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쟁이도 괜찮아.

해 아래 새로운 것을 찾을 수는 없을 테니

by 꿈쟁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누구나 익히 들어 아는 말. 요즘은 이 말이 다소 불편하게 들린다. 다른 이의 피땀 어린 결과물을 훔쳐서 실익을 편취하는 이들의 변명 나부랭이 정도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 고민했었다. 고민 고민 끝에 뭔가를 찾아냈다면 "유레카"를 외칠 일이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개뿔... 뭘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다이아몬드 원석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그게 돌덩이인지 보석인지조차 구별 못할 판인데. 다시 말해서 창조니 모방이니 하는 것도 먼지 한 톨만 한 뭔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맹이에게 물어도 "저도 그 화가 알아요."라고 말하는 고흐나 피카소 역시 처음부터 자신의 화풍을 창조해 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처음엔 누군가를 따라 했다. 대놓고 베꼈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따라 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가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미술을 보고 감동해서 화실로 돌아와 그걸 그려냈다는 것이다. 만약 피카소가 그건 표절이야 하면서 꺼려했더라면 우리는 그 작품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인류는 태고적부터 끊임없이 모방해왔다. 실용적인 부분에서부터 장식적인 부분까지 스스로 만들어낸 줄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연속된 모방의 결과물이다. 이를테면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로 덮인 동물들의 털가죽을 벗겨 털옷이란 걸 만들어 입고, 자연의 색을 흠모하여 그 색을 훔치려 집착하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꽃이나 곤충, 새 들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저런 빛깔을, 어떻게 저런 무늬를... 인간에겐 없는 색이고 무늬였으리라. 인류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흉내 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인간만의 전형적인 행동은 아닌 것 같다. 곤충이나 식물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종족번식을 위해 서로 모방했다. 보호색을 띠기도 하고, 먹잇감을 유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짝짓기에 있어 보다 유리하도록 하는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모방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모방을 하면서 배우기로 했다.
그들은 고맙게도 캄캄한 내 앞의 등불이 될 것이다.

갈릴레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뉴턴처럼
나 역시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왼쪽 그림은 오른쪽 그림책의 한 페이지를 색연필로 따라 그린 그림이다.

내 아이에게 종종 읽어주었던 "질 바클렘"의 "찔레꽃 울타리"시리즈는 오히려 내게 행복이었다. 물론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 한참 동안 "사과 할머니가 그랬어."라는 말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시끌시끌한 들쥐들의 분주함이 바로 곁에서 일어나는 양 참견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들이 갓 구워 놓은 빵이며 케이크며 집안 곳곳 겨울을 대비해서 저장해 둔 먹거리들을 보라. 잘 익은 베리들은 정말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정말이지 산속 어딘가에 이런 들쥐 마을이 있을 것만 같다. 질 바클렘은 한 권의 그림책을 위해 2년여의 시간을 들인다 했다. 충분히 연구하고 관찰하고 섬세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 덕에 종이 위의 그림임에도 시끌벅적한 소란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가 보다. 나는 그중 파티를 준비하는 장면을 그렸다. A4보다 조금 더 큰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면서 내내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오디오가 자동 재생되는 시끌시끌한 그림을 그려야지. 그리고, 행복했다. 비록 따라 그리는 그림이었지만 충분히 행복했다. 작가는 얼마나 신났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왼쪽은 색연필로 그렸고, 오른쪽은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터로 그렸다. 둘 다 "찔레꽃 울타리"의 한 장면이다.

어떤 작품을 따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모사를 하겠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에 대해 공부하고 그가 어떤 태도를 갖었으며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그리고 그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과제도 분명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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