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것도 놓칠 수 없지

by 오선희

가을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 흘러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대신 ‘가을것’이라도 붙잡아보려고 한다. 예전 ‘겨울것’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신나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럼 혹시 다른 계절도 이와 같은 단어가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모든 계절에 ‘것’을 붙여 만든 ‘봄것’, ‘여름것’, ‘가을것’, ‘겨울것’이 다 있었다. 이 계절에 맞는 ‘가을것’도 써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사명감이 든다. ‘가을것’은 ‘가을철에 입는 옷이나 쓰는 물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먼지를 탁탁 털어 입는 애착 후드가 있다. 연한 회색이고, 가슴팍에 남색으로 ‘savage’라고 적혀 있다. ‘야만적인’ 뭐 이런 뜻인데, 평소에 꽤나 귀여운(?) 내 이미지와 맞지 않지만, 나에게도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야만적인 면모가 있으니, 뭐 넘어가기로 한다. 내가 옷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가슴팍에 있지 않다. 목 뒤에 있다. 옷의 목 뒷부분을 보면 상표가 얄따란 헝겊으로 박음질되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나 싫다. 목 뒤가 따끔거리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옷을 사면 그 부분을 가위로 잘라 입기도 하고, 박음질된 부분을 살살 뜯어 내기도 한다. 그런데 내 애착 후드엔 그게 없다. 목 뒤가 야들야들하다. 품도 두께도 모자 크기도 적당해서 가을이 되면 유니폼처럼 입고 다닌다.


내 애착 후드는 사진 속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이 애착 후드는 강릉 단오제의 복잡한 시장도 누볐고, 내 유튜브 대표 사진 속에도 있고, 친구와의 약속을 새하얗게 잊고 뒤늦게 부랴부랴 나갔던 현장에도 있었다. 또 요즘 점심밥 먹으러 한식뷔페에 나갈 때도 안경 쓰듯이 자연스럽게 걸쳐 입는 옷이기도 하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 싫어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건 옷에 달린 모자다. 폭우가 내릴 땐 제외해야 하겠지만, 보슬보슬 정도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 따윈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냥 모자 뒤집어 쓰고 걷는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내 애착 후드가 빛을 발하며 ‘가을것’이 되는 순간이다.


커피를 사고 결제까지 마쳤는데, “프리퀀시 적립해 드릴까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아니 다시 또 그 시기가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외마디 탄성을 “아-”하고 질렀는데, 내 마음을 다 알아챘다는 듯한 재미있는 대답이 들려왔다. “네, 맞습니다. 시작됐습니다.” 프리퀀시는 겨울의 선물을 받기 위한 절차이지만, 그 시작은 깊어진 가을의 어느 날이기에, 커피 주문 받으시던 그분의 “시작됐습니다”라는 말에는 ‘가을이’가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프리퀀시를 모아 다이어리를 받고 싶은 것도, 무릎담요를 받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프리퀀시를 하나하나 받아 채우는 이유는 프리퀀시 하나가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의 가을을 잘 살아내고 있는 증거 같아서다. 또 다이어리나 무릎담요의 욕심이 있는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 연말 선물로 프리퀀시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프리퀀시는 내 ‘가을것’이 된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날리는 낙엽을 보면, 그 어느 하나 같은 색깔이 없다. 주차해 놓은 자동차 보닛 위에, 거리 위에, 미끄럼틀 위에, 나무 위에 쌓인 붉고 노란 낙엽들로 인해 세상은 가을웜톤이 된다. 발에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신나고 재밌다. 그런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찰질수록 내 콧속은 메말라간다. 코막힘의 시작이다. 우리의 코는 얼굴 중앙에 있는 구멍 두 개짜리가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눈 아래로 커다랗게 콧물이 모이는 공간이 있는데, 나는 그곳에 쉴새없이 콧물이 만들어지고 저장되어 콧구멍까지 막히는 증상을 앓고 있다. 두 글자로 비염이다. 그래서 눈 아래 부분을 뜨끈하게 찜질해주는 것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편백나무 조각이 담긴, 천으로 된 안대 모양 찜질팩을 사서 전자렌지에 30초 돌려 잘 때마다 눈에 덮고 잔다. 평소엔 잠들기 직전까지 핸드폰을 뒤적거리는데, 이 안대를 쓴 이후에는 그럴 수 없어서 오히려 좋다. 자연스레 내 ‘가을것’의 자리를 꿰찬 찜질 안대 되시겠다.


가을것을 찾으며 가을을 음미하고 나니, 가을이 조금 더 내 곁에 머문 느낌이다. 그렇게 가을것들과 함께 가을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느즈러질 타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