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수목원 길이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는 우리는 가을이 가기 전에 서둘러 가보기로 했다. 집돌이인 옆지기와는 다르게 집밖순이인 나는 옆지기에게 어서 가자고 '출발!'을 외쳐댔다.
저번에 대공원을 왔을 때 주차장이 카카오 주차장으로 바뀌었길래 차량 등록까지 마쳐놓았다.
"내가 이거 다 등록도 해 놨다. 잘했지? 새로운 건 얼른 해봐야 돼. ㅎㅎㅎ"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
"이거 앱에 들어가서 이케이케 하면 돼. 근데 나도 잘 되는지는 몰라. 주차장에서 나올 때 보면 알겠지 뭐."
"너 제대로 한 거지?"
"그럴걸. 안되면 그냥 하지 뭐."
"저쪽 빠른 길로 올라가자. 이쪽으로. "
"어느 쪽으로 가지?"
"이쪽으로 가보자.
어, 근데 너 운동화 신었잖아. 이번에는 짧은 길로 가고 다음에 저 쪽으로 가보자."
"아... 그냥 등산화 신고 올 걸. 산림욕장 왜 안돼? 산림욕장 길이 동물원 둘레길이랑 중간중간 길이 이어져있어서 괜찮을 거 같은데."
"저기 산 길이야. 봐봐. 계단 올라가잖아. 그리고 위에 길이 어떤지도 모르잖아. "
"그런가... 등산화만 신고 왔으면 가보는 건데."
산림욕장 길이 궁금해서 아쉬웠지만 운동화를 신고 오는 바람에 -망설이고 있을 때 평평한 길이라고 운동화를 신으라고 한 거 누구지!- 대공원 둘레길을 걸었다.
"아, 생각난다. 여기 어렸을 때 왔었는데 원래 대공원이랑 이어져 있었어. 지금은 분리해 놓은 거 같아. 진짜 힘들었는데. 지방에서 친척들만 오면 대공원을 왔었어.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소풍으로 맨날 오고 어린이날도 오고 자주 와서 새롭지는 않고 힘들었던 기억만 나.
여기 우리도 연애할 때 왔었잖아. 당신이 코끼리랑 기린 보고 싶다고 해서. 그때 나는 코끼리랑 기린이 누군가는 보고 싶어 하는 동물인 줄 몰랐다. 매 번 소풍을 여기로 오니 그냥 지겨웠거든. 근데 아이 낳고 애가 동물을 좋아하니까 여길 또 자주 왔다. 넓은 길을 걷는 게 좋았던 거 같아. 힐링도 되고. 음... 이런 숲 냄새 너무 좋아.
"이런 잿빛 날씨 너무 좋아. 뭔가 회색빛 나는. 서울에서 빌딩이 가득한 도심지를 이런 날 걸으면 흐린 회색빛이 가득한 이런 날 되게 좋다!"
"..."
옆지기는 계속 걸었다. 나는 사진 찍느라 늦게 쫓아갔다.
"아... 해가 나오네. 안되는데. 저거 봐.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거려. 잠깐 멈춰서 소리를 들어봐. 가을바람 소리. 딱 가을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야.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사각사각 파도 소리 같은 걸 내. 난 이 소리가 너무 좋아. 낙엽이 바람에 뒹구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가을에만 들을 수 있어. 들어봐 봐. "
"..."
"낙엽 사이사이 초록빛 너무 이쁘다...그치?"
"..."
말수가 없는 옆지기.
"이거 봐. 이거 진달래래. 누가 이걸 진달래라고 생각하겠어? 봄에는 정말 꽃이 예쁜데... 지금은 꽃이 없으니 진달래인 줄도 잘 모르겠다."
"누가 진달래래? 시 같은 거 적어놓은 거 아냐?"
"여기 씌어있어. 정말 가을 되니까 진달래 안 같다. 그치?"
"..."
"우와... 여기 너무 꽃밭 같아. 너무 이쁘지?"
"그렇네."
사진 찍느라 분주한 나와 기다리느라 서 있는 옆지기.
단풍잎이 가득한 꽃밭과도 같은 수북한 낙엽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나중에 집 정원에 네가 좋아하는 단풍나무랑 동백나무 심어줄게. "
"나 배롱나무도 좋아해. 그것도! 소나무도 심으면 멋있겠다."
"그래. 그것도 심어줄게. 그리고 나는 대나무를 심어야겠다. "
"대나무도 좋아. 멋질 거 같아."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안 듣는 거 같더니 기억해서 나중에 좋아하는 나무를 심어준다니 왠지 뭉클했다.
"어멋, 저거 산수유야. 내가 좋아하는 나무. 봄에는 노랗게 꽃잎이 나는데 이런 데 이렇게 있으니 산수유 인지도 모르겠다. 그치?"
"..."
갑자기 눈발이 날렸다. 처음에 뭐지? 먼지인가 싶었는데 눈이 점점 더 많이 왔다. 눈발이 휘날렸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첫눈이야! 우리 첫눈 오는 거 이 십 년 만에 같이 본다. 영국에서 같이 보고. 거 봐. 오기 잘했지? 눈 오는 것도 모를 뻔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