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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거인 Oct 27. 2024

세상에게 두드려 맞다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겨울 인도에 도착했다.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는 인도에 안개가 자욱해 기차 연착과 캔슬이 많다.

나의 팀 기차만큼은 연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 것 만  일주일 팀은 거의 기차만 타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팀은 비행기까지 놓치게 되었다. 스물네 살의 나는 모든 것이 나의 잘못 같았다.

기차가 안 와도 내 잘못 늦어도 내 잘못 지금이 기차의 속도로는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것도 내 잘못 같았다.

회사에 전화를 해도 해답은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융통성 없고, 책임강 강한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 여행이 즐거웠으면 하는데 다들 힘들어만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바라나시에서 델리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내 앞에 키 크고 하얀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기차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 팀과 그 외국인뿐이었다. 티베트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티베트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잘생기고 키 크고 하얗고 영어도 잘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미국에 산다고 했다.


지친 우리 팀원들과 같이 놀아주다 기차가 와서 우리는 SL칸을 타고, 티켓분은 3AC칸을 탔는데 원래 두 칸이 막혀있는데, 그날은 연결이 되어있어 티벳분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 팀 데리고, 3AC칸 구경시켜 주고 우리에게 짜이도 사주고 나 대신 가이드를 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나는 너무 고마웠다.


연속으로 계속 팀을 받아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나에게는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90일 인솔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일부러 팀을 주지 않으면서 90일을 며칠 남겨 놓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90일 인솔을 채우지 않은 채 다른 회사로 이직도 할 수 없었고,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소송을 거는 사장님을 보며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데 소송장까지 집으로 보낼 수 없었던 그때의 나는 다음 인솔을 기다리며, 인솔자언니에게 돈을 빌려 같이 태국여행을 갔다.


같이 간 언니와는 꼬창을 다녀오고, 혼자 남은 나는 꼬피피, 마하살라캄, 라오스를 거쳐 치앙마이에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 갔다. 여사장님과 학교방학으로 와있는 사장님이 아들이있었고 같이 고스톱을 치자고 하셔서 고스톱도 치고, 맹인이 하는 맛사지샵도 추천해 주셔서 같이 가보고 물고기 사는 곳도 따라다니다 빠이도 가고 치앙라이도 가고 처음 오는 태국은 아니었기에 안가 본 곳들을 구석구석 여행을 하고, 여름 인도인솔을 하러 다시 인도로 갔다.   


마날리는 처음 가는 것이었기에  혼자 답사를 해야 했다. 마날리는 인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뿐 사람들이 오면 도보로 산을 가는 코스가 있어 회사에서 나눠 준 책의 지도를 보며 열심히 길 따라 내려갔다 올라갔다.   


 아무리 봐도 이산으로 들어가면 길이 없을 것 같은데, 융통성 없던 나는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그 지도를 따라 산속으로 산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30분이면 간다는 말을 믿고 두 시간을 걸었다. 비가 오고 미끄러지고, 사람은 없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 길로 가면 밖으로 나 갈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 아무나 보면 붙잡고 울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웃자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지만 허허벌판에 택시는 없었고 길 따라 내려갔다.   


아마 이 책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이 길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융통성 없던 나만 옛날에 만든 책만 믿고 하라는 대로 하다가 고생을 해보니 융통성이 필요한 세상이구나라고 깨닫고, 내려와 스님 두 명과 나와 동갑인 친구 두 명 부녀 두 팀 이렇게 기억에 남는 인솔을하고, 90일 인솔을 벌써 채우고도 남을 만큼 했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당연히 정규직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들어간 나에게 사장님은 바로 인솔을 나가면 정규직을 시켜주겠다는 딜을 하셨고, 3년 정도를 떠돌이로 지낸 나는 체력이 바닥이 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장님 밑에서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번아웃까지 오면서 부모님께 실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호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서른 되던 해 한국에 와서 다른 회사로 인도 인솔을 하며 마지막 인도여행까지 하고 인도와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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