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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Apr 20. 2021

[생각 13] 이것은 어떻게 써야 하는 물건인고?

나는 항상 현대문명 만만세를 외치며 다니는 사람이다. 요즘 세상은 집에 도착하기 전, 미리 집안 전등을 켜거나 로봇청소기를 돌릴 수 있다. 또 핸드폰 하나만 들고 다니면 카드지갑을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고, 이제는 신분증까지 대체하고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하지만 편한 세상은 나만 편한 세상일인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문명을 누리다 멈칫하게 되는 순간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어른들이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실 때



기기 사용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흔하게 패스트푸드점에 있는 키오스크만 봐도 훨씬 편리하다고 느끼지만, 젊은 세대인데도 기기 사용 자체가 어렵다고 느끼거나, 특히 어르신들일 경우 기기는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일 수 있다. 어디를 눌러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휙휙 화면은 잘도 바뀌고, 그림과 함께 쓰인 글자라고 해도 눈이 침침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설상가상 내 뒤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으면 느긋하게 키오스크 화면 전체를 구경하며 두드릴 여유가 없다.



50이 훌쩍 넘어버린 부모님과 함께 외출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최근 10년 안에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했다. 주문할 때에 사람보다 기기를 보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부모님이 주문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는 아예 기기가 있든 없든 내가 주문을 도맡아 하는 상황인데, 가끔 부모님이 나 없이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커피숍에 간다고 하면 내가 먼저 초조해진다. 이렇게 말하면 버릇없을 수도 있는데 솔직하게 내 심정은 딱 물가에 애 내놓은 기분이다. 



'도착하셔서 주문은 잘하셨을까?'

'주문받는 사람 없이 키오스크만 있으면 어떻게 하지?' 

'지금 점심시간이라 사람들 줄 많이 서 있으면 더 긴장하실 거 같은데.'



한국 사람은 먹는 일에 굉장히 예민하고, 나는 본투비 한국 사람이다. 부모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이나 간식을 고작 기기 하나 때문에 못 먹는다니. 자식으로서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결국 다리만 덜덜 떨다가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확인 전화를 하게 된다. 주문은 잘하셨는지 혹은 주문받는 사람이 있었는지. 주문을 무사히 했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 이 오묘한 심정은 뭘까.



한 번은 엄마가 나와 전화를 하시던 중에 목이 말라서 들어간 카페가 아예 무인시스템으로만 주문을 받는 카페인 적이 있었다. 피크타임이 아니어서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직원은 자리를 비웠는지 아니면 쉬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철저한 내 기준이지만 우리 엄마는 평소에 인터넷 배송이나 해외직구도 한 번 알려드리면 척척 해내시는 분이라, 키오스크도 한 번 알려드리면 많이 헤매지 않으실 줄 알았다. 하지만 작은 핸드폰 화면과 달리 화면 전체를 터치하며 카드 결제까지 해야 하니 가끔 헤매시는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뒤에 사람이 많이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긴장해서 주문을 실수하면 다시 시키기 미안해하셨다. 



특히 다양한 결제 선택 방식에서 모르는 말이 많아 어려워하셨고, 결국 그날도 나와 전화를 하며 간신히 카페라떼 한 잔을 시키셨다. (페이에 익숙하지 않은 어른들이 페이코, SSG페이, 차이 결제 등등을 어떻게 속속들이 다 아시겠는가.) 아마 7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영어로 쓰인 ICE / HOT부터, 그림이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메뉴의 향연에 더 힘들어하실 가능성이 크다. 아마 이 격차는 내가 편리할수록 조금씩 더 커지겠지.



이미 지나간 기억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오늘 엄마의 핸드폰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 드렸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하나 만드는데 물어보는 정보와 조회는 뭐가 그리도 많고 체크해야 하는 항목들은 뭐가 그리 많은지. 내가 한참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카드 신청을 해 드리니 답변만 하시던 엄마가 한 말씀을 보태셨다.



"아유. 카드도 비대면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해서 좋았는데 그렇게 좋지도 않네."


"왜. 이렇게 집에 앉아서 몇 번 누르면 카드가 집으로 쏙 오는데."


"그거야 너희 세대나 그러지. 이렇게 눌러야 할 게 많은데 네가 그렇게 몇 분 걸릴 일이면 엄마, 아빠는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가슴 어딘가가 찡하며 먹먹했다. 나에게 항상 아빠는 슈퍼맨이고 엄마는 원더우먼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더 돌봐드려야 할 일이 많아진다. 어느새 작아진 어깨와 듬직하게 큰 내 어깨를 보며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기도 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큰 게 아닌, 꼭 부모님 자체를 영양분 삼아 자란 느낌이라 조금은 싫은 기분도 들었다. 내게는 참으로 편리한 이 세상이 부모님의 불편함과 초조함을 갉아먹으며 자라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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