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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26. 2024

전공불문

먹고살 걱정

"난 외교학과, 아니면 심리학과."

주말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초등학생 딸이 대학 전공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이과 남편은 공대 쪽이 좋지 않아? 했고, 문과 엄마는 야호! 를 외쳤다. 독보적 기술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듣기 좋게 말하는 남편의 말에 돈냄새가 났다. 수학 싫어! 를 외치는 딸에게 아빠의 바람은 그저 마이동풍이다. 수학 포기는 대학 포기야 안돼! 아빠의 말에 딸은 입을 삐죽이지만 사이로 말은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


시간은 나의 대입 시절로 돌아간다. 그 시절 특별한 재능도 관심사도 없던 나는 많은 것을 단순한 이유로 결정해버리곤 했다. 고등학교부터 선택과목에 추가된 제2외국어는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로망으로 불어를 선택했고, 발음이 듣기 좋다는 이유로 대학에도 불문과에 진학했다. 그 당시 대학은 인생의 간판 같은 것이어서 전공보다는 대학졸업증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대학은 나와야지! 하는 기성세대의 의견은 거름망없이 의심 없이 나에게 흡수되었다. 어문계열의 여초현상은 함께 스터디하고 떡볶이 사 먹는 여고의 연장선이 되었고, 젊은 대학 시절은 봄처럼 야속하게 흘렀다.


어느 곳에 있든, 어느 집단이든, 엄숙하고 진지함 속에 무식함을 동반한 톡톡 튀는 유머를 가진이들이 있다. 맨 처음 불문과에 원서를 넣었을 때 그건 무슨 전공이냐고 묻던 아빠의 먼 친척분, 그리고 불교 학과인가 보다며 옆에서 곁드는 다른 아저씨에 먹던 밥이 튀어나왔다. 입학 후에 오랜만에 만난 오랜 친구는 너 불문과야? 프랑스어과 아니었어? 하니 참 난감하다. 그런데 난 이런 이들이 참 좋다. 잰 체하지 않고 드러내는 이들의 백지 같은 무지함 속에 내 안의 허영이 반사되어 제로썸이 된다.

과친구와 함께 들른 취업정보실에서 난 또 한 번 오랜만의 기분을 느껴버렸다. 게시판의 형형색색의 광고지가 기업에게는 구인광고, 학생들에게는 취업정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쉴 새 없이 찾고 있었다. 거의 모든 기업의 구인광고 지원자격란에 공통적으로 적힌 문구가 있었으니, 그것은 '전공불문'.

"왜 이렇게 우리 과만 뽑지?" 하던 친구의 순수한 얼굴을 떠올리면 여전히 나는 즐겁다. 이런 친구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기억만으로도 메마른 일상에 건강한 올리브유를 덧발라 윤기를 낸다. 기억 속에서 흩어진 인연들이 이참에 한데 모인다.


어느 학부모의 강력 추천으로 올초에 M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3부작 '교실이데아'를 보았다. 1994년에 도입되어 30년간 이어져 온 수학능력시험을 낱낱이 파헤치며,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능 시험 문제의 난이도와 평가의 적합성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나라의 각 과목 분야 최고의 석학에게 해당 과목 시험을 직접 치르게 한 부분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영어 문제는 옥스퍼드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영어 원어민 학생들이 담당했다. 앞뒤 문맥 없이 주어진 문구를 바탕으로 정해진 답을 찾아가게 하는 창의성 제로의 언어영역 문제들에 수험자들혀를 내둘렀다. 나의 의견을 쓸 수 있는 문제가 한 문제도 없을 뿐더러, 불필요하게 꼬아놓은 의도로 출제자와 수험자의 기싸움이 평가의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수학 분야의 전문가도 수학 만점을 받기 어려웠다. 기계적인 문제풀이가 수학의 전부인 것마냥 인식되어 수많은 수포자를 만든 현실이 안타깝다는 의견이 있었다. 영어는 옥스퍼드 재학생들마저 만점을 받지 못했고 수험자의 평균 성적은 2등급 정도로, 그들의 영어 실력이 시험 성적과 큰 관련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취득한 성적이 한국의 1등급 학생의 미숙한 영어 구사 능력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었다.


불문과 재학시절, 프랑스의 선진 문화와 톨레랑스를 배우고, 원어민 교사의 인격과 태도에서 프랑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 당시 들었던 그들의 입시는 우리가 거쳐온 한국 수능과 확연히 달랐는데 그것의 형태가 현재 한국에도 도입하기 시작한 IB의 형태였다. 나의 의견을 타진하고 근거를 수집하는 과정 안에서 인간은 고민하고 배운다. 책상 위의 엉덩이 씨름으로 굳어진 한국의 주입식, 암기식 공부는 이제 AI가 대체하고 있다. 전 세계 평화가 한반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세계 유일 분단 국가의 학생으로서 생각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은 생활 전반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지극히 필수적이다. '전공불문'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인재를 찾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관심 있는지 고민해서 찾아야 한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만 하며 진짜 공부는 사회에 나와서 다시 하는 불상사가 시간낭비로 후대에 이어지기 전에 방법을 모색하는 선구자들의 행보가 반갑다.


나는 2학년까지 불문과를 전공하다 3학년에는 전공을 경상계열로 바꿨다. 선진 문화와 예술과 문학에 심취했던 2년간의 시간은 취업문이 가까워지며 돈이 되는 전공과 무관해 보였다. 그 시기는 인문계열의 쇠퇴기와도 맞물렸다. 가난한 고향 땅을 뒤로하고 떠난 그 시절의 기억은 죄책감이 되어 자주 옛날을 향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람을 바라보고 연구하고 인간이 만사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날로 뒷방 늙은이취급 되는 그간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인격이 바로 서지 않은 모범생들이 만들어낸 대학 내 문제를 접하며 인문학의 구멍을 절실히 느꼈다. 다행히 세상은 다시 인문학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오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고 했다. 새롭게 도입되는 교육의 새 걸음이 어려운 걸음이었던 만큼 한국의 교육이라는 열차의 머리가 탈선 없이 제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본다.  




* IB 커리큘럼: 주입식이 아닌 생각을 꺼내는 교육. 국제 바칼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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