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1.
그 애는 스카이라고 불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하늘을 뜻하는 그 단어만큼 그 애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애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나타났다.
나는 톤레사프 호의 수상가옥에서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쪽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으로 향했다. 바람도 쐴 겸, 그물과 통발로 잡는 판매용 물고기 대신 직접 먹을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리버, 멀리 가지 말고.”
엄마는 젓던 노를 멈추고 나를 숲의 초입에 내려주었다. 물에 첨벙 뛰어들자 미지근한 듯 시원한 물이 가슴까지 감겨들었다. 손을 흔들어 보이자,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게를 잡기 위함이었다.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막에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물가에 있는 예쁜 돌멩이를 골라내듯 나무뿌리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조개를 건지고 고둥을 떼어냈다. 새들이 지저귀며 가끔 날개를 푸드덕거렸고, 고요한 물살 가르는 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잠시 멈추고 숨을 죽였다. 숲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가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지만, 외부인이라면 조심해야 했다.
‘너희 아빠 어떻게 된지 모르니.’
엄마가 한 말이었다. 아빠는 고기잡이를 도와달라던 외부인과 나간 지 일곱 시간 만에 실종되었다. 다섯 달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그린 두 개의 붉은 별이 있던 아빠의 배는 영원히 가라앉아버린 것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 얘기만 나오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많은 말들을 삼키다가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외부인은 위험해.’
하지만 나는 궁금한 게 생기면 무엇인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현실을 외면하면 상상으로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내곤 했으니까. 나뭇잎을 밟은 원숭이를 확인하기 전까진 뒤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목표물을 발견한 악어처럼 물속에 잠긴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가까이는 가지 않을 거야.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나는 잠수를 잘하니까.
그렇지만 막상 목표물과 가까워지자 두근거리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물이 첨벙이는 소리와 나뭇결이 찢어지는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질적인 소리 때문에 결국 얇은 나무뿌리들이 얽혀 만들어진 작은 섬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빼꼼 내다보았다.
눈앞에는 예상 밖의 모습이 보였다. 까맣고 마른 등을 가진 아이가 있었고, 그 애의 왼쪽에 뿌리 뽑힌 나무 몇 그루가 둥둥 떠다녔다.
저걸 직접 뽑진 않았겠지?
나 또한 해봐서 알았다. 살아있는 나무는 아무리 얇은 뿌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질겼다. 물속에서 잡아당기면 더욱이 그랬다. 어른들도 도끼로 베어갔지 뿌리째 뽑아가진 않았다. 열두 살인 나보다 조금 더 작아 보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힘이 센 남자애라도.
나도 모르는 새에 섬을 헤쳐 나와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또다시 물살 가르는 소리만 들리고, 이제는 마른 등이 손바닥을 펼친 크기로 보일 만큼 가까이 있었다. 그 순간 그 애의 바로 앞 물속에서 한 뼘 두께의 나무 한 그루가 튀어 올랐다. 첨벙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내버렸다. 내 목소리에 그 애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손을 들어 입을 막았을 땐 모든 게 벌어지고 만 상태였다. 그 애가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을 살짝 숙이고 있었던 듯 몸을 세우자 나와 비슷했다. 그 애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잠수경을 벗어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곤 물이 들어간 눈을 몇 번 부볐다. 나는 그 애에게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 몰라 침만 꿀꺽 삼켰다.
“언젠가부터 할 줄 알았어.”
그 애의 까만 눈이 달빛을 반사한 강물처럼 반짝였다.
“힘이 쎄져서?”
나는 그 까만 눈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 애는 한쪽 덧니가 보일 정도로 웃었다.
“아니야, 다 스러져가던 나무인걸. 약간의 힘만 줬을 뿐이야.”
때로 집을 짓거나 보수하기 위해 죽은 나무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뿌리가 거의 뽑힌 죽은 나무를 들어 올리는 것이라면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말이 됐다.
나는 물속에 있던 손을 들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름이 뭐야?”
그리고 그 애의 이름을 물었다. 나답지 않은 짓이었다.
하지만 주변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수줍음 타는 나를 두고 껄껄 웃던 동네 할머니들도 없었고, 곤란할 때마다 몸을 숨길 엄마도 없었다. 그래서 물어볼 수 있었다.
“스카이.” 스카이가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스카이야.”
나는 스카이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애의 팔 안쪽에 새겨진 붉은 문자가 눈에 띄었다. 크메르어는 아닌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애는 크메르어를 하고 있었지만, 말끝이 묘하게 늘어지는 면이 있었다.
스카이는 적당한 세기로 잡은 손을 흔들었다.
“잘 부탁해.” 그 애는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리버.”
이미 알고 있었다.
좁은 마을에서 누군가 알려준 걸까? 그 애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상점에 들렀다. 상점 주인아주머니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소식통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주머니에게 스카이에 대해 물었다. 혹시 그 애를 본 적 있냐고. 아주머니는 부채를 부치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보이던데. 아주머니는 스카이가 뺏 아저씨를 도와 배를 수리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무를 가져간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을까?
“아예 그곳에 살게된 건가요?”
아주머니는 부채질을 멈추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랬으면 좋겠니?”
그녀의 익살맞은 표정에 나는 입술을 삐죽이곤 한 발자국 물러섰다.
“아니요.”
그리곤 엄마의 뒤로 숨었다. 하하하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뭐, 뺏에게 들은 바로는 일주일 전부터 일을 도우며 그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가 보더라고. 저기 악어 양식장 집에 고친 배를 갖다주고 오면서 우연히 그 애를 마주쳤다고 하더구나.
아, 그 껌도 하나 가져가요. 날짜도 얼마 안 남았으니.”
집으로 돌아와 달빛만이 은은하게 흐르는 까만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카이는 얼마 전 다른 곳에서 우리 마을로 오게 되어 뺏 아저씨를 도우면서 그 집에 사는 것 같았다. 뺏 아저씨네 집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노를 저어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렇구나. 스카이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나에게는 또다시 수줍음 많은 아이 병이 도져버렸다. 이쪽저쪽 오가며 뺏 아저씨네를 흘끗흘끗 보긴 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다. 고작 1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