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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May 25. 2021

비행기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하늘 위의 비행기는 어린 내게는 만질 수 없는 구름과도 같은 것이었다.

 '먼 미래에 타 볼 일이 있을까. 아마도.'

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졸업 여행을 제주도로 가게 되면서 비행기를 처음 타게 되었다. 학급 친구들과 정신없이 줄을 서고 국내선이었기에 짧은 비행 끝에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그때는 승무원이 직접 나와 안전수칙을 시연하였다.  튜브에 바람을 부는 흉내를 내고 손짓으로 방송에 나오는 지시어를 가리켰다. 이륙 후 구름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서비스 음료로 주스를 한 잔 들이켜면 곧 안전벨트 등이 켜지고 착륙을 하는 그런 짧은 비행이었는데도 무척 설레었다.


그 이후 영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많은 여행을 떠났지만 첫 비행의 설렘만큼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은 아니었다. 장시간의 비행에 지쳐 기내 영화를 보다가 불편한 자세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곤한 비행을 끝내고 이국의 공항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입국심사 줄에 섰다.  공항 밖을 나오면서는 두리번거리며 그 나라의 인종과 풍경, 달라진 언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예약한 숙소를 찾아 다시금 교통수단에 몸을 실었다.


일상에 지쳐서 떠나고, 현실을 피하려고 떠나고, 그렇게 '멈춤' 하는 나날이 늘어났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편도 티켓을 산 적은 없었다. 왕복 티켓은 아무리 먼 거리를 떠났어도 시작한 여행의 끝을 정해주었고 그랬기에 아쉬움과 함께 안정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내게는 돌아올 집이 있었다. 여행이 주는 설렘이 동반하는 긴장감과 고단한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기대 쉴 보금자리 같은 곳 말이다.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지만 평안한 곳.

한 번도 왕복 티켓이 아닌 편도 티켓을 끊을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아무리 먼 곳으로 가더라도 경유를 해서라도 반드시 돌아왔다. 정말 아이러니하게 말이다. 지겹고 힘들어서 떠난 그곳으로 정확하게 늘 돌아왔다.


인생에 쭈욱 수평선을 그어보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선을 따라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시간이 바뀌고 날짜가 바뀌고 해가 바뀌는, 때로 상할 수는 있어도 대 다시 회귀할 수 없는 선이다.

비가 한 번 올 적마다 계절의 변화는 성큼 한 발을 내디뎌 온다. 비가 그렇게 오다가는 눈이 되어 내리고 다시금 봄이 와서 비를 뿌린다. 그렇게 일 년이 가고 다른 일 년이 온다.


언젠가 다시 비행기를 타게 되어 멀리 가게 된다면 나는 편도 티켓만을 들고 갈 수 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없는 인생길에서 나는 어디까지 멀리 가고 얼마큼 머무를 수 있을까.

어차피 내가 이 지구 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수십 년. 방랑자처럼 여기저기 기웃대다 내 인생을 다 소비하고 있는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고 싶은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때는 다들 어딜 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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