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0일 토요일
남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제만 해도 콜록콜록 정도의 목에서 나는 마른기침이었다.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져 가슴이 울리는 기침을 쉴 새 없이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기침소리에 매우 예민하다. 나의 뇌는 소아 천식을 앓던 첫째의 쌕쌕거림이 심해질 때마다 전전긍긍하며 잠 못 들었던 날들의 나의 감정을 기침소리와 하나로 묶어버렸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면 반사작용으로 가슴이 조여오며 불안하다.
가슴이 주기적으로 뻐근하게 조여 오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한테 말해 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만약에… 오늘 밤 응급실을 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호흡 곤란이 오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구급차를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남편을 차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서 응급실로 가야 하나...
심폐소생술은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분명 몇 년 전에 배웠는데…
만약에… 병원에 가게 되면 아이들은 어떡하지…
지금도 코로나에 걸릴 까 봐 조마조마한데 아이들을 응급실에 데려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집에 두고 가야 하나…
병원에 가면 얼마나 오래 있게 될지 모르는데 아이들을 두고 가면 아이들 밥은 어떡하지...
직접 요리해보고 싶다던 첫째를 진작에 조금이라도 가르쳐 놓을 걸 그랬나…
만약에… 정말 만약에…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1년 반 전, 한국을 떠날 때가 생각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낀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많은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꿈꾼다. 그러기에 한 번쯤은 훌쩍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픈 로망을 갖는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재의 삶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일상 탈출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곧 짧은 근교 여행으로 대체된다.
그래서일까. 상황이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반 강제로 내려놓게 했을 때, 시간에 쫓겨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갑작스럽게 떠나게 됐을 때, 모두들 나를 부러워했다.
만약에… 내가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을 하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난관을 극복하기가 수월해져
사업을 하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최상의 시나리오를 꿈꾸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늘 염두에 둔다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았다.
미국 땅에 홀로 남겨진 나와 아이들…
오늘 가장 긴 밤을 보낼 것 같다.
Image by Free-Photos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