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 악도 없다. 한순간 발을 헛디딘 사람이 있을 뿐.

야행관람차 - 미나토 가나에 (비채)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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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시간. 날이 밝으면 또 평소와 똑같은 생활이 시작된다. 토요일이다. '프레시 사이토'는 분명 엄청 붐비겠지. 아야카는 또 히스테리를 부릴 테고. 지금은 뭔가 그럴싸한 소리를 하는 게이스케도 또 무사안일주의로 돌아가겠지. 그래도.


- p. 321.




. 속이 메슥거렸다. 주말의 남태령 고개는 차들로 꽉꽉 막혀 있었고, 전용차로가 풀려 버스 역시도 느릿느릿하게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따뜻해졌다고는 해도 아직 공기가 싸늘했기에 창문은 꽉꽉 닫혀있었고, 밀폐된 차 안은 후텁지근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전철을 탔다면 길어도 30분이면 걸리는 길을 한 시간이 넘어서야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고, 나는 답답한 차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딱 달라붙어 앉은 채로 미나토 가나에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악의를 읽어내려갔다. 차 속에서 지쳐버린 걸 감안하고라도, 미나토 가나에의 목소리는 전작보다 훨씬 집요하고 신랄했다.


. 소설에는 두 가정과 한 여자가 등장하고, 범죄라고 할만한 사건은 그 중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지만, 정작 글을 다 읽고 난 후 머리에 남는 건 다른 쪽 가정이었다. 부유한 주택단지로 이사오느라 친구들과 헤어지고 사립학교 수험에서도 탈락한 딸은 어머니에게 히스테리를 쏟아내며 난동을 부려대고, '집'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한 채 막다른 곳까지 와버린 어머니는 딸의 행패에 지쳐만 간다. 아버지 역시도 자신은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며 '그저 언젠가는....' 이라고 끝없이 되뇌인 채 무기력하게 대처할 뿐이다. 그렇게 미나토 가나에는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나간다. 선량해보이는 옆집의 노부인은 알고보면 동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범죄가 발생한 집의 유리를 깨고 벽을 비난으로 도배하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범죄는 가장 화목해보이는 집에서 발생한다. 그것도 부인이 남편을 죽이고, 아들은 실종되는 최악의 형태로.


. 그렇다고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괴물이나 구제불능의 악인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딸, 속수무책인 어머니, 방관하는 아버지에게도 다 각자의 사정과 해명할 거리들이 있고, 가해자인 부인과 살해당한 남편, 실종된 아들 역시도 다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한순간 극으로 치달아버렸을 뿐이다. 구제불능인 것 같은 옆집의 노부인은 작가의 이런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들에게 외면당하고(물론 그 아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다른 집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다른 집의 싸움에 끼어들어 살인을 저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알고보니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자마자 자신이 붙인 비난하는 대자보를 떼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동네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이 집의 사람들은 욕을 먹어도 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 것도 잠시, 이야기의 끝자락에서는 또 범죄가 일어난 집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나서기도 한다. 한 소설 내에서 인물이 왜 이렇게 바뀌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이 그렇고, 또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


. 작가는 이러한 인물묘사를 통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니까'하며 안심하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전형적인 선역도 없고, 악역도 없으며, 흔히 등장하는 '사실 알고보면 좋은 사람. 끝.'이라는 훈훈하고 깔끔한 마무리도 없다. 화려했던 데뷔작 '고백'에서만 해도 '악'을 끝까지 쫓아가서 일말의 여지도 없이 사정없이 무너뜨리던 작가는 이번 소설에선 '선'도 '악'도 없이, 그저 한순간에 굴러떨어진 '사람'이 존재할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을 거치며 변화를 - 혹은 성장을 - 보여주고 있는 미나토 가나에이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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