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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Oct 21. 2024

노회찬 가치 : 연대

노회찬 전 의원. [사진출처=노회찬재단]

노회찬 전 의원의 ‘6411 버스’ 연설은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 전 의원은 7분 39초 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진보 정치의 핵심 가치임을 환기시킨 것이다. 해당 연설은 진보정당의 정신과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더 이상의 첨언은 필요가 없을 정도다.      


노 전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라고 밝혔다.     


노 전 의원은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0·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전 의원은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물세 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 간 그 다섯 분도 역시 마찬가지 투명인간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노 전 의원은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9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진보정당이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노 전 의원은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됐습니까.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노 전 의원은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를 내세워 진보정치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진보정당 내부의 엘리트주의와 패권 다툼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동안 고학력, 엘리트 중심의 진보 정치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정치적 의제화하지 못하면 진보정당의 존재가치는 사라진다. 결국 정치적 엘리트와 사회적 약자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만 한다.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이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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