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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Mar 05. 2019

뜻밖의 승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나 승진하였다.

수습 기간 동안 승진이 가능할까? 심지어 아무런 일도 안 했고 나의 존재와 일 했다는 사실이 그 어떤 문서의 형태로 전달된 바가 없음에도?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한 달이 넘게 유배지 같은 곳에서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던 내게 드디어 자리를 이동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드디어 일을 해보는구나. 이동한 곳은 항상 풀린 눈으로 날 보면서 끝까지 자기 팀 아니라고 부정하던 그 팀장의 팀이었다. 맞잖아!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하고 어금니에 힘줘 물어가며 반갑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받아주지도 않았던 건 덤이지만.


그런데 문득 조직도는 바뀌었을까 싶어서 사내 그룹웨어에 접속해서 보니 이상한 팀으로 바뀌어서 배정되어있었다. 이건 무슨 참신한 짓인가 싶어 경영지원팀에 물어보니 내 소속에 대한 의견이 하도 분분하고 말하는 사람마다 달라서 배치가 계속 바뀌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지막으로 들은 팀에 배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그게 맞다고 끝까지 우길 거라고 했다.


마른세수.


이 사람아... 나는 그럼 어떡하라고... 무슨 일처리가 이따위.... 그래도 정말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을 인자 수십 번 마음속에 새겨가며 어차피 언젠가는 바뀌겠지. 내 할 일이나 제대로 하자 하는 마인드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놈의 유배지에서 벗어나 드디어 회사 사람들과 가까이 앉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문제는 팀장이 팀을 방치하고 있었고 이 팀의 정체성과 업무는 하늘 높이 저 멀리 우주 레벨에 있었다는 게 문제였지. 그 누구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으며, 무슨 일을 어떻게 왜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알려하지 않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무슨 이벤트 기획 전문 팀인 것 같았는데 그냥 뭔가 하라고 하면 뭔가 했고 뭔가 덜어내라 하면 뭔가 덜어냈다.


심지어 6명 있는 팀 안에 영상 제작자도 있고 그냥 광고 기획자도 있고 작가도 있고 A형님도 있고... 말 그대로 이 팀은 대체 무엇을 하는 팀인가 하는 질문에 그 누구도 시원하게 정의 내려주지 못하는, 정말 참신한 팀이었다. 이 것이 혁신인가. 대체 이 회사는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하며 몇 주를 허비하던 나에게 이상한 공지가 떨어졌다. 그래 승진.


신박했다.


승진? 우리 회사는 직급 체계가 나름 수평적이었는데 대표이사, 이사, 팀장, 팀원 이렇게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직급을 세분화하겠다며 선임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선임의 기준은 경력 4년 차 이상이었다.


나는 애초에 경력을 2년밖에 안 쳐줬고 직급이 올라봐야 뭐 그게 그거겠거니 하고 그냥 평사원으로 다니려고 했는데 덜컥 선임으로 진급을 시켜버린 것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알아보니 형평성을 위해 이력서에 있는 경력을 모두 허용해주기로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태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승진이 말이 되나. 그렇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수습인데.


이게 지금 잘 돌아가는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팀은 팀장 빼고 여섯, 그중에 네 명이 선임인 걸 발견했다.


아 잘 안 돌아가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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