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소 Oct 16. 2024

놀이하는 마음

재미난 걸 해보고 싶었다. 어릴 때는 재미있는 게 그렇게도 많았는데 그 많던 재미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동화 속의 판타지가 사라져서, 냉엄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어른이 되어서일까. 갑자기 어른이 된 것도 아닐 텐데 언제부터 우리는 재미를 잃어버렸을까. 조금만 재미있어도 깔깔깔 웃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이 봄날 같다. 이따금 바라보다가 그 웃음에 전염되어 슬그머니 미소 짓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해도 뭘 좋아하더라 하고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씩 잃어버리는 여정이 나이 듦이던가.

무작정 어린아이가 되어보려고 해도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본다.

장난꾸러기 친구도 생각나고 수줍었던 내 모습도 기억난다. 골목길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던 동네 아이들은 다들 무엇을 그렇게 재미나게 했을까. 소꿉놀이, 인형 놀이, 묵찌빠, 실뜨기, 말뚝박기, 딱지등 수많은 놀이들이 아이들을 쉴 틈 없이 재미나게 해 주었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놀이란 것이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라는 그 자체가 놀이인 것이다. 즉 예술적 활동을 포함한다.

어른들의 유희가 음주가무, TV 시청(넷플릭스 보기), 게임등으로 좁아지는 게 안타깝다. 인간의 본질이 놀고 즐기는 것을 하는 것인데 우리는 노는 것에 인색하다. 놀이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놀이처럼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처럼 노는 법을 배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놀이의 순수성을 잃고 방황하는 어른들은 더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것만을 찾는다.

일에 중독된 어른들은 소위 워커홀릭이라 불리며 일 자체에서 도파민을 찾는다. 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인간 스스로가 가진 충전력을  잃는다. 소모되기만 하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도 즐겁지가 않다. 나이가 들수록 회복을 위한 충전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닳아버린 배터리처럼 자꾸만 쓰러져 눕고 싶다.

어른이 될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놀이하는 마음'을 되찾았으면 한다. 어르신들을 위한 센터에서 아이들이 하는 색칠놀이나 만들기 학습지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실버 세대가 늘어가는 지금 어느 학습지회사에서는 이미 시니어를 위한 학습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하는 학습지와 유사하다. 색칠을 하고 손으로 조몰락대고 만들고 하는 단순한 놀이들이 치매 또한 예방한다니 많은 센터에서 수요가 있을 거라 예상한 것이다.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흙을 조물거리는 것이 막상 해보면 여전히 즐겁고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열심이게 된다.

놀이하는 사람이 되어야 '쉼'이 편안해진다. 즐거운 놀이를 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마음속에 근심, 걱정이 없었다. 그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쉼'다운 '쉼'을 즐길 수 있다.


놀이가 사람을 이끌고 사람이 놀이를 이끄는, 어쩌면 제대로 놀다 가는 것이 사람이 사는 것 아닐까.



이전 01화 사랑도 '쉼'이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