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완전범죄란 경찰을 항복시키는 게 아니야. 범죄 행위 자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거지.
"국명 시리즈는 엘러리 퀸, 관 시리즈는 아야츠지 유키토, 그럼 화장 시리즈는?" 갑자기 뭐예요, 당신 누굽니까. 그렇게 대꾸하려 했지만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어, 음. 렌조 미키히코." 그 순간 내밀지도 않은 오른손으로 악수를 했다. 큼지막한 손이었다. "싹수가 있군. 내 조수가 되지 않을래?"
- p. 24. 기묘한 거래
. 사실, 나이가 들고나서는 예전만큼 본격추리를 읽지 않는다. 예전에는 역시 추리소설이라면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회파 류는 진짜 웬만한 명작 아닌 이상은 영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웬만한 고전(?)들을 섭렵하고 나니 새로 나오는 소설들은 영 눈에 차질 않는다. 설정도 퍼즐도 추리도 어디서 본 것만 같고, 무엇보다 범죄가 벌어지기까지 인물을 소개하고 배경을 펼쳐놓는 부분을 읽어내는 게 점점 지루해진다. 거기다 어느 정도는 편견이겠지만,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글은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읽는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아무래도 글솜씨고 뭐고 트릭을 고안해내질 못하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장르적 특징 때문에 오히려 트릭만 충족하면 다른 쪽은 기준이 더 낮아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 그런 점에서 최소한 이 소설은 "재미있다." 설정 자체는 이제는 뻔하디 뻔한 클로즈드 서클이지만, 거기에 좀비의 습격(??!!)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지니 범죄가 벌어지기까지의 이야기나 사건 사이사이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적당히 코믹스러운 초반부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캐릭터까지 더해져 재미없을 만한 부분이 없다. 역시 글에 대해 가장 고민하는 건 글을 쓰는 사람들이고, 요즘 작가들도 본격추리소설의 지루한 초반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꽤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여기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좀비와 인간 중 누가 범인일지를 둘러싸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것도 좋았다. 좀비가 나온다는 점에선 몇 년 전에 나온 걸작인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죽음'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 소설의 좀비가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기서의 좀비는 부산행이나 워킹 데드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좀비라는 점이 다르다. 다만 아쉽게도 좀비라는 특이한 측면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트릭이 무너진 건 아쉽다. (실제 읽어보면 알겠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살인은 좋게 봐줘도 너무 편의적이고, 냉정하게 보면 불가능하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 부분만 깔끔하게 해결되었으면 평가가 수직상승했을텐데, 본격추리에서 트릭이 무너진다는 건 정말 치명적인 부분이라.
. 그래도 설정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없이 속도감 있게 읽힌다는 점에서 요즘 나오는 본격추리물 중에선 정말 보기 드문 소설이다. 거기다 이게 데뷔작이라고 하니 앞으로를 더욱 기대해볼만하고. 분명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본격 미스테리 대상'과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 미스테리 베스트 10 1위'를 휩쓸었다는 게, 정체기에 있는 본격추리 장르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걸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 과연 차기작인 '마안갑의 살인'에서 이마무라 마사히코가 얼마나 발전했을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 :)
"게다가 밀실을 이용해 현대 경찰을 속여넘기는 건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행위야. 소설이나 드라마에 완전범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내 생각에 시체가 발견된 시점에서 사건은 이미 절반쯤 해결된 셈이나 마찬가지거든. 살해 방법, 범행 시간, 범행 동기.... 시체는 정보의 보물창고니까. 진짜 완전 범죄란 경찰을 항복시키는 게 아니야. 범죄 행위 자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거지. 아무도 모르게 죽여서 아무도 모르게 시체를 처리하고 아무도 모르게 일상으로 녹아드는 것, 그게 바로 완전범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