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cere Baek Jun 02. 2022

호들갑이 만드는 특별함

“선생님, 선생님!! 백방울 새싹이 올라왔어요오!!”

교실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큰 소리에는 자동반사적으로 두번째 손가락을 마스크에 갖다댄다.

“목소리 단계 낮추자.”

내 주의에 눈치 보며 흠칫 하면서도 손가락으로 지난 주에 심은 우리반 방울토마토, 백방울이 심겨있는 화분을 힘껏 가리킨다. 난 그제서야 그 큰 목소리로 무슨 얘길한 건지 되짚는다.

“근데 새싹이 벌써 올라왔어?”



아침부터 아이들이 큰소리로 내게 말하러 달려오는 것은 대게 이런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대박이에요! 오늘 아침에 학교 오다가 우리반 남자애들 6명이 만나서 다같이 왔어요!”


대박일 일이 참 많다.


어느 날은 학습지를 나눠주다 “위아래로 ~” 라는 나의 한 마디에  “위아래 위위아래~ ” 갑자기 떼창을 부르기 시작한다. 이것들,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뭔가로 만드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치며 이들을 쳐다보다 함께 피식 웃어버렸다. 가만 보니, 호들갑은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순간에 우릴 잠시 멈추게 한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란 말이 있더랬다. 음미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 또는 개념의 속 내용을 새겨서 느끼거나 생각하단다는 뜻이다. 그렇게 마음에 뭔가 새기고 느끼려면 ‘여유’가 있어야한다. 별 것도 아닌 것들 앞에서 호들갑이 많은 이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참 건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시들시들하지 않고 여유와 생기가 넘치는 이 존재들과 매일 마주한단 게 새삼 좋았다.


나도 평생 이들처럼 호들갑 떨면서 살고싶다. 더이상 10대 때처럼 온 몸으로 방방거리진 않지만, 호들갑을 잃어버리고 싶진 않다.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일에 그리 크게 반응하지 않는 순간이 많아진다. 나이 먹으며 자연스레 점잖아지다보니 그럴까? 생각했다. 그런데 호들갑은 크게 소리 치거나 방방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그 순간을 진짜 여유롭게 느낄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생기이다. 우리가 호들갑을 잃어가고 있다면 여유와 생기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잃어가기 때문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직업 특성상 그리고 개인 성향 상 리액션이 꽤나 많은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방울토마토 났다고 소리치는 것에 바로 조용히부터 시키는 것 보면 나도 여유가 참 없나보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눈 크게 뜨고 리액션과 함께 음식을 먹고 좋은 날씨 앞에서 와 대박!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여유는 나이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죽 넘쳐나면 좋겠다.


작고 사소한 것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건 그 순간을 아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삶을 이런 잔잔한 호들갑으로 채우면, 순간들이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 그만큼 즐거움과 행복을 더 발견할 수 있다면 바쁘게 앞만 보고 가기보다 여유를 장착하고 호들갑 떨 구실이 있는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살겠다.



이전 10화 1초. 선택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