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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Oct 20. 2024

스포트라이트

의미 찾기

슈퍼문 소식이 있었다. 달밤의 산책을 기약하며 양손에 가득한 일거리에 다시 집중한다. 사다 놓고 좀 지난 열무김치가 그간 냉장고 안에서 시큼하게 익었다. 밥통에는 밥의 일생을 나타내는 숫자가 또렷했다. 태어난 지 31시간이 된 잡곡밥을 주걱으로 욕심껏 떠서 대접 가장자리에 긁는다. 열무김치를 크게 한 젓가락 얹고 계란 두 개를 노른자 살려 스텐 프라이팬에 슬쩍 부쳐 밥 위에 올린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토핑을 추가하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흔적 없이 비벼준다.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요지부동인데, 입은 둥지에 앉은 아기 새 주둥이처럼 숟가락 속도보다 반박자 조급하다. 저작운동 속도가 두뇌회전 속도보다 빨라 화면에 글자는 몇 자 없는데 밥그릇은 이미 반짝반짝하다. 밥그릇만큼 넓어진 책상을 다시 정리하고 앉다가 엉덩이도 쉬어줄 겸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밤이 와서 산책길에 가로등이 환하다. 구부정한 허리도 펴보고 팔을 뒤로 뻗어 양쪽 어깨도 활짝 늘려본다. 관절 곳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따라온다. 무심코 발견한 달. 그제야 오늘 슈퍼문! 하고 달을 다시 보며 크기를 가늠한다. 

기역(ㄱ)과 니은(ㄴ) 모양의 아파트 건물. 

올려다본 하늘에 1,2동의 기역(ㄱ)과 3,4동의 니은(ㄴ)이 만나 사각형의 각을 만들었다. 사각 액자 안에는 달이 사진처럼 걸렸다. 거대한 선명함에 압도된 내 얼굴이 잠시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 밝아진다. 머리 위로 쏟아진 달빛에 얼굴이 따스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선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트루먼 쇼 짐 캐리


짐 캐리 열연의 트루먼 쇼를 다시 보았다. 세트장에서 일생을 진실처럼 사는 그의 삶에 대한 시청자의 연민처럼 밤해변의 트루먼은 자기 머리 위에만 내리는 ‘스포트 레인’을 만난다. 한두 걸음 옆으로 가면 비를 피할 수 있지만, 비가 트루먼을 쫓아다니며 뿌리는 통에 그는 비를 결코 피할 수 없다. 


비가 나만 쫓아다닌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간 쌓아 온 것들이 온통 쓸데없는 것들로 변했다는 허무함, 남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억울함,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좌절감. 이런 감정들에 이끌려 그 불필요한 무게를 등에 지고 지내온 날들로 인생을 열심히 채웠던 시절이 있었다. 비는 잠시 왔다갈 뿐 빛은 그 뒤에서 영원히 비추고 있다는 사실은 내면의 우둔함에 가려 알아챌 수 없었다.


비는 때론 모양을 바꾸어 폭풍우가 되어 내리기도 한다. 어떻게 그것을 뚫고 이뤄냈는지, 혹은 어떻게 용케 살아났는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의 사나운 폭풍우도 있다. 때문에 어떤 날은 폭풍우가 정말로 지나간 건지 믿기가 어렵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한 가지 있다

폭풍우에서 헤어 나온 당신은 폭풍우를 만나던 그 당시의 당신과는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된다. 아니, 같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드시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것이 당신에게 다가온 폭풍우의 의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밤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밤을 통해서 새벽의 빛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홍수를 주신 것이 아니라, 홍수로 인해 아름다운 무지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하여 아름다워지는 생명을 주신 것이다.

<메멘토 모리, 이어령>


뜻밖의 질병을 진단받은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의심 소견이 있어 조직 검사를 했고, 12월 24일에 결과나 나온다고 하기에 그날로 예약을 잡았다. 22일부터 걸려온 병원의 전화에 의아했다. 예약날짜도 안 됐는데 왜 전화까지 하며 재촉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고집스럽게 예약날짜에 맞춰 병원에 갔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지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23일 저녁, 삼겹살과 맥주를 신나게 먹은 다음 날이었다. 


큰 병일수록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메시지에 해당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삶은 계속된다. 건강이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을 생의 선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동의보감>


12월 25일, 운동을 시작했다. 그간 멀리해 온 운동을 재빨리 끌어다 루틴으로 끼워 넣어야 했다. 한겨울에도 땀이 비 오듯 떨어졌고 파카를 허리춤에 묶은 채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지금은 오히려 이 루틴이 지켜지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운동 강박으로부터 오는 불안이 아닌 신체의 에너지 고갈로부터 오는 불안이다. 운동은 하면 할수록 기운을 솟게 한다. 종종 일어나던 불안이란 감정도 운동 안에서 꼼짝하지 못 한다. 


좋은 습관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힘겹지 않다. 이른 기상이 가져다주는 하루의 충만함과 산책이 불러오는 영혼의 포만감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루틴의 사소한 변화가 줄줄이 사탕으로 끌고 오는 다른 작은 변화들에 집중했다. 코어를 단련하면 배의 힘으로 다리를 들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좋은 습관을 훈련시키면 이 습관으로 저 습관을 들 수 있다. 내 습관으로 내 습관을 지킬 수 있다. 

새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징벌이라 여겼던 질병의 기억은 내 머리 위에 은총으로 쏟아진 하늘의 선물이 되었다. 


무수한 감정이 다가올 때마다 내게 이 감정과 의미가 이로운지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내 안에 두 마리의 늑대를 키운다. 

하나는 이로운 늑대, 하나는 그 반대의 늑대. 어느 쪽이 이기냐고? 

내가 밥 주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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