'이라고 적힌 문을 나만 출입하지 못하는 갇힌 상황에 숨이 막혔다. 문밖에선 꽃이 피고 여름이 지나고 눈치 없는 낙엽이 날아들고 얼음꽃이 피고 졌다. 바깥에는 이야기가 흐르고 안에서 나는 단절되어 갔다. 내 삶의 반경이 1층과 3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데 그쳤다. 어쩌다 모임에 나가면 말이 입안에 갇혔다는 걸 느끼며 점점 더 이 일에 정이 떨어졌다. 이대로 청춘이 끝날 것 같은 암울함에 제압당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은 화근이었다. 돼지국밥이 싫증 난 게 아니라 수감 같은 생활에 물리기 시작했다. 정배 여사를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고 떠나버린 카페 사장까지 원망했다. 일회용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내 삶을 위로해야 했다. 그런다고 출입문이 비상구가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질투의 여신 헤라의 저주를 받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처자식을 죽인다. 델포이 신전은 그런 헤라클레스에게 12가지 과업을 내리는데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다 헤쳐내고 끝내는 노예에서 풀려나게 된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내 삶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되돌아보면 돼지국밥이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과업 같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지막 난제에선 남편이 제비 다리 꺾듯 제 다리를 꺾어 도움을 주고 말이다. 이제는 풀어줄 테니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는 것 같기도 해 먹물 같은 그 시간이 필연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은혜로운 돼지국밥이 된다.

  정배 여사와는 전쟁 같은 밤낮을 보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 아픈 허리와 열에 들뜬 이마를 짚어주며 전우애를 나눴다. 고부간이 동지로 거듭난 계기이자 가까이 살아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여실히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끝나는 날까지 돼지국밥을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은 건 대견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조미료 넣지 않고 연탄불에 펄펄 끓여 내던 정배 여사표 돼지국밥이 생각난다. 뜨겁게 속을 데우고 뚝배기를 내려놓을 때 이마를 적시던 땀방울이 그리운, 어느새 '그립다' 말하는 얄궂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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