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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ug 10. 2024

두 번째 일기

첫 번째 일기는 의도와 다르게 너무 난해하고 무거운 글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일기


첫 번째 일기는 의도와 다르게 너무 난해하고 무거운 글이 되고 말았다. 솔직해지자면 내가 원하는 글이 바로 그런 글이란 사실을 알지만, 난해하고 무거운 글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어둠의 본질을 통찰하지도 못하고 세상의 초점을 선명하게 맞추지도 못한 글이다. 그러니 나의 유서이자 일기로 시작된 이 글은 사실 첫 번째부터 실패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이 글은 탄생 자체가 성공보다 실패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실패라는 단어가 훨씬 어울린다. 나는 성공하자는 마음으로 유서를 쓰기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산책을 했다. 날씨가 화창했기에 기분이 좋았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에 들어서고 있다. 가을은 길어 봤자 이 주 남짓한 시간 머무르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냉기와 함께 사라진다. 가을에 찾아온 생생하고 산뜻하고 맑은 물빛 하늘. 나는 그 풍경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드물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빛깔. 그만큼 자존심도 세다. 어린 왕자가 사랑한 오만한 장미 같다. 청명한 하늘은 결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매력적이다. 사랑에 눈이 먼 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감히 외출하지만 날씨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 세상이 빛나는 날이 가끔 찾아오는데, 오늘이 마침 그날이었다. 나는 일부러 샤워를 하고 ― 모처럼 새로 산 바디워시로 열심히 몸을 구석구석 씻었다. ― 좋아하는 체크무늬 바지와 품이 큰 티셔츠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찬 바람에 비해 햇볕이 따뜻해서 마음이 말랑해지는 감각을 걷다 보니 온몸에 열이 올랐다. 노곤하고 나른하던 몸이 서서히 휘청였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아 보냉병에 담아 온 물을 들이켰다. 주말인 데다가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온화하게 갠 날이었기에 이미 산책로가 빙 둘러싼 공원은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였다. 풀밭 위에서 내 허리까지는 올까 싶을 정도로 어리고 작은 아이들이 뒤엉켜 뛰어다녔고, 부모들은 넓은 그늘 쪽에 텐트를 치느라 정신이 없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강아지가 족히 스무 마리는 보였다. 몸에 줄을 매고 반려인을 따라 열심히 걷다가 냄새를 맡다가 왕왕 짖어대는 동물들. 아침부터 밤까지 공 하나로도 지치지 않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존재들. 나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동물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그들이 과연 사람들 생각처럼 단순할지는 쉬이 판단하지 못할 문제였기에, 그저 열심히 뛰노는 그들의 에너지에 집중했다.


매일 산책을 나와도 매일 신나는 긍정과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왜 인간에게는 저런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나. 나의 부모는 독실한 종교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매 순간 신을 원망하거나 그를 탓하며 자랐다. 신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이 정도 불만은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었다는 말과 허황한 이상과 지겨운 모순을 열심히 씹어댔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신을 닮아서 이토록 엉망진창인 게 분명하다고 입술을 이기죽거리던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다.


신은 나의 불만에도 응답이 전혀 없다. 어쩌면 신은 애초에 인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 인간은 영원히 신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컴퓨터 속 인공지능이 자신을 만든 프로그래머의 존재를 모르듯이. 다만 죽고 나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므로 서른 살에 죽는다면 죽음 너머 세상을 알 수도 있다는 점에 설렘을 느낀다. 물론 가장 바라는 건 무(無)다. 천국에서 누리는 영생, 나의 부모는 정말 그걸 믿을까. 묻는다면 틀림없이 믿는다는 대답이 돌아올 테니 묻지 않는다. 그들이 자식인 나를 반쯤 버린 이유도, 신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아서라는 허탈한 이유임을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지옥이라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생로불사. 죽음 끝에는 완전한 전멸로 죽고 싶다.


사랑하는 하늘 아래에서는 너무 우울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활기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빛이 났다. 내가 존재하는 세상은 밝고 선명했다. 평화로운 광경 속 남몰래 스며든 이방인 같았다. 머무르면 안 될 세상에 머무르는 불편한 기분. 그건 일종의 고질병이다. 피해 의식과 비슷한 경로라고 생각한다.


자기애와 대상애는 근본이 같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것과 세상을 혐오하는 마음은 정반대처럼 보여도 사실은 같은 방향인 것이다. 세상을 사랑했지만 이토록 사랑하는 세상이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꽃이 만개한 산책로를 되돌아 걸었고, 공원 근처 분식집에서 떡라면을 주문해 먹은 후 작은 카페에서 단맛과 싱거운 맛이 뒤섞인 아이스티를 마셨다.


새로 산 책은 어젯밤에 다 읽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극 소설이었고 소설을 쓴 작가는 진작에 죽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문학계의 대부호였다. 나도 몇 번 글을 쓰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모두 열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조용히 폴더 안에 축척되어 잊힌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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