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전 의원에게 세 번째 탈당은 정치를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진보정치의 앞날을 위해서는 멈출 수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길뿐이었다. 새진보정당추진회의는 2012년 9월 16일 노 전 의원과 조준호 전 최고위원을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당시 노동계와 다른 진보정당들과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노 전 의원은 9월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기반 대중정당 ▲시민참여 진보정당 ▲현대적 생활정당 ▲진보대표정당이 되겠다는 네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오늘 이 시간부터 본격적인 새진보정당 창당에 나서 진보정치 재건과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자신의 책임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과도적 성격의 정당을 10월 중 우선 창당하고, 대선을 마친 후 2013년 노동진보진영을 비롯한 제세력과 함께 명실상부한 진보대표정당을 창당해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새진보정당은 1단계 창당 후 그 무엇보다 정권교체를 위해 매진할 것입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진보 개혁적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새로운 당명은 10월 7일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에서 진보정의당으로 확정됐다. 당초 당명 후보로는 노동복지당, 사회민주당, 열린참여당 등이 검토됐다. 창당에 참여한 계파별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은 당명을 주장했지만 전부 기각됐다. 그렇게 최종 후보에 사회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이 올랐고, 진보정의당이 근소한 차이로 채택됐다.
진보정의당은 7석으로 원내 3당이었지만 정치적 입지는 위태로웠다.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열하면서 기존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와 실망이 너무나도 컸다. 그 빈틈을 ‘안철수 현상’이 파고들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 정치를 내세운 안 후보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면서 진보정의당은 자신들의 정책과 메시지를 알릴 기회를 박탈당했다.
진보정의당은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단일화에 동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노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삼자의 한 축으로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대변하는 진보적인 열망을 가지는 지지층, 국민들의 요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들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만으로 정권교체가 돼선 안 됩니다. 정책이나 향후 정권이 가야 할 방향이 우리 사회를 진보적으로 계획하는 방향이어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노 전 의원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고심했다. 그러나 심상정 전 의원과의 경선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 간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고, 노 전 의원은 10월 12일 출마 접수 마감시간 29분을 남겨놓고 대선 후보 추대 불발에 유감을 표명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심상정 전 의원은 2012년 10월 21일에 진보정의당 창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11월 26일 정권교체와 야권 단일화를 위해 대통령 후보를 사퇴했다.
노 전 의원에게 진보정의당 창당은 진보 정치의 재정립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에게는 통합진보당 내 갈등과 부정 경선 여파를 딛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노 전 의원은 진보정당이 내부 권력 싸움에 치중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진보 정치의 가치와 목표를 다시 세우고자 노력했다. 현재 진보정당들은 본질을 망각한 채 또다시 뿔뿔 흩어져있다. 하나의 더 큰 세력으로 국민에게 다가서야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 이대로 진보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