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리 은행나무
해 마지막 날 문득 반계리에 살고 있는 그가 떠올랐다.
가을이 마지막 불꽃을 사르던 날 그가 살고 있는 언덕은
굶주린 짐승의 뼈 같은 손으로 하늘을 움켜쥔 채
마른눈을 감고 죽은 듯 표정을 잃어버렸다.
새벽 어스름 속 그는 외로운 섬 하나로
미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떨고 있었다.
천 번쯤 이별하면 지을 수 있는 표정으로
차가운 밤하늘을 가르는 流星雨처럼 냉혹하게
뚝~뚝~ 노랗게 이별을 떨구어내고 있었다.
숲에 잠들었던 우수(憂愁)에 찬 바람은 떠오르는 태양을 피해
아랫마을로 내 달리며 그의 이별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침 첫 햇살의 순결한 호흡에 잠들었던 새들이 깨어나며
무겁게 침묵하던 마을의 평화는 저 멀리 강둑 너머로 사라졌다.
수많은 눈동자와 굴절랜즈들의 번쩍이는 압박에
그 무책임한 환호와 이기적인 추억의 요구 앞에
천년을 살아낸 그는 기꺼이 찬란한 순진함으로 무릎을 꿇고 광대가 되었다.
그가 다시 보고 싶었다.
그 가을, 사진 한 장 찍고 매정하게 돌아섰던 게 미안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외딴섬처럼 외로운 시간을
그 고독한 공간 안에 함께 머물고 싶었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무거운 잠에 빠져있는 언덕.
작은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초라한 모습으로
해석되지 못한 고대 문자처럼 그곳에 그는 서 있었다.
떨굴 잎 하나 없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차가운 외면과 그 적막한 고요에 소리 없이 떨고 있었다.
그가 외로움 속에 슬퍼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별은 적응되지 않는 반복되는 고통인 것을
마른 가지마다 그리움을 매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걸까!
백 년도 살아내기 힘들지만
천 년을 살아낸 친구 하나는 있어야 한다.
새 해는 그와 자주 만나야겠다.
움이 트고 찢긴 자리가 다시 아무는 모든 계절을
그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이
그 섬과 이 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