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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Sep 09. 2024

기다림은 팬의 숙명일 수밖에 없는 건지:)

불과 피 - 조지 R.R. 마틴(은행나무)  ●●●●●◐○○○○



드래곤들이 전장 위 천여피트 상공에서 격돌하자
불덩어리들이 생겨나고 작렬하며 눈부신 빛을 발했고,
훗날 사람들은 그날 하늘이 수많은 태양으로 가득했다고 입을 모았다.



   드래곤이 마치 달에 붙은 파리처럼 작아 보일 정도로 까마득히 높게 날아오른 다음에야 성벽 안쪽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발레리온은 칠흑 같은 날개를 휘저으며 밤하늘에서 내리꽂혔고, 하렌할의 거대한 탑들이 밑에 나타나자 포효하며 붉은 화염이 휘몰아치는 검은 불길을 내뿜었다.

   돌은 타지 않는다고 하렌은 큰소리쳤지만, 그의 성은 돌로만 지은 것이 아니었다. 목재와 양털, 밧줄과 밀짚, 빵과 소금 절인 쇠고기와 곡식 전부 불타올랐다. 물론 하렌의 강철인들도 돌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화염에 휩싸여 연기를 내뿜는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성내를 뛰어다니고 성벽에서 떨어져 죽어갔다. 그리고 돌조차도 불이 아주 뜨거우면 쪼개지고 녹아버리는 법이다. 성벽 밖에서 이 참사를 본 강의 영주들은 하렌할의 거대한 탑들이 마치 밤을 밝히는 거대한 다섯 개의 양초처럼 붉게 빛났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양초처럼 탑들은 휘며 녹기 시작했고, 녹아버린 돌이 시냇물처럼 옆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 1권, p. 25. 아에곤의 정복




   4부 까마귀의 향연. 2005년 출간.

   5부 드래곤과의 춤. 2011년 출간.

   드라마 왕좌의 게임. 2011~2019년 방영.

   프리퀄 불과 피. 2018년 출간.

   드라마 하우스 오브 더 드래곤. 2022~ 방영 중.

   6부 출간 예정. 아직 없음.



   작가 양심 대체 무엇.... -_-



   . 10년째 6부가 나오지 않고 그 사이에 시작했던 드라마도 끝나버린 와중에 뜬금없이 나온 얼움과 불의 노래(이하 얼불노) 프리퀄. 얼불노의 시작점인 아에곤 타르가르옌과 그 남매들의 웨스테로스 점령으로부터 120년에 걸친 이야기인데, 그렇다보니 무려 분량이 묵직하게 꽉 찬 두 권, 합쳐서 85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다. 여기서 당연히 드는 생각. 6부는 10년째 손을 놓고 있으면서 6부 분량의 족히 2/3은 될법한 프리퀄을 썼다고? 이 책 분량에다 3-400 페이지만 더 썼으면 6부 완성인데? 일단은 대차게 각을 잡고 까는 게 먼저다(....) 흠흠.


   . 아무튼 작가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주인공 '용엄마' 대너리스와 '아무것도 몰라' 존 스노우의 300년 전 선조이자(드라마 끝난 지 5년 됐으니 이제 스포해도 괜찮겠지) 세 마리의 드래곤을 가지고 있던 타르가르옌 세 남매의 웨스테로스 평정기로부터 시작해서, 실패로 끝난 도르네 원정과 몇 차례에 걸친 왕가의 권력투쟁, 나라를 반쪽으로 쪼개놓은 내전과 그로 인해 벌어진 '드래곤들의 춤'에 이르기까지의 긴긴 역사를 연대기 식으로 줄줄 써내려간다. 얼불노처럼 챕터마다 서로 다른 화자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겪은 것을 각자의 입으로 말하는 방식도 아니고, 덩크와 에그 이야기처럼 평범한 이의 눈을 통해 간접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조망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냥 왕실 학자가 여러 사료를 모아 중요했던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죽 써내려가는 방식이다.





   그 때 응답하는 포효가 들렸다. 두 날개 달린 형체가 또 나타났다. '황금의 선파이어'를 탄 왕과 바가르를 탄 그의 동생 아에몬드였다. 크리스톤 콜이 놓은 덫에 라에니스가 걸려들었고, 이제 덫의 이빨이 조여들었다.

   라에니스 공주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환성을 지르며 채찍질을 하여 멜레이스가 적들을 돌아보게 했다. 상대가 바가르 혼자였다면 붉은 여왕이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가르와 선파이어의 협공은 확실한 파멸을 뜻했다. 드래곤들이 전장 위 천여피트 상공에서 격돌하자 불덩어리들이 생겨나고 작렬하며 눈부신 빛을 발했고, 훗날 사람들은 그날 하늘이 수많은 태양으로 가득했다고 입을 모았다. 순간 멜레이스의 붉은 턱이 선파이어의 금빛 목을 물었으나, 바로 바가르가 위에서 덮쳤다. 세 짐승이 함께 빙빙 돌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 2권, p. 121. 드래곤들의 죽음 : 붉은 드래곤과 황금 드래곤





   . 그렇다보니 본편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서로 다른 시선이 합쳐지고 또 나눠지면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직소퍼즐처럼 짜여져가는 묘미는 느낄 수 없고, 대신 본편에서 사료로만 언급되었던 인물들의 자세한 과거를 읽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 와중에도 나름 본편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빈번하게 언급되는 아에곤 타르가르옌의 웨스테로스 침공, 녹아내린 하렌할, 도르네 침공, 드래곤들의 춤 같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아이니스 1세나 비세리스 1세처럼 그런 인물이 있었나 싶은 존재감 없는 왕들이나, 재해리스 1세의 55년에 걸친 길고 긴 평화기에 있던 지지부진한 이야기, 들어본 적 없는 인물들에 대한 몇백 페이지의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솔직히 '재미없다'. 앞에서 한 번 대차게 깠음에도(....) 이런 이야기는 쓰면서 나올 기약이 전혀 없는 6부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작가의 양심 여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가 참으로 어렵다. 흠흠.


   . 덕분에 이 지지부진한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단연 역자의 후기인데, 무려 얼불노 카페에서 활동한 경력을 약력에 달아놓은 성공한 진성덕후(....)인 역사는 6부 출간이 늦어지는 변명을 무려 본인이 하고 있다(....) 정작 작가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데(!!!!) 6부 집필이 어떻게든 끝나기만 하면 '마치 막힌 혈이 뚫리듯 큰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은 마틴이 완결편인 7부와 다음 덩크와 에그 이야기와 불과 피 다음 편을 써낼지도 모를 일'이며(퍽이나) 그 와중에 작가의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건강은 매우 좋다는 TMI까지(....) 아아. 팬이 된다는 건 정말 슬픈 것이다.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도불의 연회' 후속작이 번역되지 않아도 출판사의 사정을 이해한다며 여기까지 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을 뿐이라고 주절주절 써봐서 너무 잘 안다(....) 그러니 마틴 옹은 힘을 내어 완결을 내시고, 어느 팬심 가득한 자산가가 갑자기 나타나 교고쿠도 시리즈에 출자해서 후속작이 줄줄이 나와준다면 모두모두 행복해질텐데(....) 흠흠흠흠흠흠흠.




   공격은 벼락처럼 내리쳤다. 눈부신 석양에 가려진 카락세스가 아에몬드 왕제의 사각을 덮쳤고, 바가르에게 내리꽂힐 때 내지른 날카로운 비명은 5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핏빛 웜'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더 나이 든 드래곤의 몸통을 들이받았다. 피처럼 새빨간 하늘을 배경으로 두 거무스레한 드래곤이 서로 움켜잡은 채 상대를 할퀴었고, 그들이 지른 포효가 신의 눈 전체에 메아리쳤다. 드래곤들의 화염이 얼마나 밝았던지, 아래 있던 어부들이 구름에도 불이 붙었는지 걱정할 정도였다. 단단히 뒤엉킨 드래곤들이 호수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핏빛 웜이 바가르의 목을 물었고 검은 이빨이 더 큰 드래곤의 살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바가르의 발톱에 배가 갈리고 이빨에 한쪽 날개가 찢어지는 와중에도 카락세스는 더 깊숙이 이빨을 박아넣고는 상처를 당기고 흔들었다. 밑에서는 호수가 끔찍한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2권, p. 149. 드래곤들의 춤 : 붉은 드래곤과 황금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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