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4
의자가 슬프다,라고 말하면
가장 슬픈 의자,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창문 너머 나무의자 몇몇이 재잘거리고 있는
폐교, 교정 단상 옆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들
교장 선생님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 싶다
네 다리로 버틴 수십 년의 시간은 이미
종례도 안했는데 교문 밖으로 빠져나갔고
남은 의자들, 오와 열이 흩어진 채 서성거리고 있다
어디고 눈에 띄는 무언가 있듯
다리 하나 부러진 의자, 구석에서 벌을 서고
시간이 덧칠해 놓은 한 시절에 깁스를 한
한 남자가 깨금발로 서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어떤 의자의 이름은 지금쯤 머리카락 허옇게 셌을 테고
어떤 이름은 종례도 안했는데 벌써 삶의 밖으로 나갔다
네 다리 온전한 의자들은 어쨌든 제 시간을 삭이고 있어도
다리 부러진 의자는 기운 몸조차 바로세우지 못하고 있다
슬픔이란 말이
시에서는 상투적이라 젖혀두기 십상이지만
아무러면 어떠냐 어쨌든 의자는 슬픔이다
사실 삼각형이 가장 안정적 구도라는데
다리 꺾인 의자는 세 다리여서 더 슬프니
값싼 감정의 과잉이라 해도
시선이 가는 것마저 과잉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자를 보는 일은 때로 슬픔을 보는 일이다,라고 우기며
남자가 창을 닦는다
아무리 닦아도 뿌옇기만 한 유리창을 여과지로 삼아
시선을 보낸다
의자들이 오와 열을 맞추느라 부산스러운 오후
다리 부러진 의자가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