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힐링
과연 이 더위가 끝나기는 한 걸까, 에어컨을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켜대느라 전기세 걱정을 할 때즈음 입추가 다가온다. 24 절기는 과학인가. 갑자기 바람이 선선해지고 비가 온다. 가을이 눈앞이다.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강릉의 가을은 별 것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단풍놀이 하러 갈 곳이 천지이다. 연곡 소금강산 등산코스, 늦은 아침, 김밥을 사서 식당암까지 오른다.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 계곡물 앞에 앉아 소풍처럼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 강릉으로 이사 온 후 우리 가족의 가을나들이코스이다. 단풍 절경으로 유명한 속초 설악산, 평창 오대산도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라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 평소에 즐겨하지 않는 등산이지만 가을만 되면 산에 가고 싶다. 어렸을 적 엄마가 단풍놀이 간다고 하면 왜 가는가 싶었는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가을이 가는 것이 아까워 시간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약속을 한다. 평창 전나무 숲을 거닐고, 오대산 월정사에 올라 보이차를 마시고, 늦은 단풍을 보러 선자령에 다녀오는 것, 강릉 시민이 되고 난 후 나만의 가을을 즐기는 루틴이다. 멋지다 정말 멋지다, 감탄사와 함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가을 캠핑도 시작하였다. 바다 앞 캠핑장, 산속 캠핑장 모두 20분 내외면 갈 수 있다. 아마 서울에 살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캠핑. 차가 막혀 오고 가는 길에 짜증만 냈겠지만, 여기서는 교통체증도 없고 예약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마음도 평화롭다. 어렸을 적 계곡 앞에서 텐트 치고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내내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을에 장작에 고기 구워 먹고, 군고구마 먹은 것, 캠핑장에서만 허락된 마시멜로우 구워 먹은 것이 흐뭇한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강릉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눈도 많이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한 날이 많고, 첫눈이 너무 늦게 내려서 아이들과 눈 오는 날만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눈이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제대로 내리는 강릉의 눈. 진짜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게 온다. 강릉 사람들은 요즘 내리는 눈은 눈도 아니라고 하지만 눈의 무게 때문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신나고, 어른들은 한숨이 나온다. 제설이 잘 되는 강릉이지만, 집 앞 눈은 각자 치워야 하니깐. 눈 치우고 나서 돌아서면 쌓여있어서 포기하고 있으면, 포크레인이 와서 싹 치워주는 것이 강릉 제설 클래스이다. 버스도 시간 맞춰 오는 시골 마을이지만 눈이 내리면 마을 이장님이 시간 따위는 상관없이 집 앞 눈길은 싹 치워주시니 눈 와도 마음이 놓였다. 눈썰매, 얼음썰매도 탈 수 있고, 스키장도 가까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매일 스키 타러 갈 수도 있다. 눈 내린 겨울바다를 볼 수 있는 것, 눈 덮인 모래사장을 걷는 것, 강릉의 겨울은 따뜻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