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좋아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
거꾸로 남의 이야기 듣는 건 힘들어.
내 이야기를 안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정말 고수야.
연애할 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내가 한마디 하면 백 마디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을 때
그럴 때 꾹 참고 들어주지.
그래서 책이나 강연 주제가 온통 ‘경청’ 아닐까?
그만큼 공감하며 들어주는 게 어렵다는 얘기지.
손자 손녀 자랑하려면 돈을 먼저 내고 한다잖아.
요즘은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자랑할 때도 그렇대.
내 아이가 개와 고양이인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봐.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어찌나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지 몰라.
공부 시간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선생님 얘기를 잘 들어서 어쩐 일인가 했더니
자기 얘기를 할 '순간'을 기다리려고 그런 거야.
아니 끊어먹다 먹다, 선생님 말도 끊어먹는다니까!
선생님은 이만큼 공부하려 했는데
아이들이 치고 들어오고, 끊고 들어오고 정신이 없어.
그날은 아주 이상한 날이었어.
아이들의 기운이 퐁퐁 솟아나는 날, 보통 선생님이 아플 때 그래.
표 안 내고 평소랑 똑같이 해도 아이들은 어쩌면 귀신같이 잘 아는지.
선생님은 책 속 주인공이 본 일이 뭔지를 물었어.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대답했어.
어제 우리 동네에 불이 났어요.
‘응? 자기가 주인공도 아닌데?’
뜬금없는 말에 선생님은 멍하고 있는데
번개같이 받아치는 목소리. 맞아 나도 봤어.
다른 아이가 덧붙였어. 구급차도 왔는데.
구급차는 왜 왔어?
다친 사람이 있어서 구급차가 왔나 봐
그럼, 큰 불이었어?
소방차가 왔는데 물은 뿌리진 않았어.
그럼 작은 불이네.
금방 안 껐으면 큰 불일 수도 있어.
자기들끼리 큰 불인 지 작은 불인 지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구급차에 실려 간 할머니 얘기로 넘어갔어.
그러더니 할머니 손자가 아는 애다, 병원 가는 건 무서운데, 그중 주사 맞는 건 더 무서워.
그러다 너, 입원해 본 적 있어? 나? 나는 해 본 적 있어. 언제? 아기 때? 아니, 태어날 때!
아이들의 말 잔치였어.
처음에는 동네에 불 난 이야기였는데 끝날 즈음에는 병원에 입원한 경험을 자랑했어.
선생님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이들 말하는 걸 듣다가
언제 끊어야 하나 하는데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어.
그날 국어 수업은 그게 끝이었어.
선생님은 이번 시간에 못 한 공부를 언제 하나 고민하는데
한 아이의 쨍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어.
“오늘 수업 정말 재미있었어!”
“아, 진짜. 벌써 끝났네.”
그게 끝이 아니야.
선생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또 다른 아이의 목소리
아, 선생님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어.
선생님만 이러는 게 아니야.
아주아주 유명한 시인도 그랬더라고.
위대한 일본 시인 바쇼와 여우 이야기야.
옛날 옛날 일본에 바쇼라는 위대한 시인이 살고 있었어.
자기 먹을 것을 먹고,
자기 잘 만큼 자고,
자기 사는 대로 살면서,
자기 시를 썼대. 신선처럼 말이야.
바쇼의 오두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가에
벚나무가 한그루 있었어.
바쇼는 늦여름의 달콤한 버찌를 아주 좋아했어.
버찌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갔다가
하얀 주둥이가 빨갛게 버찌 물이 든 여우를 만났어.
"이봐, 여우 친구! 버찌를 그냥 둬! 저리 가!"
바쇼가 소리를 질렀어.
"자네가 시인이라고 이 맛있는 버찌를 혼자 다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여우는 도도하게 말했어.
여우는 자기들이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난 시인이고
사실 훌륭한 시는 인간들이 잠들었을 때 자기들이 귓가에 속삭여 준 거라고 했어.
여우는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버찌를 먹을 거라며 당당하게 말했어.
다음 해 봄, 벚꽃이 눈부시게 피었을 때
바쇼는 여우를 다시 만났어.
여우가 바쇼에게 말했어.
"우리에게 멋진 시를 한 수 써 줘. 괜찮은 시 한 수면돼.
그럼 이 벚나무의 버찌를 다 가져가도 좋아.
기회는 세 번 주겠네. "
바쇼는 식은 죽 먹기라며 미소를 지었어.
한 달 내내 바쇼는 여우가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를 찾으려고 애썼어.
달이 둥글게 차오른 밤, 바쇼는 벚나무로 갔어.
기다리던 여우에게 인사를 하고 시를 읊었어.
"이보게, 친구.
자네는 시인이라고 하기엔 아직 한참 멀었네!
내달 보름에 만나지."
여우가 사라지고 바쇼는 우두커니 서 있었어.
'이렇게 훌륭한 시도 신통치 않다는 거야?'
바쇼는 목에 무언가 걸려있는 듯했어.
바쇼는 한 달 동안 열심히 시를 썼어.
쓰고, 고치고, 바꾸고, 더하고, 빼고.
달이 다시 둥글게 차오른 밤, 바쇼는 벚나무로 갔어.
"조금 낫군.
하지만 그 정도는 새끼 여우들도 할 수 있어.
이제 남은 기회는 딱 한 번뿐이네."
그 뒤 한 달 동안 바쇼는 수많은 시를 쓰고,
더 이상 손볼 때가 없을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었어.
그러나 마음에 드는 시가 하나도 없었어.
마침내 보름날이 되었어.
바쇼는 시 한 편 들지 않고 벚나무로 향했어.
'어쩌면 가는 동안 좋은 시를 지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는 마음먹은 대로 나와 주지 않았어.
여우는 먼저 와 있었어.
불그스레한 털이 달빛에 희미하게 빛났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여우가 따분하다는 듯 말했어.
바쇼는 정신없이 생각했어.
여우를 쳐다보고, 커다랗고 하얀 달을 올려다보았어.
갑자기 머릿속에서, 마치 물이 흐르듯, 시 한 수가 흘러나왔어.
여우가 벌떡 일어났어.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완벽한 시를 쓰실 줄은 …….
이제부터 이 버찌는 영원히 선생님 것입니다!
제발 그 시를 한 번만 더 읊어 주세요!"
바쇼는 어리둥절했지만 시를 한번 더 읊었어.
"이 시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거야?"
바쇼의 질문에 여우가 소리쳤어.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어요?
하하하.
어르신들도
젊은이도
아이들도
아니 여우까지도
자기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야.
자, 오늘은 내 이야기를 좀 줄이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어떨까?
뭐, 돈을 내고라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없고!!
*바쇼- 일본의 위대한 시인. 1600년대 살면서 아름다운 하이쿠를 많이 남겼습니다.
*두 번째 시- '연못'은 하이쿠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시입니다.
*하이쿠- 열일곱 음절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