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도 어리고 나도 젊었던 시절엔 동네에 아이들 친구 엄마나 가족들과 자주 모임도 갖고 친목을 도모했더랬다. 하지만 만나고 나면 왠지 헛헛한 마음에 학원을 알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굴레를 끊고자 이사 후에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다. 나의 선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일상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가끔 안부를 묻고 지내는 동네 지인은 한 손안에 꼽을 수 있는데, 그중 한 분은 집 근처 미용실 원장님이다. 우리 가족 모두의 헤어를 책임져주시는 유쾌한 원장님 내외, 그중 남자원장님은 다양한 운동의 마니아 셔서 특히나 나와 만나면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형님 무에타이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골프를 너무 좋아하지만 근력이나 유산소 운동은 딱히 즐기지 않는 남편에게 훅 들어온 제안. 10년 가까이 무에타이를 배우며 그 매력에 흠뻑 빠지신 남자 원장님은 이미 몇몇 지인들과 같이 운동을 하고 계셨다. 1년만 해보시면 체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며 본인을 믿어보라고 호언장담을 하셨고, 거절에 유독 취약한 남편은 어쩌다 보니 승낙을 해버렸다. 그렇게 1주일에 두 번씩 무에타이를 한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분명히 좋아하실 것 같은데...
달리기에 몰입해 있던 지난여름, 원장님이 지나가는 말투로 슬쩍 흘리신다. 부원장님, 즉 본인의 아내도 체력이 약해서 무에타이를 했으면 하는데 같이 운동을 하면 어떻겠냐며.
'전 달릴 시간도 모자란걸요. 날씨 좀 추워지면 생각해 볼게요.' 하고 완곡히 거절했는데, 날씨가 추워졌네?
게다가 난 그사이 무쇠소녀단 2를 보며 복싱에 지대한 관심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https://brunch.co.kr/@simba/53
아. 이 무슨 완벽한 타이밍.
그렇게 지난주 토요일, 내 인생 첫 무에타이 수업을 받게 되었다.
줄넘기, 달리기, 스쿼트, 런지 기타 등등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기본 스텝을 배웠다.
저 이거 알아요! 무쇠소녀단에서 엄청 많이 봤거든요!!
하지만 역시나 보는 것과 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흉내는 제법 낼 수 있었다. 이내 글로브를 낀 다음 잽과 스트레이트도 연습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남편과 같이 운동한다는 것이었다. 미트를 잡고 있는 남편에게 신나게 주먹을 날렸다.(폭력 아니고 운동입니다)
첫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브도 껴보고, 발차기까지 연습시켜 주셨다. 앞으로 내가 배우게 될 재미있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조금씩 맛본 느낌. 아마 무에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 운동인지 보여주시고 싶어서 그러신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성공적. 1시간 만에 나는 완벽하게 무에타이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런 운동 금사빠. 운동은 기본기가 중요하니 앞으로 천천히 배우겠지만, 그 모든 것의 맨 처음에는 '시작'이 있어야 하거든.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 접어두기로 했다. 내 인생에 있어해 볼 수 있을 거라도 상상조차도 못했던 운동, 무에타이. 새로운 운동을 배운다는 생각에 상기되는 지금의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거려 다정하게 존중해 본다.
다음 수업에 3분 줄넘기가 아주 조금 덜 힘들어지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이대로 쭉 잽잽 스트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