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우 Oct 27. 2024

연단의 시간

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9.

 우린 참회하듯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나도 스카이를 찾지 않았고 스카이 역시 나를 찾지 않았다. 그 애를 만나고 처음으로 맞는 기다림이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딱 붙어 엄마를 따라다녔다. 스카이도 뺏 아저씨네에 붙어서 이것저것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애에게 어떤 일도 없기를 그 애의 신에게 기도했다.

 그 일이 있고 삼 일째 저녁, 나는 엄마를 따라 상점으로 향했다. 엄마는 요새 웬일로 스카이를 만나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팔짱을 낀 엄마의 팔을 한 번 흔들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왔어요.”
 엄마의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주머니는 이미 모인 몇몇 이웃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빈 자리를 잡고 절절한 애정을 나누는 남녀가 나오는 드라마를 꽤 오래 시청했다. 사랑하니까 보내주는 거야. 남자의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드라마가 끝이 나고, 광고가 시작되자 아주머니는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두컴컴한 밤을 한가득 밝히는 사이렌이 울려대는 지역 뉴스에서 리모컨을 멈췄다. 눈앞에 익숙한 장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땅에선 아주 별일이 다 벌어지는구만.”
 화면을 보던 주인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같이 앉아 있던 할머니도 흐릿하게 보이는 CCTV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암만 봐도 마술을 부린 거 아니여?”
 화면엔 다리 밑에 정박 되어있던 작은 요트 하나와 배 하나가 순식간에 하늘로 떠올랐다가 다리 쪽을 덮치며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카메라의 거리가 멀었기에 우리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하얀 치마를 입고 있는 나의 실루엣만 겨우 보이는 정도였다.
 보도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도망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배가 하늘 위로 떠오른 일과 완벽히 별개로 보는 것 같았다. 누구도 저것이 스카이의 힘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스카이는 어떠한 도구나 동작 없이도 힘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다리 위를 뛰던 어린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도 보면 근처에 애들이 있는데, 이것 봐요, 놀라서 도망가잖아요.”
 오히려 우리를 이상 현상의 피해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상 현상. 스카이의 힘이 텔레비전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었다.
 “에… 순간적으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오리바람이야 일어날 수 있지만, 적어도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거나 어떤 전조가 있기 마련인데... 주변에 어떤 전조도 없었다는 게 신기한 일로 보입니다. 일종의 이상 현상이죠.”
 “하마터면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했습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 애는 자신의 힘을 선하게 쓰는 아이였다. 마을 사람들을 시장까지 데려다주고, 나무를 구해 배를 고치고, 납치범들에게서 사람들을 구하고, 전투에서 다친 부족민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었던. 하지만 지금 스카이의 힘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뻔한 이상 현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이 사실을 모르기를, 이 일이 빨리 지나가서 사라져 버리기를 바랐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스카이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14층에도 옥상에도 가지 않았다. 그냥 우리 집 뒤편에 있는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 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지만 묘하게 힘이 빠져 보였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어떤 말이 그 애의 무언가를 자극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본론에 가까운 말을 꺼낸 건 헤어질 때가 다 되어서였다.
 “리버, 할 말이 있어.”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애의 말을 기다렸다. 그 애가 엉뚱한 말을 하면 바로 막아 챌 요량으로. 그리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내 힘은 위험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며칠 동안 생각했어. 내가 이 힘을 사람이 많은 곳에서 멋대로 쓰면…”
 “좋아, 스카이. 우리 다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자. 이곳에 텐트를 치고 새 아지트를 만드는 건 어때? 뺏 아저씨네 창고 근처도 좋아. 아! 나무들 뒤에 바위가 있던 곳, 그곳이 좋겠다.”
 “리버.”
 그 애는 고개를 저었고 나도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때 주변에 누가 있는지 볼 겨를도 없었어. 옥상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기적적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나는 뭐라고 말하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충격적이었어.” 스카이가 말했다.
 “내게 주어진 힘을 연단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우리 부족 중에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런 시간을 거쳤어.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지. 내게도 그런 시간이 없다면 언젠가 이 힘으로 인해 또다시 위험이 찾아올지도 몰라.”
 나는 스카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애가 금방이라도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스카이, 가지 마.”
 “너를 좋아해, 리버. 너와 있으면 내 힘을 사용해 널 즐겁게 해주고 싶고, 위험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고 싶어. 하지만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그 애의 눈에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그 애가 어디로 가려는 걸까.
 “어디로 가는데?”
 나는 그 애가 말해주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아주 떠나가 버릴까 봐. 술래잡기의 완전한 패자가 되어버릴까 봐.
 “얼마 전 꿈에 부족민 한 분이 나타나셨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우리 부족을 이끌었던 분이었는데, 그가 아직 북태평양 너머에 살고있는 걸 뚜렷하게 보았어. 그가 보여주었지. 나는 북태평양을 건너 내가 온 곳, 북서 해안에 가서 그분이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야.”
 나는 특별한 힘을 믿었다. 그 애의 말이 허황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애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니까 보내주는 거야.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는 무거운 추를 얹은 것 같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올게, 리버. 난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어째서?”
 그 애는 내가 차고 있는 목걸이의 물방울을 만지작거렸다.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특별한 힘 때문이 아니었나?
 “특별한 힘 때문이지?”
 내 말에 스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 특별한 힘은 네게 말한 게 전부야.”
 “그럼 어떻게 알았어?”
 “전에 너를 본 적 있었어. 메콩강 유역의 폐가에서 살 때.”
 나를? 뜻밖의 말에 눈이 크게 뜨였다.
 “어느 심심한 밤에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나는 제대로 알아듣진 못해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화기애애하고 따뜻한 웃음소리가. 그래서 땅을 밟고 저기 있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겼지.”
 그 애는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중 기둥이 가장 두꺼운 나무를 가리켰다.
 “네 어머니가 네 이름을 부르던 게 생각나. ‘리버’라고 불렀어. 그리고 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나는 잠깐이지만 너를 볼 수 있었어. 그때 너는 조금 더 긴 머리였는데, 그것보다 네 크고 까만 눈이 더 눈에 띄었어.”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날을 스카이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장이 콩콩 뛰고 기분이 이상했다.
 “너는 아빠가 언제 들어오냐며 투정을 부렸어. 그리고 너희 아버지가 돌아오셨는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소리로 ‘아빠!’라고 소리치며 반대편으로 나갔어. 그러니까 너를 처음 본 건 그때였어.”
 “전혀 몰랐어.”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납치당한 기지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너희 가족의 모습이었어. 내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나도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었지. 내가 태어난 곳을 벗어난 이후로 그 호수에 대한 기억만이 따스해서 나는 무작정 이곳을 향해 날았어. 나는 분명 언젠가 너와 만날 거라고 생각했어.”
 스카이의 말대로 우리는 맹그로브 숲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함께했다.
 “그랬구나.”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간지럽혔다. 나는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어 괜히 흐르는 물을 바라봤다.
 “내가 톤레사프 호에 찾아온 이유는 너야, 리버. 그러니 나는 네가 원하는 한, 네가 어디에 있든 네게 돌아올 거야.”

 다음 날 그 애는 훌쩍 떠나버렸다. 언제 돌아올 거냐는 물음에 스카이는 늘 답이 있던 예전과는 달리 희미하게 웃으며 모르겠다는 말만 남겼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애가 준 목걸이를 절대 빼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찾을 수 있도록 영원히 걸고 있을 셈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